| ▲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2026 BOK 국제콘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한국은행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
[비즈니스포스트] “화폐의 미래를 논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6 BOK 국제콘퍼런스’ 개회사에서 한 말이다.
신 총재는 취임 뒤 처음으로 주재한 이번 국제콘퍼런스 주제를 ‘중앙은행, 그리고 화폐의 미래’로 잡았다.
화폐의 미래를 주제로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CBDC), 지급결제 혁신 등에 관한 평소 생각을 풀어낼 수 있는 논의의 장을 연 것이다.
금융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비한 행보를 본격화하면서 통화정책 당국인 중앙은행도 새로운 화폐 시스템 제도화를 위한 채비에 나선 셈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줄일 수 있게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해 설계한 가상화폐를 말한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태스크포스(TF)는 6.3 지방선거 뒤 하반기 국회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우선 입법과제로 추진해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을 내놓고 있다.
신 총재는 이날 개회사에서 “화폐는 단순히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경제와 금융 활동을 조정하는 사회적 제도”라며 “그리고 신뢰는 그 모든 것의 기본이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기술적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기술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화폐의 본질인 신뢰를 유지하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화정책 당국 수장이 디지털화폐 시대에도 시스템의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은행 중심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에 힘을 실은 것으로 풀이된다.
신 총재는 개회사 뒤 이어진 이자벨 슈나벨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와 정책대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언급했다.
그는 "현재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관심이 매우 높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전체 통화 생태계에 어떻게 조화롭게 도입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 달러화 바탕의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을 넘어 시장 안착 문제에 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신 총재는 이자벨 슈나벨 이사에게 “유로화 스테이블코인 등 달러 이외 통화에 바탕한 스테이블코인은 시장에서 크게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화 시스템에 추가하려는 시점에서 조언해 줄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자벨 슈나벨 이사는 이에 “네트워크 효과가 매우 중요하고 결국은 규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이라먀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잠재적 부작용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이자벨 슈나벨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가 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2026 BOK 국제콘퍼런스'에서 정책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은행은 그동안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이 발행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뜻을 보여왔다.
금융시장 혼란이나 이용자 피해 발생 가능성 등을 고려해 규제 수준이 높은 은행을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안전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2025년 10월 ‘디지털시대의 화폐, 혁신과 신뢰의 조화’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발행 주체의 신뢰성과 규제 준수 역량이 중요하다”며 “비은행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기에 앞서 금산분리 원칙 수정 등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정책 기조에 따라 실제 시장에서는 대형 은행지주들이 전면에 나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주도권 확보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하나은행을 중심으로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지분 확보에 나섰다. 이번 두나무 지분투자는 하나은행이 국내에서 단행한 전략적 지분투자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KB금융그룹은 이날 서울 여의도에서 NH농협은행과 IBK기업은행, BNK부산은행, 경남은행, 토스 등과 디지털자산사업 관련 미팅을 진행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자리라는 시선이 나온다.
KB금융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날 간담회는 은행권이 모여 디지털자산 발행과 유통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과 시장 흐름 등을 공유하고 의견을 교환하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앞서 2025년부터 국내외 학계와 정책 일선의 저명 인사들이 모여 주요 경제현안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 BOK 국제콘퍼런스를 열어왔다.
올해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며 화폐와 통화 시스템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중앙은행의 역할 재편에 관한 연구와 정책사례를 주요 의제로 다룬다.
행사 마지막 세션에서는 로버트 M. 타운센드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교수가 좌장을 맡고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 투오마스 밸리마키 핀란드은행 이사, 다니엘 팔로타이 헝가리중앙은행 부총재, 장타오 국제결제은행(BIS) 아시아태평양 수석대표, 이수형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등이 '디지털 경제 시대의 중앙은행 역할'에 관한 패널토론을 펼친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