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 옥스팜 트레일워커 참가자들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
[인제=비즈니스포스트] 나의 걸음이 생명을 구하는 소중한 발걸음이 된다.
2026년 5월16일부터 17일까지 강원도 인제는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 땀 흘리며 걷는 이들로 가득 찼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이 주최한 올해 ‘옥스팜 트레일워커’에는 역대 가장 많은 총 222개 팀이 참가해 성황리에 진행됐다.
1981년 홍콩에서 시작된 이 행사는 매일 마실 물을 얻기 위해 수십 km를 걸어야 하는 세계 빈곤 지역들의 현실에 공감해 보기 위해 마련됐다.
옥스팜 트레일워커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다른 대회와 달리 4인이 한 팀을 이뤄 38시간 이내에 100km를 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참가자들이 참가비 외에 주변 사람들에게 대회 참가를 알리고, 기부펀딩을 진행해 팀당 50만 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아야 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의지하며 걸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점은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여해 특별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 ▲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가한 신원 임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
◆ 사내 기부 행렬을 이끈 ‘신원 플래닛’
국내 종합 패션기업 신원은 ‘기업의 성장은 사회와 함께할 때 의미가 있다’는 경영 철학에 따라 이번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여했다.
올해 44명, 총 11팀이 참여해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가한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참가자를 기록했다.
입사 5개월 차 막내 직원부터 박정주 대표이사까지 임직원 모두가 생명을 구하는 귀중한 일에 참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가금과 기부금을 마련했으며, 이번 행사에서 공식 티셔츠 후원 기업으로도 함께 했다.
신원의 옥스팜 트레일워커 참여에 주도적 역할을 맡은 팀은 사회·환경·지배구조(ESG) 태스크포스(TF)팀으로 구성된 ‘신원 플래닛’이다.
팀의 리더를 맡은 정인혜 씨는 “회사 차원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하기 위해 알아보던 중 옥스팜 트레일워커의 취지에 공감해 참여를 추진하게 됐다”며 “예상보다도 많은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뜻깊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의류를 생산하고 있는 기업으로서 빈곤 지역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신원 참가팀들의 목표는 기록이나 완주가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고, 본인의 진심을 알리는 것이다.
정 씨는 “이번이 첫 참여인 만큼 아직은 서투를 수 있지만 마음만큼은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 (왼쪽부터) 박지훈 씨, 장동엽 씨, 정민기 씨, 남민석 씨 등 '클린워터 팀'이 16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열린 옥스팜 트레일워커 코스를 달리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
◆ 자연에서라면 어떤 고난도 즐겁다 ‘고난크루’, 100km의 감동을 전하자
백패킹 동호회 고난크루의 박지훈 씨, 정민기 씨, 장동엽 씨, 남민석 씨가 팀을 이뤄 옥스팜 트레일워커 100km 도전에 나섰다.
팀의 리더인 박지훈 씨는 꿈의 무대라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 ‘UTMB(울트라 트레일러닝 몽블랑)’ 100마일 코스를 완주한 경험도 있는 베테랑이다.
박 씨는 트레일러닝 대회에서도 완주를 이끌어주는 원동력은 ‘동반자’라고 했다. 코스를 함께하는 참가자들을 비롯해 대회가 치러지는 지역 주민들과 한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씨는 두 번의 UTMB 출전을 비롯해 여러 대회 출전 경험을 떠올리며 “결승점에서 들려오는 주민들의 응원 종소리와 따뜻한 환대를 잊을 수 없다”며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눈짓, 손짓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나눠가면서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준 동반자들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 씨를 비롯해 모든 고난크루 팀원들의 이번 옥스팜 트레일워커 참가 목적은 ‘기록’이 아니다.
부상을 입은 팀원이 있어 속도를 낼 수는 없지만, 힘들어하는 참가자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고 도움을 전하며 모두와 함께 마음을 나누려 한다.
고난크루 팀원들은 한 목소리로 “트레일러닝 매력은 순위 경쟁이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서로를 응원하고 보살피며 끝까지 가는 데 있다”며 “동호회 회원들에게 이 행사를 더욱 널리 알려서 내년에는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 (왼쪽부터) 김소영 씨, 윤여진 씨, 윤지윤 씨, 유미선 씨 등 '걸스온더트레일 팀'이 16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트레일워커 코스를 지나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
◆ 트레일러닝이 이어준 소중한 인연 ‘걸스온더트레일’
걸스온더트레일은 2025년 여름 한 여성 패션 브랜드의 트레일러닝 행사에서 처음 만난 4인으로 구성된 팀이다.
지난해 18km의 트레일러닝을 완주한 뒤 더 큰 도전을 해보고 싶어 50km 완주에 나섰다.
이들은 주변에서 보내주는 응원과 함께 도전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각각 사는 곳이 다르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모여 장거리 훈련을 하고, 각자 매달 100km씩 달린 것을 인증하는 방식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인 만큼 우정이 깨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이번을 계기로 우정이 더 단단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위해 가장 체력이 좋은 팀원이 맨 뒤에서 달리며 서로 속도를 맞춰가기로 약속했다.
윤여진 씨는 “서로 파이팅을 외치며 다정한 속도로 완주해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응원을 전하고 싶다”며 “우리의 발걸음이 도움이 필요한 곳곳에 닿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 (왼쪽부터) 조정호 씨, 김광오 씨, 최성민 씨, 양현준 씨 등 '저속주파 팀'이 16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열린 옥스팜 트레일워커 현장에서 50km를 완주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
◆ 세 번째 출전 ‘저속주파’, 20년 우정의 끈끈함
저속주파 팀은 2007년 국민대학교 국토대장정에서 만난 대학교 선후배로 이뤄진 팀이다.
이들은 국토대장정 당시 380km를 걸으며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기억을 잊지 못해 2022년, 2024년에 이어 올해까지 세 번째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여했다.
인제에 거주하는 한 팀원은 “기부와 트레일을 함께 할 수 있는 행사가 내가 사는 지역에 열리니 꾸준히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저속주파라는 팀명은 쾌속은 아니더라도 끝까지 꼭 완주하자는 의미를 담아서 지었다.
팀원들은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지인들과 만날 때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알리면서 후원을 격려했다. 주변인들도 행사의 취지에 공감해 선뜻 기부 펀딩에 동참해 훈훈함을 더했다.
저속주파 팀원들은 입을 모아 “기부해 주신 분들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달리겠다”며 “기부금이 꼭 필요한 곳에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통해 1억7149만 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기부 펀딩은 옥스팜 트레일워커 홈페이지를 통해 5월31일까지 계속된다.
기부금은 전액 식수와 위생, 자립을 위한 생꼐 지원 등 전 세계 긴급 구호 현장에 전달된다.
참가자들의 땀과 열정, 각자의 특별한 사연이 모여 만들어지는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단순한 기부 행사를 넘어, 함께 걷는 즐거움과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 되고 있다. 최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