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라비시 보일 현대차 북미 제품담당 임원이 11월20일 미국 L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동차 박람회장에서 전기차 아이오닉6N을 소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전기차 지원을 줄이고 배출가스 규제를 완화하는 등 친환경 정책에서 후퇴하는 배경에 중국 전기차의 급성장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포드와 독일 폴크스바겐 등 완성차 기업은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전기차 사업 구조조정에 들어갔는데 현대자동차도 ‘선택의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17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내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판매 비중이 3분의 2가량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전기차 시장은 성장세가 정체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유럽 완성차 업체도 중국의 시장 진출로 비효율적 운영 방식이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EU가 중국 전기차 산업과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판단에 ‘지는 싸움’ 대신 전기차 전환을 늦추고 내연기관 차량에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미국 정부와 유럽연합의 자동차 산업 정책 변화는 전기차 판매 부진을 이끄는 ‘원인’이 아니라 이미 중국이 관련 시장을 점령한 데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컨설팅업체 인트라링크그룹의 다니엘 콜라 자동차 분석 책임은 블룸버그에 “미국과 EU가 중국 전기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최근 들어 내연기관차로 방향을 더욱 거세게 꺾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7일 포드의 유럽향 전기차에 9조 원대의 배터리를 공급하려던 계약을 해지한다고 한국 금융당국에 공시했다.
포드는 지난 15일 미국에서도 F-150 라이트닝 전기 픽업트럭을 단종하고 SK온과 배터리 합작법인도 청산했다.
폴크스바겐 또한 전기차 생산을 일부 중단했다. 폴크스바겐은 16일 전기차 ID.3를 생산하던 독일 드레스덴 공장을 완전히 완전히 폐쇄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미국과 유럽이 친환경 정책을 늦추는 데 발맞춰 포드와 폴크스바겐 등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사업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올해 9월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약 1천만 원)까지 제공하던 세액공제를 폐지한 데 이어 이번 달 3일 내연자동차의 연비와 배출가스 규제를 완화했다.
EU 의회 또한 2035년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를 기존 100%에서 90%로 낮추기로 정하고 법제화 과정에 돌입했다.
반면 BYD를 비롯한 중국 전기차 업체는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내수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 ▲ 인도네시아 반텐주 탄중에서 열린 자동차 박람회에서 11월22일 방문객들이 중국 BYD가 전시한 전기차 아토1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조사업체 슈미트자동차연구소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서유럽 시장 점유율이 올해 들어 10월 기준 10.7%라고 집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포인트 상승했다.
앞서 EU가 지난해 10월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3%의 관세를 부과했는데도 중국 업체가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기업은 미국을 제외한 남미와 중동, 동남아시아 등 시장에서도 꾸준히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유럽과 미국 자동차 제조사가 경쟁력 있는 전기차 모델을 내놓지 못하면 이들 시장마저 중국에 내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시장 변화는 현대차에 ‘선택의 시간’을 강요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현대차도 포드나 폴크스바겐과 마찬가지로 미·EU 당국의 부정적인 정책 여파를 피하기 어렵다.
일단 현대차는 미국 내 생산을 늘리고 유럽에도 보급형 전기차 아이오닉3를 내년에 출시하며 전기차 전환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보였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15일 현지매체 애틀랜타비즈니스크로니클 인터뷰에서 “조지아주 공장 생산 능력을 당초 발표보다 더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미국과 유럽 등 현지에서 전기차를 직접 생산하는 방식으로 관세 등 외부 변수에 대응하고 있다.
현대차는 9월18일 연 투자자 행사에서 현지 맞춤형 전기차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등 친환경차 신차를 내년부터 대거 출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쪽이 중국에 백기를 들고 내연기관차를 계속 만들도록 정책을 조정하고 전기차 지원은 줄이면서 현대차로서는 관련 투자가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요컨대 현대차가 미국과 EU의 정책과 반대 방향으로 전기차에 계속 힘을 실을지, 아니면 포드와 폴크스바겐처럼 현실을 인정하고 무게중심을 내연기관차로 돌아갈지 여부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서구 자동차 기업은 내연기관으로 수익을 내는 동시에 전기차에 투자해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