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초격차’를 꿈꾸는 강소 스타트업이 있다. 바이오, 헬스케어, 모빌리티, 반도체, AI, 로봇까지 시대와 미래를 바꿀 혁신을 재정의하며, 누구도 쉽게 따라오지 못할 ‘딥테크’ 혁신을 만든다. 창간 12년, 기업의 전략과 CEO의 의사결정을 심층 취재해 온 비즈니스포스트가 서울 성수동 시대를 맞아 우리 산업의 미래를 이끌 [초격차 스타트업] 30곳을 발굴했다. 연중 기획으로 초격차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지속 가능한 기술적 혁신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한다. |
▲ 김주희 파운드오브제 대표.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김주희 파운드오브제 대표는 강화되는 환경 규제 속에서 폐플라스틱 시장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했다.
LG전자 VS사업본부에서 자동차 전장 사업을 담당하던 그는 플라스틱 업체들의 현실을 직접 접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워왔다.
“재활용 원료를 만드는 중소 사업자, 특히 연세가 많은 분들에게 ‘지금 파는 값이 적정한가’라고 물으면 명확히 답하기 어렵습니다. 원료 가격은 제각각이고, 새로운 거래처를 찾는 것도 쉽지 않죠. 게다가 화학회사 담당자들은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업체와 거래를 꺼려 연결이 끊기기도 합니다.”
그는 이런 정보 비대칭과 거래 불확실성이 업계의 핵심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플랫폼의 필요성을 확신했다.
2023년 LG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 ‘스튜디오341’에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했고, 이듬해 6월 스핀오프 형태로 파운드오브제를 설립했다. 회사 설립 3달 만에 중소벤처기업부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파운드오브제가 운영하는 플랫폼 ‘소재모아’는 재활용 플라스틱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한다.
영세한 생산자는 제값을 받고 거래하기 어렵고, 대기업 구매자는 품질이 보장된 원료를 찾기 힘들다.
시장은 여전히 전화와 오프라인 네트워크에 의존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이 간극을 기술과 데이터로 메우고자 했다.
“우리는 영세 생산자의 목소리를 듣고, 대기업 구매자의 요구를 기록합니다. 그 사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죠. 거래가 단순히 가격으로만 결정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 김주희 파운드오브제 대표가 2025년 9월17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 오픈이노베이션 페스티벌 '슈퍼스타트 데이 2025'에 참여해 LG계열사와의 협업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파운드오브제> |
현재 파운드오브제는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등 거래량이 많은 소재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 시장만 1조2천억 원 규모이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전 세계 재활용 시장의 60%를 차지한다. 회사는 이미 137곳의 판매 협력사와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대기업과 중견 제조업체까지 고객으로 확보했다.
김 대표는 “한 번 거래한 고객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며 "재거래율이 100%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창업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외주로 개발한 첫 플랫폼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월급이 끊겨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계획이 무너지고 미완성된 기능을 다시 구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 경험을 통해 핵심 기술은 반드시 내부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당시의 어려움조차 더 나은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 자산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확보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영업 담당자들이 전국을 직접 다니며 소재를 받아오고, 업체를 만나 원하는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굉장히 아날로그한 방식이라 쉽지 않았지만, 방법이 없으니 계속할 수밖에 없었죠. 결국 버티고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5년은 파운드오브제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회사는 오프라인 거래 기반을 다지며 LG그룹사, 롯데케미칼 등과의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사업 모델을 검증했다.
동시에 플라스틱 분석 기능을 내재화해 업계 내 전문성을 한층 강화했다. 이를 토대로 4분기에는 디지털 플랫폼 ‘소재모아’를 고객 지향적으로 고도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는 오프라인 기반에서 신뢰를 쌓는 단계였다면,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디지털 플랫폼 전환에 나설 계획입니다. 주력 소재의 범위를 넓히고, 자체 분석 장비를 활용해 공급망 품질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구축할 것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고객 맞춤형 제안을 더욱 정교하게 제공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김주희 파운드오브제 대표. <비즈니스포스트> |
‘파운드오브제’라는 이름은 예술 용어에서 가져왔다. 쓰임을 다한 사물에 새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다.
“가끔 ‘소재모아’가 진정한 친환경 플랫폼이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사용된 플라스틱이 다시 버려지지 않고 순환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친환경이라고 믿습니다.”
파운드오브제의 미션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장의 비효율성을 해소하고 순환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재활용 플라스틱 거래 확대를 통해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며, 회사의 성장이 곧 사회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지향한다.
앞으로 파운드오브제는 데이터 기반 기술에 집중한다.
재활용 소재의 물성 데이터를 관리하고, 최적 알고리즘을 적용해 수요자에게 최적의 원료를 제안하는 기능을 개발 중이다. 탄소배출량 산정 데이터, 인증 추적 시스템도 강화할 계획이다.
투자 유치 계획도 준비 중이다. 올해 매출 성장을 통해 사업 모델을 검증하고, 내년 2분기에는 pre-A 라운드 투자를 추진한다.
10년 후를 묻자 김 대표는 잠시 생각했다.
“저는 여전히 도전하고 있을 겁니다. 파운드오브제가 폐플라스틱 거래의 글로벌 기준을 세운 회사로 자리 잡겠죠. 그리고 저는 ‘재활용 플라스틱 표준을 만든 선구자’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조승리 기자
▲ 김주희 파운드오브제 대표. <비즈니스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