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입사해 45년 동안 중장비 제조업체 캐터필러(Caterpillar)를 지켰던 짐 엄플비(Jim Umpleby). 그는 2017년 1월부터 2025년 5월까지 CEO를 역임하면서 회사를 디지털 전환 시키는 데 성공했다. <캐터필러> |
[비즈니스포스트] “새로운 보안관이 나타났다.(The new sheriff in town)”
2017년 1월, 미국 텍사스주 어빙(Irving).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 캐터필러(Caterpillar)의 새 CEO에 짐 엄플비(Jim Umpleby·67)가 임명됐다. 당시 투자 전문매체 배런스(Barron’s)는 그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서부극에서 보안관은 법과 질서를 바로잡는 상징적인 존재다. 배런스가 엄플비를 ‘보안관’이라 부른 건 조직을 다잡고 성과 중심 문화를 세울 인물로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엄플비는 기존의 안일함을 걷어내고, 조직에 강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언론은 그를 두고 “평범함은 용납되지 않는다(Mediocrity will not be tolerated)”고 평했다. ‘보안관 엄플비’는 디지털 전환과 체질 강화로 미래의 발판을 놓았다.
성과가 현실로 나타나자, 2022년 10월 캐터필러 이사회는 사내 규범 하나를 과감히 폐지했다. 바로 ‘CEO 65세 정년 은퇴 정책’이었다.
엄플비의 유임을 위해 조직의 룰을 뒤엎었던 것이다. 이는 엄플비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넘어 투자자와 고객, 협력사 모두에게 안정적 신호로 작용했다.
특히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 엄플비의 유임은 캐터필러가 경험 많은 리더와 함께 위기를 넘어갈 준비가 됐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캐터필러는 단순한 중장비 회사가 아니다. 캐터필러(Caterpillar)를 줄인 브랜드명 ‘CAT’는 튼튼함과 신뢰의 상징이며, 굴착기나 불도저를 통틀어 현장에서는 ‘CAT’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치 복사기를 제록스라 부르는 것처럼, 브랜드가 곧 산업의 보통명사가 된 셈이다.
▲ 세계 건설 현장엔 늘 캐터필러(Caterpillar)의 중장비들이 있었다. 노란색 불도저는 ‘길을 여는 기계’의 상징이 되었다. <캐터필러> |
올해 창업 100년을 맞은 캐터필러의 DNA는 진흙탕에서 시작됐다. 1904년 추수감사절, 발명가 벤저민 홀트(Benjamin Holt)는 농부들의 골칫거리 해결에 나섰다.
그전까지 농사일을 돕던 바퀴 달린 증기 트랙터는 진흙에 빠져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홀트는 그날 낡은 증기 트랙터의 뒷바퀴를 떼어내고, 자신이 고안한 철제 궤도를 달았다.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거대한 기계가 진흙탕 위를 미끄러지듯 거침없이 통과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사진작가가 신기한 듯 “거대한 애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고 외쳤다.
이 한마디가 ‘캐터필러(Caterpillar, 애벌레라는 뜻)’의 이름이 됐다. ‘기어가는 애벌레’라는 별명이 세계 산업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홀트가 궤도 트랙터를 개척할 때, 또 한 명의 혁신가인 C. L. 베스트는 가솔린 엔진에 집중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홀트의 트랙터는 군수 장비로 미군에 대거 공급됐다. 무엇보다, 트랙터의 무한궤도 기술은 탱크 등 전차에 적용돼 전쟁터에서 폭넓게 활용됐다.
전쟁 후 홀트와 베스트는 손을 잡았고, 1925년 ‘캐터필러 트랙터 컴퍼니(Caterpillar Tractor Co.)’가 탄생했다. 캐터필러의 위력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빛났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은 활주로와 군사 기지를 건설해야 했다. 그 최전선에 선 것이 캐터필러의 트랙터와 불도저였다. 아이젠하워 장군은 “(캐터필러의) 불도저는 전쟁 승리에 기여한 필수 장비였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 캐터필러는 1925년 일리노이주에서 설립되어 올해 창업 100년을 맞았다. 캐터필러는 건설·광산 장비를 비롯해 디젤 ·천연가스 엔진, 산업용 가스터빈, 디젤 전기 기관차를 제조하는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이다. <캐터필러> |
1969년 7월 20일 NASA의 달 착륙 순간에도 캐터필러가 있었다. 아폴로 11호가 달과 지구를 연결할 때 전력을 공급한 것도 캐터필러의 장비였다.
캐터필러가 새 전환점을 맞은 건 짐 엄플비가 무대에 오르면서다. 1980년 엔지니어로 입사한 엄플비는 30여 년 동안 캐터필러를 두루 거쳐 2017년 CEO에 올랐다. 그의 무기는 ‘O&E 모델(Operating & Execution Model)’이었다.
이 모델은 MIT 슬론 경영대학원 진 로스(Jeanne Ross)가 정립한 ‘운영 모델(Operating Model)’의 변형판으로, 운영 자원을 가치가 큰 사업에 집중하고 전략과 실행을 연결하는 체계다. 포브스는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캐터필러의 성공은 O&E 모델이라는 경영 전략의 결과물이다. O&E 모델을 통해 가장 수익성이 높은 부문에 점점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함으로써 체계적으로 경쟁 우위를 구축했다.”
엄플비의 O&E 모델은 올해 6월 맥킨지가 발표한 ‘Organize to Value(가치 중심 조직)’와도 맥을 같이 한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자.
“매킨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3분의 2는 지난 2년 동안 ‘운영 모델’을 재설계했으며, 절반은 향후 2년 안에 재설계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고성과 기업조차도 전략의 잠재력과 실제 성과 사이에 30%의 격차가 있으며, 이는 ‘운영 모델’의 결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매킨지 사이트: A new operating model for a new world 인용)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업들은 단순한 운영 효율을 넘어, 전략과 성과의 간극을 줄이는 ‘가치 중심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플비 역시 거기에 집중했다.
O&E 모델의 중심은 고객이다. 엄플비는 “고객에 대한 우리의 여정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며 고객의 생애주기 전체를 함께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예컨대 Cat Financial은 고객 맞춤형 금융 솔루션을 제공해 장비 구매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Cat 인증 재생 프로그램은 노후 장비를 새 제품 수준으로 복원하고 합리적 비용으로 제공했다.
과거에는 장비 판매에 의존했지만, 장비에 센서를 부착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예측 정비 서비스를 제공했다. 일종의 ‘구독 모델’ 구조다.
고객은 비용을 절감하고, 캐터필러는 안정적인 서비스 매출과 탄탄한 현금 흐름을 확보했다. 경쟁사와의 차별화도 분명해졌고, 고객들의 장비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연비가 뛰어나고, 고장이 적고, 조작이 간편하며, 다양한 환경에서도 믿을 수 있다.”
▲ 한국의 철도역에서 작업 중인 캐터필러(CAT) 굴착기의 모습. <이재우> |
엄플비는 미래를 앞서 읽는 CEO이기도 했다.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이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발전기와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소규모 전력망) 수요를 미리 포트폴리오에 반영했다. 구리와 리튬 채굴 장비 수요도 늘어날 것을 계산했다.
결국 O&E 모델은 캐터필러의 성장 엔진이 됐다. 전략과 실행이 하나로 맞물릴 때 기업은 위기를 넘어 산업을 이끄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엄플비는 증명했다.
그런 엄플비는 캐터필러를 ‘중장비 파는 회사’에서 ‘데이터와 에너지 서비스를 파는 회사’로 바꿔놓았다. 진흙 위를 기어가던 ‘애벌레’가 이제 디지털의 날개를 단 나비로 솟구친 것이다.
짐 엄플비는 평범함을 허락하지 않는 서부극의 보안관이었다. 그리고 그의 전략과 실행은 단지 한 기업의 드라마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모든 산업의 기업은 디지털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엄플비는 묻고 있다.
“당신의 회사는 아직 애벌레인가, 아니면 이미 나비인가?”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