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8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위기 특별위원회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각국이 유엔 기후기관이 정한 차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출 기한을 앞두고도 협의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세계 각국이 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기후총회 본회의에서 주요 논의의 기반이 되는데 이번에 제출이 늦어지면서 과거에 발생했던 혼란이 다시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9일 정부, 국회, 환경단체 발표 등을 종합하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두고 한국 내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의견차가 여전히 큰 것으로 파악됐다.
플랜1.5와 녹색전환연구소 등 국내 기후단체들은 정부가 잠재적으로 결정한 '2035 NDC' 목표치가 국제 기준에 미달하며 국민의 환경권을 보호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앞서 환경부는 8일 국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35 NDC 복수 논의안을 발표했는데 2018년대 대비 40%대 감축 방안부터 67%까지 여러 수준의 논의안을 내놨다. 정부는 목표치로 53%를 채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까지 일정하게 감축 속도를 높여가는 '선형감축경로'를 따른다면 2035 NDC는 53%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녹색전환연구소는 논평을 통해 "선형감축경로는 기후 마지노선을 훼손할 수 있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권고한 61%보다 낮은 수치이기 때문이다.
한편 산업계 쪽에서는 2035 NDC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소폭 상향한 40%대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사이에 첨예한 대립에 환경부는 복수 논의안을 기반으로 한 범국민 공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2035 NDC를 제출하는 시점을 올해 11월로 잡겠다고 설명했다.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는 올해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다. 결국 당사국 총회 개최가 임박한 시점에 2035 NDC를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정한 제출 기한은 9월24일이다. 이것도 원래 올해 2월까지가 제출기한이었는데 대다수 국가들이 국내 사정을 들어 제출하지 않아 한 차례 연기한 것이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배출권 유상할당 경로와 NDC와 관련해서 아직 부서 내에서 입장이 완전하게 통일돼 있지는 않다"며 "정부에서는 어떤 선형 경로를 택하는가에 따라 산업계를 향한 지원과 변화의 강도를 어느 정도로 세게 해서 할 것인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035 NDC 제출은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제시한 시한 안에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총회 본회의를 앞두고 모든 국가가 제출한 기후목표를 종합 평가할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후총회에서 각국 대표단은 기후목표 종합 평가 보고서를 기반으로 향후 방침을 결정한다. 따라서 2035 NDC 제출이 늦는다면 회의에서 결정되는 내용도 그만큼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1년 11월에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는 주요 20개국(G20) 등 많은 나라들이 회의 개시 시점에 임박해 '2030년 NDC'를 제출하면서 심각한 혼란이 발생했다.
당시 제출된 2030 NDC를 종합해 평가한 결과 국제 기후목표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종합 평가가 뒤늦게 나와 여러 국가들이 회의 도중에 NDC를 급하게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COP26 회기도 하루 연장됐다.
한국도 2021년 12월 COP26 회의 종료 직전에 2018년 대비 24.4%로 설정해 제출한 2030 NDC 원안을 40%로 상향 조정해 다시 제출했다.
▲ 시진핑 중국 주석(오른쪽)이 지난달 31일 중국 텐진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문제는 현재 2035 NDC 제출이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 주요국이 한국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에 2035 NDC를 제출한 국가는 단 28개국에 불과하다. 유럽연합(EU), 중국, 인도 등은 여러 주요국들이 제출하지 않고 있다.
8일(현지시각) 가디언은 유럽연합 내부협상 문서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유럽연합이 아직 2035 NDC를 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잠정적 수치나 범위라도 있어야 할 곳이 비어 있다는 것은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니콜라스 회네 비영리 연구단체 '신기후연구소' 공동설립자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유럽연합의 기후목표 설립이 너무 지체되고 있다"며 "이번 협상문서에 목표치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실망적"이라고 강조했다.
중국도 2035 NDC를 사실상 총회 개시 시점에 임박해 제출할 것으로 전망됐다.
앞서 올해 7월 중국은 유럽연합과 기후정상회담을 마친 뒤 2035 NDC를 기후총회 이전까지만 제출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로이터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에 따르면 유럽연합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시점과 목표 등을 정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중국 정부는 이를 계속 보류하고 있는 파악됐다.
인도는 올해 2월 선진국들이 먼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2030 NDC보다 상향된 2035 NDC 책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올해 COP30 개최를 맡은 브라질은 각국에 기한에 맞춰 2035 NDC를 제출해줄 것을 재차 촉구하고 있다.
안드레 코레아 두 라고 COP30 의장은 지난달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NDC는 단순히 2035 기후목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의 미래를 향한 비전을 상징한다"며 "이를 협력의 매개체 삼아 함께 기후대응을 위한 비전을 실현토록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