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자가 “(과거 금융위원장을) 다들 존경하고 (임종룡 위원장도)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박 의원의 본격 질문이 시작됐다.
“임종룡 위원장은 과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계획을 금융감독기관장으로서 끝까지 반대했다. 과거 특검 수사로 다 밝혀진 내용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느냐.”
3일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로 내년 3월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여부가 꼽힌다.
새 정부 들어 주요 금융지주 회장의 리더십은 언제나 흔들렸는데 그 중에서도 임 회장의 리더십에 유독 금융권의 관심이 몰리는 이유는 그의 남다른 무게감 때문이다.
임 회장은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한 관료 출신 대표이사(CEO)로 박근혜정부 마지막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윤석열정부에서도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제안 받을 정도로 관료로서 역량을 인정 받았다.
고위 금융당국자가 민간금융사로 가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금융산업 정책과 감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장을 지냈던 인사가 민간금융사 대표를 맡은 것은 2008년 금융위 출범 이후 임 회장이 처음이다.
이에 임 회장은 우리금융 회장에 취임할 때부터 우리금융의 새 시작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관치금융, 특혜 논란과 관련해 시장에서 곱지 않은 눈초리도 받았다.
당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이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의 압박에 밀려 물러나는 모양새가 연출된 뒤 임 회장이 빈자리를 채우면서 관치금융을 우려하는 시선은 더욱 강해졌다.
그렇다고 임 회장의 자리가 윤석열정부에서 안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임 회장은 임기 초반 윤석열정부의 주요 금융정책인 상생금융에 선제적으로 발을 맞추며 ‘아름다운 동행’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 전임 회장 관련 금융사고 의혹이 터지며 금융당국과 상당히 불편한 관계에 놓였다.
임 회장은 지난해 내부통제 이슈로 4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처음으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도 불려 나갔다.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국감에서 우리금융 사태를 두고 “정권의 금융기관 인사 개입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복현 원장이 연임 의지를 고수하던 전임 손태승 회장을 주저앉혔고 이번에는 임종룡 회장을 내몰고 있다”며 “이복현 원장이 담당 국장을 불러서 이번에 임 회장 못 내보내면 우리가 옷 벗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우리금융을 탄탄하게 이끌고 있다. 하지만 당시 업계에서는 12.3 계엄 사태로 윤석열정권이 무너진 점이 임 회장이 자리를 지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왔다.
내년 이후 임 회장의 거취가 여전히 금융권의 관심사인 만큼 이번 이억원 후보자 청문회에서 갑작스럽게 나온 임 회장의 금융위원장 시절 삼성생명 이야기는 무게감을 지닐 수밖에 없다.
박범계 의원은 임 회장이 금융위원장 시절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을 끝까지 반대했다고 강조한 뒤 곧바로 과거 금융당국이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막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 박범계 의원(오른쪽)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억원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화면 캡쳐>
과거 금융당국이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을 막은 사례와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막지 못한 사례를 비교하며 금융당국에 제대로 된 감독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삼성생명의 회계처리 이슈가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상황이다.
박범계 의원은 문재인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던 여당 4선 중진의원으로 20대 국회에서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간사로 활동했다.
박범계 의원이 4선을 지내는 동안 국회 정무위에 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 금융위원장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자리에서 박 의원이 약 10년 전 삼성생명 지주사 전환 과정의 갈등을 소환한 것은, 당시 금융위원장으로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임 회장의 향후 입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임 회장은 취임 이후 외풍에 크게 흔들리기도 했지만 관료 생활의 오랜 연륜을 바탕으로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으며 우리금융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임 회장은 우리금융에 온 뒤 민영화를 마무리했고 증권사와 보험사 인수를 통해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의 발판도 마련했다.
임 회장은 2023년 3월 우리금융 회장에 올라 내년 3월 3년 임기가 끝난다. 금융권에서는 임 회장이 연임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2023년 말 마련한 ‘은행지주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 따르면 회장 선임과 관련해 '승계절차가 촉박하게 진행되거나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최소 임기만료 3개월 전'에는 승계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