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석 국무총리가 22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탄소중립 녹색성장 글로벌협력 콘퍼런스' 개회사를 마치고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정부가 곧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 차기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두고 사회 각계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후대응은 국민의 인권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만큼 수립 절차에 대중의 의사가 어느 정도 반영될 필요가 있는데 정부는 모든 것을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감축목표가 기후대응 실현 가능성은 배제한 채 제출 기한에만 초점을 맞춘 '졸속 계획'으로 나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25일 환경단체 발표와 국제 전문가 발언 등을 종합하면 한국 정부가 몇 주 안으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NDC는 파리협정에 서명한 국가들이 주기적으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해야 하는 중기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다. 파리협정은 글로벌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아래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UNFCCC가 정한 '2035 NDC' 제출 권고 기한은 올해 9월까지다.
국내 기후단체들은 실효성 있는 2035 NDC 수립이 국민의 환경권 보호에 있어 필수적인 만큼 시민사회와 각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부는 이를 아직 수용하지 않고 있다.
실제 김민석 국무총리는 22일 '탄소중립 녹색성장 글로벌 협력 콘퍼런스'에 참여해 "올해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맞춰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담은 기후대응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도 도전적이고 실현할 수 있는 목표를 마련 중"이라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기후단체 플랜1.5는 정부가 국민 의사를 무시한 채 졸속으로 2035 NDC를 수립해 제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플랜1.5는 14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들과 함께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운동본부를 창설하고 2035 NDC 확정 절차 중단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병주 변호사는 "이번 가처분은 9월까지 정부가 2035 NDC를 졸속으로 결정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제기했다"며 "기후위기를 실제로 해결할 각오와 방법과 능력을 가진 대한민국 기후시민들이 대규모로 조직되고 나서서 기후위기를 끝내는 전환점을 만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운동본부는 "정부가 2035 NDC를 적법하게 수립할 준비가 부족한 것이라면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정한 기한(올해 9월)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내년까지도 발표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기후단체들은 2035 NDC가 곧 발표될 것이라면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국제법 기준에 부합하는 형태로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운동본부 구성원들이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2035 NDC 확정 절차 중단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한 뒤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플랜1.5 > |
이와 관련해 기후솔루션, 플랜1.5, 국제환경법센터(CIEL), 어스저스티스 등 국내외 기후단체 33곳은 25일 한국 정부에 공동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야심찬 2035 NDC 목표 설정은 정치적 선택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법적 의무"라며 "각 당사국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권고적 의견을 2035 NDC 수립에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ICJ는 지난달 23일 세계 각국 정부가 기후대응을 위해 충분한 의무와 조치를 다하지 않는다면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해당 권고 의견은 법적 구속력이 없으나 최고 국제사법기구가 내린 판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관습적으로 작용하는 국제법 체계 안에서 앞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마르코스 오렐라나 유엔 독성물질·인권 특별보고관은 "국제사법재판소는 각국이 단순히 NDC를 수립하고 제출하는 것에 그쳐선 안되며 '1.5도 목표' 달성에 적절히 기여할 수 있음도 밝혀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며 "기후변화 문제는 형식적 절차나 불충분한 목표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ICJ는 특정 국가가 수립한 NDC는 자국뿐 아니라 타국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각국은 국제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소병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관습법상 '상당한 주의' 의무란 기존 국가들이 느슨한 파리협정 NDC 관련 의무를 단단히 하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는 헌법 6조 1항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로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정한 감축 성과를 지향하는 선형감축경로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2035 NDC를 2018년 대비 약 55%로 설정할 수도 있다. 이번에 서한을 보낸 기후단체들은 한국이 이미 국제 기준에서 뒤떨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2035 NDC는 최소 60% 이상으로 설정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이미 국내에서도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NDC 수립을 향한 법적 압박을 받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8월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법 제8조 제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부재해 국민 환경권과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바라봤다.
현재는 당시 "2026년 2월 안으로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2050년까지 이를 이행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라"고 판시했다.
엄예은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으로서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이 강조한 1.5도 목표와 부합하는 최고 수준의 감축목표를 2035 NDC에 반영해야 한다"며 "특히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인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 NDC 목표를 상향할 수 있는 핵심 경로"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