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 교세라 창업자이자 명예회장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경영의 신’으로 불렸다. 지난 2022년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교세라 그룹> |
[비즈니스포스트] 2010년 1월 일본항공(JAL)은 파산했다. 빚이 자산보다 많은 재무적 부실 때문이었다. 빚이 많이 생긴 연유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방만 경영이었다. 교육 사업과 정보기술(IT) 사업, 레스토랑 사업까지 확대한 도덕적 해이는 결국 일본항공을 빚더미에 올려놓고 말았다.
일본항공 회생을 놓고 고심하던 일본 정부는 당시 78세였던 교세라 그룹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에게 재건을 부탁했다. 하지만 이나모리 회장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자신의 나이가 여든을 바라보고 있고, 교세라에서도 물러났다는 점을 들어 몇 번이나 고사했다. 하지만 총리까지 가세한 거듭된 요청을 받자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고, 결국 회장 취임을 받아들였다.
당시 일본항공이 지고 있는 부채는 21조 원에 달했고, 매년 5천억 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있었다. 언론은 일본항공의 재건을 누가 주도하든 파산은 피할 수 없으리라고 전망했다.
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자동차의 혼다 소이치로와 함께 일본 ‘경영의 3신(神)’으로 꼽힌 이나모리 회장은 JAL의 회생을 위해 자신의 연봉까지 포기하며 재건에 매달렸다. 개혁에 착수한 지 불과 1년 만에 파탄 난 재정을 회복했고, 그 다음 해부터는 역대 최고 수익을 해마다 경신했다. 그리고 약 2년6개월이 지나 일본항공은 주식시장에 재상장됐다.
이나모리 회장이 일본항공 회장으로 갈 때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항공업에 문외한이라는 지적이었다. 교세라가 시가총액이 25조 원이 넘고, 파인세라믹 소재, 디바이스, 네트워크 사업 등에서 전 세계적인 회사인 것은 맞지만 항공부품조차 만져본 적이 없는, 항공업의 특수성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 일본항공을 맡는 것에 대해 노조를 비롯한 항공업계에서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그가 일본항공을 성공적으로 재건할 수 있었던 연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가 남긴 말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경영은) 실수할 수 있다. (사업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에 마음을 빼앗겨선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휘청거리지 않고 마음을 잘 간수하는 것, 이것이 리더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태도다.”
이나모리 회장은 문외한이냐 전문가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절대로 꺽이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며,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의심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사람을 보고 그 분야의 전문가나 전공이 사업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의외로 그 분야에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 즉 문외한이 많다. 이들은 비전문가라는 비난을 받지만, 묵묵히 자신이 목표로 한 회사를 만들고 성공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비즈니스포스트가 주 1회 연재하는 ‘초격차 스타트업’을 보면 이를 절실히 알 수 있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달에 무인탐사로봇을 보내겠다는 다소 뜬금없는 목표로 회사를 창업한 이도 있고, 은행에서 외환딜러로 근무하다가 예술콘텐츠에 투자하는 플랫폼을 만든 이도 있다. 기업투자 담당자로 일하다가 신약을 만들고 싶다는 오래된 꿈을 위해 바이오기업을 설립한 이도 있다.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컴의 히트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닌텐도는 원래는 화투와 트럼프를 만들던 회사였다. 이런 전통적인 회사를 닌텐도로 급성장시킨 제3대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山内溥) 역시 과거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그 분야의 문외한이었다.
집적회로와 반도체 제조업체인 룸의 창업자 사토 겐이치로(佐藤硏一郞) 역시 원래는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 탄소 피막 저항기(세라믹 막대 표면에 얇은 탄소막을 입혀 저항체로 이용하는 고정 저항기)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고, 그 기술을 토대로 사업을 벌인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 그 역시 해당 분야의 문외한이었다.
요즘 가장 핫한 회사인 에이피알의 김병훈 대표는 대학 시절 모바일 앱 사업과 데이트 중개 서비스 등에서 혹독한 실패를 경험했다. 그런 그가 문외한으로 5천 만원으로 화장품 및 헬스케어 분야에 뛰어들었고, 창업 10년 만에 코스피 상장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지분 31%를 보유한 김 대표의 지분 가치는 약 1조8천억 원에 달하며, 회사의 시가총액은 8조 원을 넘었다.
이나모리 회장이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는 고압초자를 만드는 무기화학 계열의 제조 회사인 쇼후공업이었다. 그는 일본 지방 대학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해 이 쪽으로 문외한이었다. 그런 그에게 처음 맡기진 일은 세라믹을 재료로 고주파 절연재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료를 찾고, 논문을 구해 번역하면서 파인세라믹에 대한 기초 지식을 습득했다. 그리고 이 때의 실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후에 교세라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를 만들고 경영하는데 꼭 전문가라야 할 필요는 없다. 문외한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최고경영자로 이름을 날리고 그 회사가 남다른 전문성을 갖추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문가에 비해 지식도 경험도 없는 문외한이 유독 빛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고, 배운 것이 많지 않다고 실망하거나 주저앉을 필요가 없다. 오히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과 충만한 의욕을 갖추고 있다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자격이 충분하다. 장원수 유통&4차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