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증권업계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미국 원전 산업이 중장기적으로도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현대건설은 현지 시장 진입을 위한 기반 마련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정부는 2050년까지 원전 용량 4배 확대, 신규 원전의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 규제 완화 정책을 포함한 산업 확장 기조를 최근 세웠다. 단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신규 원전 10기 착공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 3월 말 미국 에너지부(DOE)가 3.5세대 소형모듈원전(SMR) 착공 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5월 말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원전산업 재건, 원전기술의 국제 확산, 인허가 개혁 등을 담은 행정명령 4건에 서명했다.
이어 6월까지 원전에 관한 세액공제 연장 및 요건 완화를 담은 구체적 법률 개정안이 각각 발의되면서 제도적 지원책도 조성되는 분위기다.
특히 미국 원전 산업 성장이 기대되는 이유로는 인공지능(AI) 기술 확산이나 기후 대응을 위한 에너지원 확보를 넘어서 미국이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원전 산업 회복에 진심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미국은 1978년 이후 50년 가까이 대형원전 신규착공이 단 2기에 그치면서 사실상 원전 산업 생태계가 멈춰 있는 상황이다.
이 사이에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원전 산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이런 국제정치의 방정식 속에서 미국의 원전 산업 회복 의지가 뚜렷하다는 분석이 많다.
러시아는 국영 원전기업 로스아톰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30개국 이상에 원전을 수출하는 등 주요 외교 수단으로 원전을 활용하고 있다. 중국도 2010년대 불어온 세계적 탈원전 기조 속에서도 50기 이상의 가동 원전 이외에도 28기를 새로 건설하는 등 경쟁력 확보를 지속하고 있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다시 등장한 원전은 단순한 전력 수급을 넘어서 미국의 산업 복귀 전략이자 글로벌 영향력 회복의 수단”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원전을 전략산업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바라봤다.
이한우 대표로서는 현대건설이 2022년부터 맺어온 미국 원전 기술기업 웨스팅하우스와 협력이 현지 원전 시장 진출을 이루기 위한 가장 큰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1886년에 설립된 세계적 미국 원자력기업으로 전 세계 50% 이상의 원전에 원자로 및 엔지니어링 등을 제공한 세계 최상위권 기업이다.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유럽 및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라이센스를 받은 3세대 원자로 개량형 기술인 대형원전 ‘AP1000’ 모델도 보유하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시장 안착을 위한 협력 전략에 직접 발벗고 나섰다.
현대건설은 현지시각 지난 19~24일 미국 현지에서 와이팅-터너, DPR컨스트럭션 등 미국 건설엔지니어링 전문지 ENR 발표 기준 미국 사업실적 10위권 내 기업뿐 아니라 자크리, 씨비앤아이 등 원전 관련 경험이 많은 유수 건설사들과 잇따라 협약을 맺었다.
이 대표는 경영진을 이끌고 직접 협약을 위한 행사에 참석해 현지 건설사의 경영진들과 미국 원전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현대건설은 향후 미국에서 원전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사전 검토, 현지 인허가, 조달 및 공정관리, 시공, 시운전까지 사업 전반에서 힘을 합쳐 수행 역량을 고도화할 기반을 마련했다. 웨스팅하우스에 이어 현지 건설사들과 협력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시작으로 현지 사업을 위한 시스템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주요 프로젝트를 통해 입증한 독보적 건설 역량과 리스크 관리 능력은 현대건설 원전 사업의 핵심 경쟁력”이라며 “전문성을 지닌 현지 기업과 협력 체계를 강화해 미국 원전 시장의 안정적 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유럽에서도 지난해 현대건설이 설계계약을 맺은 뒤 올해 본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대형원전에 이은 추가 수주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핀란드 국영 에너지기업 포툼, 웨스팅하우스와 핀란드 신규 원전 건설사업을 위한 사전업무착수계약(EWA)을 체결하며 추후 본계약 수주를 위한 밑바탕을 다지고 있다.
핀란드 포툼은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뒤 2년 동안 진행한 포괄적 타당성조사 이후 절차를 진행 중이다.
현대건설과 웨스팅하우스는 핀란드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사전업무로 초기 계획 수립, 원전 부지 평가, 인허가 내용 점검 등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모델을 적용하기 위한 검토에 나섰다. 이 과정은 향후 발주될 EPC(설계·조달·시공) 공사 입찰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 이 대표(오른쪽)와 팀 리건 와이팅-터너 대표가 2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살라만더 호텔에서 업무협약을 맺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건설>
이 대표는 원전 사업에서 쌓아 둔 경쟁력을 앞세워 현대건설의 중장기 성장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꼽은 ‘에너지 트랜지션 리더’로 발돋움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건설은 에너지 자원 확보와 공급망 안정성이 세계 경제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업계의 에너지 혁신을 주도하겠다는 방향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 대표에게 50여 년 동안 꾸준히 이어온 현대건설의 원전 경쟁력은 에너지 사업 확장에 가장 큰 무기로 여겨진다.
신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대건설은 에너지 트랜지션 리더로의 전환을 위해 신재생·원자력 에너지 관련 수주를 늘릴 계획임을 밝혔고 특히 원전에서 향후 성과가 기대된다”며 “중국, 러시아를 제외한 글로벌 원전 EPC회사들에서 '정해진 일정과 예산 범위 안에서(On Time Within Budget)' 시공이 가능한 건설사로 꼽힌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현대건설 ‘2025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원전 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파트너사와 진전된 협력 방안을 마련했고 지난주에는 불가리아 신임 내각 주요 인사들과 면담해 코즐로두이 원전 프로젝트의 순조로운 추진을 약속받았다”며 “견고한 파트너십을 교두보 삼아 현대건설의 글로벌 원전 영토 확장에 속도를 더하겠다”고 강조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