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초격차’를 꿈꾸는 강소 스타트업이 있다. 바이오, 헬스케어, 모빌리티, 반도체, AI, 로봇까지 시대와 미래를 바꿀 혁신을 재정의하며, 누구도 쉽게 따라오지 못할 ‘딥테크’ 혁신을 만든다. 창간 12년, 기업의 전략과 CEO의 의사결정을 심층 취재해 온 비즈니스포스트가 서울 성수동 시대를 맞아 우리 산업의 미래를 이끌 [초격차 스타트업] 30곳을 발굴했다. 연중 기획으로 초격차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지속 가능한 기술적 혁신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한다. |
▲ 정상원 엠브릭스 대표이사.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경기도 안양시] “기업공개(IPO)가 끝나면 저는 1층에서 커피를 내릴지도 몰라요. 누가 내려오면 그냥 한 잔 내주고, 요즘 어때요 하고 묻는 거죠.”
정상원 엠브릭스 대표가 꺼낸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유쾌한 농담 같지만, 자세히 들어 보면 진심이 묻어난다. 어느 시점엔 자신보다 더 잘할 사람이 회사를 이끌게 될 것이라는, 그때는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이야기다.
“그게 저한테는 꿈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럴 수 있을 정도로 회사를 잘 키우고 싶습니다.”
그가 말하는 IPO(기업공개)는 종착지가 아니다. 오히려 과정이고, 책임이다. 신약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회사이고, IPO는 그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한 줄의 이정표일 뿐이다.
창업의 시작은 돌아서 왔다. 원래 꿈은 의사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담임의 권유로 서울대 식품공학과에 진학했고, 그렇게 처음부터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대신 생명공학 석사를 마치고 연구를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삶의 궤도는 점점 멀어졌다. 기업투자 담당자로 일하면서 4천억 원 넘는 자금을 다뤘고, 스타트업도 차렸다. 부동산 시행 사업으로도 성과를 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실패는 없었다. 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주변에서는 성공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느 날, 팬데믹 한복판에서 오래된 꿈이 다시 떠올랐다. ‘신약을 만들고 싶다.’ 그 마음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바이오산업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일리노이대 진용수 교수가 말했다. “너 같은 사람이 바이오에 기여할 줄 알았는데 아쉽다.”
그 말이 마음 속 어디를 심쿵하게 건드렸다. “창업은 거창한 게 아니었어요. 그냥, 그래도 나는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처음부터 무턱대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공동창업자인 권대혁 교수는 오랜 선배였고, mRNA(메신저 리보핵산) 정밀전달 기술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기술을 설명하고, 논문을 내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회사를 세우는 일 모두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씩 감당해갔다.
은행 일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아내에게 꺼내기 전에 그는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 준비해 아내를 설득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한 마디로 끝냈다.
“그냥 해. 하고 싶은 거 해야지.”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저한테는 첫 번째 투자였어요. ‘믿는다’고 하지 않았지만, ‘막지 않았다’는 게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엠브릭스는 현재 항체 기반 지질나노입자(LNP) 타깃 딜리버리 기술을 바탕으로 mRNA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그랩 항체’라 이름 붙인 플랫폼은 기존과 다르게 LNP에 항체를 직접 결합해 타깃팅을 유도한다. 정부 초격차 과제에도 선정됐고, 최근에는 인비보(in vivo, 인체 내) CAR-T 치료제 개발을 위한 과제까지 따냈다.
“논문을 내기 전에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어요. 말만 하는 회사처럼 보였을 수도 있죠. 그런데 지금은 조금씩 연락이 오더라고요. 뭔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스스로에게 매일 말한다. “나는 성공했다.”
처음엔 농담처럼 시작했지만, 지금은 습관이 됐다.
“사실은 저도 불안하죠. 잘하고 있는 것인지, 방향이 맞는 건지. 근데 그런 마음으로 계속 가다 보면 어느 순간은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엠브릭스는 아직 임상 1상 전이다. 보툴리눔 톡신 기술은 기술수출로 이어졌지만 정 대표는 말한다. “아직은 과정이에요. 성과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10년 뒤, 그는 자신이 대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분께 맡기는 게 맞죠. 저는 아래층에서 커피 내리며 직원들 얘기나 들어주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회사가 혼자서도 잘 굴러가는 모습, 그게 진짜 보고 싶은 그림이에요.”
어릴 적, 그는 사촌 형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의사, 식품회사 직원, 제약회사 영업사원. 각자 생명을 살리거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든다는 말을 하던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가 신약개발을 하고 싶다고 처음 마음먹었던 건 그때였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는 매일 새로 배우는 중이다. 모르는 게 많고, 결정은 늘 무겁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좋은 동료들이 있고, 아직은 버틸 힘이 남아 있으니까요.”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