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오버뱅킹 시장이다.”

6월 초 우기에 접어들면서 캄보디아의 더위는 한풀 꺾인 상태였다. 하지만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 금융사들의 경쟁은 한껏 달아올라 뜨거웠다. 

달러가 통용되는 시장 환경과 정부의 적극적 외국 자본 유치 정책에, 한국뿐 아니라 많은 외국계은행들이 앞다퉈 진출한 캄보디아는 현재 은행 수가 150개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은행 하면 생각하는 상업은행의 수만 약 60개, 한국에서도 가장 많은 금융사가 진출해있는 국가로 꼽힌다.

아직 은행 계좌를 보유한 국민 비중이 30%에 그치는 나라. 그래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라. 외국계은행들의 ‘기회의 땅’.

이 모든 것이 맞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노리는 수많은 금융사들이 이미 캄보디아에 발을 들였다.

실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그 중에서 중심지 벙깽꽁(BBK) 거리를 10분만 걸어도 현지 은행뿐 아니라 눈에 익은 한국 시중은행들의 간판과 로고를 줄줄이 볼 수 있다. 프놈펜국제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도 우리은행 모델 아이유가 등장하는 전광판과 KB국민은행의 현지법인인 KB프라삭의 ATM 기기가 눈에 띈다.
  최근에 들어선 현지 대형 쇼핑몰 이온몰3에는 명품 매장들과 나란히 1층 정중앙 노른자위 위치에 현지 1등 은행인 ABA은행부터 아클레다은행, 한국의 KB프라삭 지점들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2층에도 더 많은 은행의 지점이 있다고 한다.

외국계은행들의 ‘천국’이면서 동시에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주일가량 프놈펜에 머물면서 만난 캄보디아의 한국 은행 현지법인 관계자들이 빼놓지 않고 꺼내놓은 말이 “캄보디아에 은행이 몇 개인지 아세요?”다.

캄보디아의 열린 시장 환경과 '피 터지는' 영업 현실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듯하다.

◆ ‘코카콜라’가 돼야 살아남는다

캄보디아 금융시장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캄보디아 금융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면서도 “하지만 그 기회를 잡으려면 ‘코카콜라’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1등이 돼야 한다는 소리다.

그는 코카콜라가 아니라면 펩시라도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캄보디아 은행시장처럼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금융사들의 서비스 경쟁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현지 정부 기조와 규제가 아무리 개방적이어도 ‘해외’ 사업에는 기본적으로 핸디캡이 따른다. 

현지 은행들은 일단 경제·사회의 속사정을 더 잘 안다. 당연하다.

그리고 현지 시장이기 때문에 잘 되든, 못 되든 투자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겐 사정이 나쁘다고 포기할 수 없는 뿌리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KB프라삭부터 신한캄보디아, 캄보디아우리은행, PPC뱅크 등 많은 현지 한국 은행들이 현지 영업을 강조한다. 현지 고객과 시장을 알기 위해 법인장부터 경영진이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땀을 흘린다.

김현래 KB프라삭 부대표는 올해 2월 취임한 뒤 반년이 안 됐지만 벌써 지역출장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이번 주에도 출장이 잡혀있다.

박희진 신한캄보디아 법인장도 현지 직원들을 살뜰히 챙기면서 직원 역량을 강조한다. 손철수 캄보디아우리은행 법인장 사무실에는 캄보디아 지도가 벽 한 면을 꽉 채우고 있다. 

그래도 외국계은행이 해외사업을 할 때는 현지 경제사회 환경과 문화적 차이, 본사의 경영상황, CEO 등 최고경영진의 의사결정 등 여러 대외 변수가 작용한다.
  ◆ 작지만 뜨거운 시장,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

하지만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 은행들은 모두 성장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캄보디아 금융시장은 아직 성장 초입 단계다. 캄보디아는 지금도 은행 계좌를 보유한 국민의 비중이 약 30% 정도에 그친다.  

나머지 70%의 미개척 시장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금융사가 해외시장에 진출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장벽으로 여겨지는 현지 당국의 규제도 상대적으로 낮다. 나아가 외국투자 자본이 캄보디아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축이다 보니 오히려 돈을 들고 들어와 사업을 하겠다는 금융사들을 환영하는 기조가 이어졌다.

캄보디아는 자본금 7500만 달러가 있으면 외국계 금융사들도 은행을 세울 수 있다. 인수합병, 법인 인가 승인 등도 잘 나오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현지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외국계은행의 성공사례도 있다. 캄보디아 QR결제시장을 선점하고 저원가성 예금시장을 장악한 현지 1위 ABA은행이 바로 외국계은행이다. 현재 캄보디아 은행시장의 ‘코카콜라’도 외국계은행이니 한국 은행이라고 다음 차례의 코카콜라, 펩시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볼 수 있다.

ABA는 신한은행 등이 선방하고 있는 옆 나라 베트남 금융시장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캄보디아에서 수익은 훨씬 많이 내고 있다. 

ABA뿐이 아니다. 특수은행시장으로 넘어가면 한국의 KB국민카드 캄보디아 법인 KB대한특수은행이 캄보디아 자동차할부금융시장 점유율 1위 사업자다. 2018년 토마토특수은행 인수해 출범한 뒤 6~7년 만의 성과다. 

신흥시장의 ‘매직’을 확실히 입증하고 있다.
  또 은행뿐 아니라 증권, 보험 등 금융시장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캄보디아는 현재 증시 상장 기업이 11개 수준에 머문다. 증권사도 현지와 외국계를 모두 더해도 10여 개 수준인데 개점휴업 상태인 회사들도 있다.  

캄보디아 증권시장은 처음 시작부터 한국과 인연이 있다. 한국거래소(KRX)가 2009년 캄보디아 증권거래소 개설을 지원했다. 유안타증권은 증시가 설립되기도 전인 2007년부터 캄보디아에 진출했다.

보험시장도 아직 발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3년 훈 마넷 총리를 중심으로 출범한 새 정부는 민생정부, 경제정부를 앞세워 보험 시스템 확립 등 시장 성장에 힘을 싣고 있다.

당장 캄보디아우리은행, KB프라삭 등 한국 현지법인들도 캄보디아 방카슈랑스(은행 창구에서 보험 판매)사업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캄보디아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캄보디아 하면 다 은행업만 생각하지만 증권, 보험 등 금융시장도 있다”며 “수많은 상품 시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는 인구 약 1700만 명,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80억 달러 수준이다. 인구와 경제규모가 각각 베트남 6~7분의 1, 10분의 1 수준이다.

코로나 이후 건설부동산 시장 경기 악화로 은행권 부실채권 리스크가 커지고 있고 외국투자자본과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 등으로 영업환경이 밝지 않다. 지금은 어느 사업이든 피할 수 없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캄보디아 현지 한국 은행들의 고군분투가 고진감래로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