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챗GPT를 사용하되 분별력을 유지하고 평소 나의 말이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오픈AI의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서비스인 달리(DALL·E)로 만든 참고용 이미지. < 오픈AI > |
[비즈니스포스트] 요즘 거리를 오갈 때 마주치는 사람들이 핸드폰에 무언가를 열심히 입력하고 있다면, 아마도 그 상대는 사람이 아닌 챗 GPT일 가능성도 꽤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본 숏폼 영상의 내용은 이러했다. 운전 중인 여성에게 “네 카톡 봐도 돼?” “인스타그램 DM 봐도 돼?” “인터넷 검색기록 봐도 돼?”라고 물을 때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을 내민다. 마지막에 “네 챗GPT 기록 봐도 돼?”라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바로 핸드폰을 창밖으로 던진다.
농담처럼 편집된 이 영상은 우리가 이제 챗GPT를 단순한 검색엔진 이상의 무언가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챗GPT, 제미나이(Gemini), 그록(Grok)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은 어느새 우리 삶의 핵심적인 일부가 되었다. ‘아직’ 전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발전 속도라면 전부에 훨씬 가까워질 날도 머지 않은 듯 싶다.
불과 1년 전, 생성형 AI를 심리상담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과 관련해 한 스타트업과 가졌던 미팅에서 간단한 조언을 건넨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챗GPT의 심리상담 기능에 대해 "사회성은 없지만 우직한 로보트같은 사람"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1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챗GPT는 눈부신 속도로 발전해 이제는 때로 상담자 못지않은 공감과 위로를 제공하고 있다.
진료실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체감한다. 일상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갈등 상황에서 방향을 잡고 싶을 때, 혹은 단지 위로받고 싶을 때 많은 이들이 챗GPT를 찾는다.
내원하는 분들의 5~10% 정도는 이미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챗GPT를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대화상대’가 되었다. 왜일까?
나에게 짜증을 내지 않으며, 세상 그 어떤 질문에도 반드시 답을 해준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내가 상대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있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종종하는 생각들, 예를 들어 ‘기분이 나쁜 건 아닐까?’, ‘너무 부담을 주진 않았을까?’, ‘말을 돌려서 해야 할까?’, ‘평가당할까봐 두려워’ 같은 염려 없이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정서적인 여유를 만들어주고 불안을 줄여준다.
사람에게는 늘 사회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챗GPT 앞에서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챗GPT는 자신보다 타인을 더 고려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기표현을 안전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일종의 정서적 피난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더 유용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챗GPT를 통해 위로를 얻는 것에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다.
다만 몇 가지는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하나는 분별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챗GPT는 설계상 어떤 질문에도 답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해도 단정적으로 답을 내놓는 일이 많다.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불안을 일시적으로 줄여주기도 하지만, 챗GPT의 조언은 어디까지나 ‘가능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며, 결코 절대적인 진실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자.
다른 하나는 내가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는 챗GPT의 장점이 때로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성은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내 말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 훈련하거나 성찰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 수도 있다. 인간관계는 늘 맥락과 감정이 얽혀 있고, 그 안에서 생기는 긴장과 조율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리고 챗GPT 가 등장하기 직전까지도 나는 종종 세상 모든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척척박사를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바라던 그가 이제 나타난 것 같다. 로보트같은 척척박사가 아니라, 마음까지 위로해줄 수 있는 척척박사로 말이다.
이제 남은 건, 이 놀라운 존재에게 나의 어떤 것을 맡기고, 또 어떤 것을 맡기지 않을지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