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발생한 SPC삼립 공장의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허영인 SPC그룹 회장 '책임론'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SPC그룹의 미국 진출 계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픽 씨저널> |
[비즈니스포스트] 4년 동안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SPC그룹 이야기다.
SPC그룹은 2022년 10월15일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끼임 사망사고 이후 강도 높은 여론의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사고 직후에도 생산을 강행한 모습이 알려지며 SPC그룹을 향한 소비자들의 분노는 ‘불매운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피 묻은 빵’이라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2023년 8월8일 이번에는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또 그 이후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올해 5월19일, SPC그룹의 2020년대 3번째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최근 계열사 주식을 저가로 매각해 증여세를 회피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사건을 놓고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무죄판결로 SPC그룹이 사법리스크를 털어내고 글로벌 확장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진짜 중요한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SPC그룹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노동 문제'와 관련된 재판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2021년 2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파리바게뜨 지회 소속 조합원 570여 명에게 노조를 탈퇴하라고 종용하고 2021년 5월에는 노조 소속 노동자들의 정성평가 점수를 낮게 줘 승진에서 탈락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씻기지 않는 SPC의 ‘반노동’ 이미지
SPC그룹은 반복되는 노동자 사망, 부상 사고로 '반노동' 이미지가 짙게 씌워져 있다. 문제는 이 이미지가 일시적으로 씌워졌다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왔다는 것이다.
허 회장은 2022년 10월 제빵공장 사망사고가 발생한 직후인 2022년 10월2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그룹 전반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재점검하고고 안전경영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으로부터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두 건의 사망사고, 세 건의 부상 사고가 더 발생했다.
또한 사망사고 전후로도 SPC그룹은 노동자 과로, 산재 은폐 의혹, 노조 탄압 논란 등에 반복적으로 휘말려 왔으며 허 회장의 ‘노조 와해 의혹’ 재판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서 2024년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SPC그룹 계열사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의 피해자 수는 502명에 이른다.
◆ 잃어버린 SPC그룹의 '기업 이미지’, 사회적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SPC그룹은 식품업이라는 특성상 브랜드 이미지가 소비자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식품에 요구되는 기본적 신뢰, 안전, 위생은 물론 그룹의 윤리성 역시 브랜드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로 오랫동안 불매운동에 시달리고 있는 남양식품 역시 식품의 위생이나 안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오너일가의 윤리성 측면에서 소비자의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SPC그룹 불매운동이 단기간에 벌어진 해프닝에 불과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불매운동이 시작된 2022년 이후 SPC삼립의 실적은 뚜렷한 정체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 SPC삼립의 연결기준 매출은 3조4279억 원으로 2023년보다 0.15% 감소했다.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았던 2022년 매출과 비교하더라도 2년 동안 3.42% 증가하는데 그쳤다.
영업이익률 역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연속 2.7% 수준에 머물고 있다.
◆ 미국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노동 문제 훨씬 날카롭게 보는 곳
SPC그룹이 최근 미국 진출에 힘쓰고 있는 것을 두고 더욱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은 각종 노동 관련 이슈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민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SPC그룹은 최근 미국 텍사스주 벌리슨에 1억6천만 달러(약 2200억 원)를 투자해 제빵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는데, 단순히 미국을 시장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미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한다는 점에서 SPC그룹이 풀어야 할 숙제를 더욱 날카롭게 드러내는 시험장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미국의 노동법은 우리나라의 노동법과 비교해 비교적 폭넓게 사용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편이지만, 문제는 노동부 산하의 연방직업안전보건국(OSHA)이다. 연방직업안전보건국은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이를 조사하고 벌금을 부과하거나 검찰에 기소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조직이다.
문제는 OSHA의 벌금 부과 기준 중에 ‘고의성’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사용자가 현장의 위험성을 알고도 방치했거나 고의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산업재해 발생시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을 낼 수 있다.
미국은 이에 더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손해배상의 규모를 판단할 때 실제로 발생한 손해에 더해 가해자의 고의성, 반사회성 등을 고려하는 제도다.
대표적 사례로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존슨의 베이비파우더 발암물질 소송이 있다.
존슨앤존슨은 현재 자사의 ‘베이비파우더’ 제품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의혹을 받아 수천 건의 소송에 휘말려있다.
존슨앤존슨은 LTL매니지먼트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관련 소송들을 전담하도록 했으며 미국 법원은 이 소송들에서 존슨앤존슨이 피해자들에게 수천만 달러(수백억 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존슨앤존슨은 최근 이 소송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최근 89억 달러(약 11조 원)에 이르는 배상금을 내겠다는 배상안을 제시하는 한편 LTL매니지먼트의 파산 신청을 냈다. 소비자들은 LTL매니지먼트의 파산 신청이 소송을 고의적으로 중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SPC그룹은 2022년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끼임 사망사고 이후 강도 높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만약 이와 같은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 벌금 등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 실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기업이 커다란 재무적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024년 2월2일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 미국 시장의 성공 조건은 ‘빵’이 아니라 ‘신뢰’
제도적 제제 뿐 아니라 사업적 측면에서도 SPC그룹의 이번 미국 공장 설립은 그룹의 안전 체질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었는지 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북미와 유럽은 윤리적 소비가 일상화된 시장이다. 기업의 ESG 성적표나 윤리 경영이 소비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가 단순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해시태그로 끝나지 않고, 공공 조달 시장 진입 제한, 유통망 배제, 파트너사 이탈 등 실질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SPC그룹은 2022년 사고 이후 노동문제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개선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사고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또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등 아직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시장은 SPC가 과거의 오명을 털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경영 시스템을 갖췄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SPC그룹이 미국 소비자와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을 내재화하지 못한다면 생산기지를 확보하는 노력이 오히려 새로운 리스크로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