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이 2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감세안이 하원 투표 결과 통과됐음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대규모 감세안이 미국 의회 하원에서 승인돼 결정권이 상원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세안 시행을 위해 기존에 정부가 시행해오고 있던 친환경 제조업 지원 규모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는데 이에 혜택이 집중돼 있던 공화당 주들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공화당 상원의원 여럿이 감세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이번 법안이 상원 투표에서 부결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2일(현지시각)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제출한 대규모 감세안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 하원에서 찬성 215표 대 반대 214표로 극적으로 통과됐다.
해당 감세안은 개인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표준소득공제, 자녀세액공제 등 감세 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기로 계획했는데 주요 대상에 미국 기후정책의 핵심이 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하원에서 조정된 법안 전문에 따르면 1대당 7500달러(약 1031만 원)를 지원하는 전기차 세액공제는 올해 12월31일 조기 종료된다. 전기차 세액공제의 애초 일몰 기한은 2032년이다.
이뿐 아니라 풍력, 태양광, 원자력 에너지 프로젝트 인센티브도 대폭 축소된 뒤 추가 연장없이 계획대로 2032년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다. 친환경 에너지 제조업 분야에 제공되는 세액공제도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축소된 뒤 철폐된다.
사실상 바이든 정부 시절에 개시된 친환경 산업 부양책이 완전이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이에 로이터는 이번 법안을 접한 전문가들이 감세안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미국 친환경 제조업은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애비게일 로스 호퍼 미국 태양광산업협회 회장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의회가 방침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번 법안을 통해 미국은 수십만 개의 고임금 일자리와 낮은 전기요금을 잃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 투표했던 주들은 수천억 달러 규모 투자가 가져왔던 경제적 호황을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디언도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이번 감세안이 통과되면 미국 전역에서 친환경 산업 관련 일자리 83만 개가 사라지며 실업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비 오르비스 기후정책 싱크탱크 '에너지 이노베이션' 수석 디렉터는 가디언을 통해 "이번 법안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쁘다"며 "정부 인센티브에 의존하던 시설들의 기반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가계 지출을 대폭 높이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모든 조치들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업으로 인한 경기 위축에 더해 친환경 전환이 크게 둔화됨에 따라 환경 파괴, 지구온난화 가속화 등으로 인한 재해로 미국 경제가 입는 피해도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에너지 이노베이션 분석에 따르면 감세안이 이대로 통과되면 미국의 향후 10년 잠재성장 국내총생산(GDP)은 1조 달러(약 1377조 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 국내에 배출되는 환경 오염물질도 기존 예측보다 약 2억6천만 톤 증가하면서 오염 정화 비용, 의료비 지출 등도 대폭 상승할 것으로 우려됐다.
오르비스 디렉터는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 감소하긴 하겠지만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영향을 모두 피하기엔 미국의 대응 속도는 너무 늦다"고 설명했다.
▲ 존 튠 공화당 상원 대표가 20일(현지시각)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하원 승인을 받은 이번 감세안의 결정권은 상원으로 넘어갔는데 하원과 달리 여러 공화당 의원들이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외신들은 이를 두고 IRA 지원 혜택이 현재 공화당 주들에 집중돼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선거구를 통해 선출되는 하원의원과 달리 상원의원은 주 전체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되기 때문에 개별 주의 이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상원은 전체 100석 가운데 공화당이 53석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47석인 민주당에 더해 단 4명만 감세안 반대로 돌아서면 법안이 부결된다.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감세안에 부정적 의견을 발표한 공화당 의원들은 랜드 폴(켄터키주), 조쉬 홀리(미주리주), 빌 캐시디(루이지애나주), 리사 머코스키(알래스카주), 존 튠(사우스다코타주), 론 존슨(위스콘신주) 등이다. 이들은 모두 감세안이 정부의 재정 적자를 확대할 뿐 아니라 지역 경제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머코스키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하원의 방향성이 우려스럽다"며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감세안을 살펴본 머코스키 의원은 감세 실현을 위한 정부 지출 삭감 대책 규모가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행도 어렵다고 평가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E) 분석에 따르면 예상되는 세수 손실은 향후 10년간 최대 3조8천억 달러(약 5221조 원)에 달하는데 지출 감축 금액은 1조5천억 달러(약 2061조 원)에 불과하다.
튠 의원은 블룸버그를 통해 "하원은 우리에게 좋은 일감을 던져주고 있다"며 "하지만 이번 법안만큼은 대체 법안을 스스로 제정하고 싶어하는 상원의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미 자체적으로 구성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현재 공화당 상원은 온건파 측 의견을 수용해 IRA 세액공제와 지원책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으로 새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아직은 상원에서 어떻게 결정이 날지는 모르는 상태라고 바라봤다.
크리스 모이어 전 민주당 상원의원 보좌관은 블룸버그를 통해 "이번 법안에 반대한 의원들은 미래에 있을 경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될 수도 있다"며 "결국 공화당 의원들은 감세안에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하원에서 감세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접한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은 이번 법안을 빠르게 승인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압박에도 여전히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감세안 시행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어 승인 여부는 불투명하다.
존슨 의원은 CNN을 통해 "우리는 지금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우리에겐 그럴 돈이 없다고 말하는 나쁜 아빠 역할을 맡은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지출 삭감 규모를 고려하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