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품질경영으로 관세 위기 돌파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품질경영으로 관세 위기 정면 돌파에 나선다.
현대차 첫 글로벌상품운영본부장에 품질·안전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필립 게랑부토 부사장을 임명하면서다. 6월부터 자동차 관세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보다는 품질로 승부수를 띄워보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8일 자동차 업계에서는 최근 현대차가 진행한 조직 개편을 놓고 품질 경쟁력을 높여 자동차 관세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보겠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품질경영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차 회장에 오른 1999년부터 각인된 '현대차 DNA'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품질경영을 강조하게 된 계기도 공교롭게도 미국 시장에서의 품질 논란이었다. 현대차는 1998년 미국에서 품질 논란을 겪으면서 판매량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추락했다.
정 명예회장은 1999년 미국에서 10년·10만 마일 무상수리보증 정책을 시행했다. 당시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는 3년·3만6천 마일, 도요타는 5년·6만 마일을 보장한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 정책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10년 동안 고장나지 않을 차를 만들어 팔면 될 것 아니냐’는 논리를 내세웠다.
정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품질경영은
정의선 회장 시절에 와서 완전히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 시장조사기업 J.D.파워가 실시한 신차품질조사(IQS)에서 글로벌 자동차그룹사 15개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J.D.파워가 시행하는 IQS는 1987년부터 시작된 자동차 품질 평가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조사로 꼽힌다. 소비자가 차량 구입 후 3개월 안에 경험한 신차 품질을 바탕으로 조사가 이뤄진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최상위 품질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정 회장은 품질을 높이는 데 더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 필립 게랑부토 현대차 글로벌상품운영본부장은 르노그룹에서 33년 동안 일하다가 2023년 현대차로 영입된 인물이다. 품질·안전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현대차> |
현대차는 미국에서 미리 생산해 놓은 재고를 활용해 가격동결 정책을 펼치고 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6월2일까지 가격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하지만 재고가 소진되는 6월부터는 자동차 관세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체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상황이 온다면 결국에는 품질이 중요해질 공산이 큰 셈이다.
일각에서는 자동차 관세 부과가 시작된 4월 현대차가 미국에서 좋은 판매 흐름을 보이면서 품질 경쟁력을 갖추면 소비자들에게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는 4월 미국에서 8만1503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19% 증가했다. 이는 역대 4월 최고 실적이며 7개월 연속으로 월 판매 기록을 새로 썼다.
관세 부과 뒤 포드와 스텔란티스 등 경쟁사들이 가격을 낮춰 판매한 것과 비교해 현대차는 가격을 동결했음에도 판매량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는 더 이상 가격 경쟁력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여겨진다.
정 회장은 품질 경쟁력에 집중하기 위해 글로벌상품운영본부장으로 필립 게랑부토 부사장을 임명했다.
글로벌상품운영본부는 현대차가 세계에서 개발, 생산, 판매하는 상품을 기획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차량 개발 뒤 국가별 생산지는 물론 현지 판매를 위한 법규 검토 등도 총괄한다.
이전까지는 글로벌사업관리본부 아래 글로벌상품지원실로 있었지만 이번 조직 개편으로 본부급으로 격상됐다. 이름을 상품운영본부로 바꾸고 책임자 직급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높였다.
필립 게랑부토 본부장은 르노그룹에서 33년 동안 일하다가 2023년 현대차로 영입된 인물이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르노삼성자동차에서도 근무했다.
그는 품질·안전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현대차로 자리를 옮기기 직전 르노그룹에서 품질·고객만족 부문을 담당했는데 1년 동안 고객 만족도가 17% 상승했다. 사고 횟수는 1년여 사이에 40% 줄면서 브랜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르노그룹이 고객 만족도와 사고 횟수를 개선할 수 있었던 데는 필립 게랑부토 부사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세 무뇨스 사장은 이번 인사를 놓고 “필립 게랑부토 부사장의 글로벌 역량은 제품 포트폴리오 전반에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