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미국산 AI 칩의 대중국 수출이 막히면서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 감소 규모는 1조 원을 넘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반도체 겨울’이 예상보다 빠른 올해 하반기부터 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며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올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이 1조 원 이상 줄어들 것이며, 빅테크 기업의 인공지능(AI) 투자 축소로 HBM 수요도 예상보다 증가 폭이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1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이 엔비디아와 AMD의 AI 칩의 대중국 수출 규제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매출 감소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설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엔비디아와 AMD는 각각 지난 4월15일과 16일 공시를 통해 엔비디아의 중국용 AI 칩 ‘H20’과 AMD의 ‘MI308’의 대중국(홍콩 마카오 포함) 수출을 위해서 미국 상무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중국 수출이 금지된 것으로 해석돼, 엔비디아와 AMD는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됐다. 공시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AMD의 합산 손실 규모는 63억 달러(약 9조 원)에 이른다.
AI 칩의 중화권 수출이 막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피해도 상당할 전망이다. 두 회사는 엔비디아의 H20에 HBM3와 HBM3E를, AMD의 MI308에 HBM3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증권사 모간스탠리에 따르면 미국의 AI칩 대중 수출 규제에 따라 영향을 받는 HBM 용량은 6700만 기가바이트(GB)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7억5500만 달러(약 1조860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커지는 글로벌 불확실성에 AI 서버 수요 자체가 감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라 글로벌 AI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 등은 AI 투자를 급격히 줄이고 있다.
MS는 올해 들어 2기가와트(GW) 규모의 데이터센터 임대, 전력 계약, 신규 건설 계약을 파기했다. 또 올해와 내년 가동될 예정이었던 1.5GW 규모의 자체 구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역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MS의 이러한 움직임은 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MS는 지난해까지 가장 많은 AI 투자를 진행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세미아날라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전력량 기준 MS의 데이터센터 사전 계약 규모는 메타, 구글, 아마존, 오라클을 합친 것보다 컸다.
두 번째로 많은 AI 투자를 진행한 아마존 역시 일부 AI용 데이터센터 임대 계약 협상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중국 ‘딥시크’가 AI 투자 비용을 90%까지 줄이면서도 효율적인 AI 서비스에 성공하자,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의욕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메타 역시 딥시크의 모델을 활용해 AI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AI 칩의 핵심 부품인 HBM 수요도 함께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하락 사이클이 예상보다 빠른 올 하반기에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봄과 겨울을 오가는 사이클이 존재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산 능력의 불일치와 재고 불균형, 갑작스러운 수요 충격 등에 좌우된다. 다만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전례 없는 지정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된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대외 정책으로 전례 없는 지정학적 변화가 예상되면서 반도체 겨울이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
모간스탠리는 HBM 산업을 ‘기회보다는 위험이 크다’고 평가했다. 빅테크 투자 감소에 따라 HBM 붐 자체가 둔화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며, 2018년 클라우드 산업이 그랬던 것처럼 HBM도 유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엔비디아의 AI 칩과 서버 수요 전망치는 급격히 하향 조정되고 있다.
모간스탠리의 중화권 반도체 팀은 “올해 엔비디아의 블랙웰(GB200) NVL72 서버 랙 출하량이 3만 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TSMC가 생산한 블랙웰 칩 생산량 가운데 상당량이 올해 말 재고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빅테크 기업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엔비디아 AI 서버의 절반 정도는 재고로 쌓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증권가의 올해 GB200 NVL72 서버 랙 수요 컨센서스는 1만5천 대에서 2만 대 수준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DC 역시 최근 AI 칩의 전망치를 수정하며, 수요와 공급의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IDC는 올해 AI 칩의 공급 대비 수요 비중을 기존 80%에서 68%로 낮췄고, 내년은 기존 77%에서 67%까지 낮췄다.
이에 따라 한 해 출하하는 AI 서버 대수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IDC는 올해 AI 서버 출하 전망치를 기존 150만5천 대에서 144만4천 대로 4% 하향 조정했다. 심지어 내년 AI 서버 전망은 기존 204만5천 대에서 158만 대로 23%나 대폭 낮췄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