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기자 lilie@businesspost.co.kr2025-04-16 15: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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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법인 고객 유치를 앞두고 가상자산 업계에서 암묵적 규칙으로 이어져 온 일명 ‘1거래소-1은행’ 체제가 깨질 가능성이 다시 제기된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큰손’이 될 법인 고객 유치를 수월하게 할 목적으로, 은행은 저원가성 예금 확보와 수익원 다변화를 목적으로 제휴 전략을 재검토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이다.
▲ 가상화폐 거래소 한 곳당 한 은행만 제휴한다는 일명 ‘1거래소-1은행’ 체제가 깨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은 국내 대표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와 빗썸 간판.
다만 본격 법인 영업이 시작되지 않은 지금 제휴은행을 다자은행으로 변경할 경우, 특정 거래소 쏠림 현상을 심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함께 나온다.
16일 기준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5곳은 각각 하나의 은행과만 제휴를 맺고 있다. 거래소별로 살펴보면 업비트와 케이뱅크, 빗썸과 KB국민은행, 코인원과 카카오뱅크, 코빗과 신한은행, 고팍스와 전북은행이 제휴 관계에 있다.
제휴은행은 그 거래소에서 원화거래를 하는 고객이 실명인증 계좌를 발급받을 때 이용해야 하는 은행을 말한다.
2021년 특정금융정보거래법 시행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거래하려면 실명인증 계좌 발급이 필수가 됐다. 거래소 이용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자금세탁 등의 범죄를 방지하려는 목적에서다.
한 거래소가 하나의 은행과만 제휴해야 한다는 법적 강제 조항은 없지만 금융당국의 자금세탁 우려에 따라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관습화돼 왔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은행과의 거래만 감시하면 돼 자금세탁방지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여러 은행과 제휴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은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됐지만,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5대 은행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1거래소-다자은행’ 체제를 제안하며 논의가 재점화됐다.
이는 최근 국내 가상화폐 시장 활성화에 따라 은행과 금융당국 등의 관심도가 높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하나금융연구소는 ‘2025 대한민국 웰스리포트’에서 “가상자산을 보유한 영리치(40대 이하 고객) 비율은 2022년~2023년 20% 안팎에서 2024년 29%로 늘었다”며 “새로운 투자 영역으로서 가상자산의 중요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실제 가상화폐 투자 증가에 따라 올해 1월 기준 5대 가상화폐 거래소가 은행에 보관한 고객 예치금은 10조6561억 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금융위원회 로드맵에 따라 하반기부터 법인 및 기관투자자들도 가상화폐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자 제휴은행 논의는 더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법인 고객들은 개인 고객보다 자금 운용 규모가 커 이들을 유치하는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거래소로서는 ‘큰손’인 법인 고객 영업에 강점이 있는 시중은행과 여럿 제휴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실제 신한은행과 제휴하고 있는 코빗의 경우 법인 고객 유치를 활성화하고자 협업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현재 코인게코(가상화폐 시장정보 제공 사이트)의 24시간 거래대금 기준 코빗의 시장 점유율은 0.6%대로 낮지만 신한은행이라는 강력한 시중은행 파트너와 함께 ‘큰손’ 법인 고객을 유치하면 점유율을 넓힐 가능성이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가상화폐 거래소와 제휴해 저원가성 예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은행에 보관한 예치금은 요구불예금으로 분류된다. 요구불예금은 이자가 매우 낮아 은행이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 금융위원회 로드맵에 따라 하반기부터 법인들이 가상자산 시장에 참여할 길이 열린다. <금융위원회,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금융당국은 아직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러 은행과 제휴를 맺으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특정 은행과 거래소 사이 책임 분담이 명확하지 않아 정부와 감독기관이 규제하기 까다로워질 수 있다.
특정 거래소 점유율 쏠림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점도 금융당국과 가상화폐 업계 모두 다자은행 제도 도입을 고민하게 만든다.
다자은행 체제는 고객에게 거래소 선택권을 넓히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반대로 이미 시장 점유율이 높은 거래소에만 은행들이 몰리며 시장이 더 기울어지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시장은 코인게코 24시간 거래대금 기준으로 볼 때 업비트가 50% 이상을, 빗썸이 약 40%를 차지하는 과점시장을 이루고 있다.
하나의 거래소와 여러 은행이 제휴할 수 있게 되면 당장 수익성 확보가 필요한 은행은 규모가 큰 특정 거래소와만 손을 잡으려 할 유인이 있어 과점이 오히려 가속화할 수 있다.
한 가상화폐 업계 관계자는 “법인영업 본격화를 앞둔 이 시점에서 다자은행 제휴가 도입되면 오히려 상위 거래소 쏠림만 심화할 가능성이 커 도입 시점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라며 “다만 다자은행 제휴 자체는 장기적으로 시장 활성화에 필요하고 결국 나아가게 될 방향성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