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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
‘왕실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정농단 실상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이어 법원의 인사에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근본부터 뒤흔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6일 한겨레가 입수해 공개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1심 판결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판사를 ‘비위 법관’으로 규정해 직무배제 방안을 강구하도록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망록에 따르면 2014년 9월 22일에 김 전 실장을 뜻하는 ‘長(장)’이라는 표시 옆에 ‘비위 법관의 직무 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라는 메모가 나온다.
김동진 부장판사는 2014년 9월 12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국정원 댓글 사건’재판에서 피고인 원세훈 전 원장이 선거법 무죄판결을 받은 데 대해 비판글을 올렸다.
당시 김 부장판사는 “국정원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대해 불법적인 개입행위를 했던 점들은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났다”며 “그럼에도 이런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해 담당 재판부만 ‘선거 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지록위마가 아니면 무언인가”라고 썼다.
법조계 일각에선 당시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인정될 경우 대선결과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법원이 정치현실과 타협한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 전 실장의 언급 나흘 뒤인 9월 26일 수원지법은 김 부장판사가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며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했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그해 12월 3일 김 부장판사가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다며 2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한 판사는 “실제 정직 처분이 나온 걸 보면 ‘직무배제’라는 의견이 흘러들어가 영향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김 부장판사 징계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전에 재판결과를 비롯해 재판관들의 세부적인 논의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은 김 전 실장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6일 “헌법을 수호하는 헌법재판소를, 헌법재판소장을 좌지우지했다고 하면 이것은 대한민국을 파괴한 것”이라며 “김 전 실장을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유신헌법 초안 작성, 유서대필 조작사건, 초원복집 사건, 국민 뜻에 반하는 대통령 탄핵 등에 당당히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며 “역사를 통틀어 반민주의 최전선에 섰던 김 전 실장을 당장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김 전 실장의 행태는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질서를 교란시킨 중대범죄”라며 “특별검사는 김 전 실장의 헌정문란 중대범죄를 철저히 수사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언론을 탄압하고 조작하고,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양심적인 공직자들을 쫓아내는 기획과 집행에 김 전 실장이 선두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며 “김 전 실장에 대한 조사는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