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5-02-04 15: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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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그레가 인적분할 및 지주사 전환을 철회했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자본시장법이 주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바라보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빙그레가 두 달 만에 인적분할 및 지주사 전환을 전격 철회하면서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을 앞둔 ‘태도 급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빙그레는 지난해 11월 사업 효율화와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인적 분할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으나 돌연 “더 명확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사주의 마법’이 차단되면서 인적분할을 통한 실익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일 유통업계에서는 빙그레가 지주사 전환을 철회한 배경에 오너 일가 영향력 확대에 대한 실익이 희미해진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빙그레는 지난해 11월 이사회에서 경영 효율성 강화 및 주주가치 제고를 목표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고 인적분할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빙그레는 당시 인적분할을 발표하며 “지배구조 체제를 선진화하고 각 사업부문의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를 분리해 사업회사는 음·식료품 생산 및 판매, 지주회사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빙그레는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인적분할 및 지주사 전환을 발표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명확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이를 철회했다.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철회를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12월31일부터 시행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빙그레의 지주사 전환 철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과거에는 기업이 인적분할을 하면 보유한 자사주도 신설 법인의 신주를 받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오너 일가는 추가 자금 투입 없이도 신설 법인의 높은 지배력을 확보하는 전략인 ‘자사주의 마법’을 활용할 수 있었다.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대부분의 기업이 결국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로 이어졌던 만큼 빙그레 역시 이런 결과를 염두에 두고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승계 작업을 위해 다소 서둘러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려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사진은 2024년 6월25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건국포장 기증식에 참석한 김호연 회장. <백범김구기념관>
빙그레는 인적분할에 앞서 자사주 10.25%를 모두 소각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김호연 회장의 지분율은 36.75%이나 해당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김 회장의 지분율은 40.95%까지 상승하게 된다.
자사주 소각 이후 인적분할이 시행된다고 가정하면 김 회장은 존속법인 빙그레홀딩스와 신설법인 빙그레의 지분을 각각 40.95%씩 보유하게 된다. 이후 김 회장이 신설법인 빙그레의 지분 40.95%를 빙그레홀딩스에 현물출자하면 빙그레홀딩스는 신주 발행을 통해 이를 보상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 김 회장의 빙그레홀딩스 지분율은 과반을 넘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빙그레홀딩스가 지주사 체제 내에서 신설법인 빙그레를 지배하는 구조가 완성되며 김 회장은 지주사를 통해 그룹 전체를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이러한 방식이 차단되면서 신설 법인의 주식은 기존 주주들에게만 배정되고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에는 배정되지 않게 된다. 오너 일가가 신설 법인의 지배력을 확보하려면 직접 지분을 매입할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빙그레가 추진했던 인적분할의 실익이 사라지면서 결국 지주사 전환 계획을 철회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자사주를 활용한 지배력 강화가 차단된 상황에서 굳이 지주사로 전환할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인적분할이 무산되면서 자사주 소각 계획 역시 자동으로 철회됐다.
빙그레의 지주사 전환 발표 시점 역시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를 위한 인적분할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빙그레는 김동환 빙그레 사장이 지난해 3월 사장으로 승진한 지 7개월 만에 지주사 전환을 발표했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승계작업을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흐름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승계와 관련된 의구심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었음에도 김 회장이 다소 서둘러 지주사 전환을 발표한 이유로 금융위원회의 자본시장법 개정 예고를 꼽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6월 인적분할시 자사주 신주배정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예고한 바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 지주사 전환을 완료해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빙그레가 향후 다시 인적분할 및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빙그레는 여전히 오너 중심의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김동환 사장의 승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지주사 체제에서는 지주사가 자회사 지분의 50%, 상장사는 30% 이상을 보유해야 하므로 김호연 회장이 지주사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 경영권 방어가 한층 수월해진다. 김동환 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시점이 오면 다시 지주사 전환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김호연 회장은 지주사 빙그레홀딩스의 지분을 확대한 후 김동환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지주사 체제에서는 경영권이 지주사에 집중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김동환 사장이 지주사의 경영을 맡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룹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빙그레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 철회를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