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의사를 처음으로 밝혔다. 그러나 그 공을 국회로 넘겼다.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로 민심이 확인된 상황에서 벼랑 끝에서 마지막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2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조건부이긴 하지만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4%에 불과한 지지도와 200만 촛불민심으로 대표되는 성난 민심에 버티기로 일관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담화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대다수 국민들이 즉각적인 하야와 퇴진,탄핵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박 대통령이 스스로 이런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협상이나 싸움에서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가 상대방에게 공을 떠 넘기는 것인데 박 대통령이 이 카드를 들고 나왔다”며 “막다른 처지에 내몰린 박 대통령으로선 선택지가 많지 않았겠지만 절묘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나 퇴진을 선택하지 않고 공을 국회에 넘겨 박 대통령의 향후 거취 문제는 정치권에서 다뤄지게 됐다.
박 대통령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얘기했는데 이런 방안을 여야 정치인들이 합의로 도출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정치권이 박 대통령의 거취 문제를 두고 또한번 거대한 격랑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담화문 발표 직후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야당이 탄핵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휘발성이 강한 개헌문제가 정치권에 전면적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개헌문제는 ‘블랙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는데 현재는 ‘박근혜 게이트’에 묻혀 잠복해 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대통령 임기단축’은 사실상 개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개헌을 통해 정치권이 대통령 임기단축 작업을 법적으로 하지 않으면 스스로 내려오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반전의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야야가 막상 개헌에 나선다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대통령 임기단축을 위한 개헌이 돼야 할지, 대통령제 혹은 내각제 등 정부행태를 바꾸는 개헌이 돼야 할지를 놓고 이해관계에 따라 속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개헌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동안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시간을 벌면서 1년여 남은 임기를 유야무야 채울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보수층 재결집을 노릴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국회에서 적절한 방안을 마련해 오면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은 반전을 모색하는 지지층에는 결집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비록 대통령이 잘못은 했지만 이제 국회에서 방안을 내면 물러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힌 만큼 더 이상 괴롭히지 말자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담화문 서두에서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고 밝혔는데 이도 지지층의 마음을 사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