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완 기자 gwkim@businesspost.co.kr2024-09-22 14: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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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재야 운동권의 대부로 불리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별세했다. 향년 78세.
유족 등에 따르면 장 원장은 담낭암 투병 끝에 22일 오전 1시35분경 입원 중이던 경기 고양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면정책연구원 원장이 향년 78세를 일기로 담낭암 투병 끝에 22일 별세했다. 사진은 생전 인터뷰 중인 장기표 원장의 모습. <연합뉴스>
고인은 두 달여 전인 지난 7월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병원에서 진찰 받은 결과 담낭암 말기에 암이 다른 장기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당혹스럽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한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어려운 사정에서도 물심양면의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갑자기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하다”고 썼다.
그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창립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했다.
지난해부터는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며 국회의원 면책·불체포특권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장 원장은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하면서 1995년에야 졸업했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을 시작으로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고 12년 동안 수배 생활을 하는 등 1970~80년대 수 차례 투옥과 석방을 거듭했다.
숱한 수감·도망 생활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19년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재야운동의 핵심 세력으로 떠오른 그는 1984년 10월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종교인, 변호사, 퇴직 언론인 등이 참여하는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립하는 데 기여했다.
1990년에는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하지만 1992년 제 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과 17·19·21대까지 7차례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현재 보수정당(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후보로까지 옮겨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국민의힘을 탈당해 특권폐지당 창당을 추진하던 중 원외 정당 가락당에 합류해 가락특권폐지당으로 22대 총선에 후보를 냈으나 원내 입성에 실패하고 세 차례 대선에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했음에도 결국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딸 하원, 보원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조문은 오후 2시부터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6일이다. 장지는 경기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다. 김규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