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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일 ‘한국 반도체 인력 빼가기 혈안’, 반도체 인력난 갈수록 심각해진다

김호현 기자 hsmyk@businesspost.co.kr 2024-09-12 15: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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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일 ‘한국 반도체 인력 빼가기 혈안’, 반도체 인력난 갈수록 심각해진다
▲ 한국 반도체 인재 영입을 위해 미국, 중국, 일본 등 경쟁국 반도체 기업들이 혈안이다. 반도체 인력난이 세계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적극적 대책 없이는 국내 반도체 인재 유출과 인력난이 더 심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 반도체 인력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인재를 빼내기 위해 미국, 중국, 일본 등 경쟁국이 혈안이 돼 있다. 

한국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부족한 제도는 인재 유출을 더 쉽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기업과 정부는 공격적 인재 영입과 인재 유출 방지 법률 개정 등에 나서고 있지만, 반도체 인재 유출이 지속되고 있어 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2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세계적 수준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한국의 인재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더디플로맷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강대국들이 한국 반도체 인재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중국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강화되며 반도체 산업 자립을 위해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라는 모토를 내걸며, 반도체 설비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만 248조 원이 넘는 금액을 반도체 장비 구매에 투자했다.

중국은 부족한 반도체 기술 인력 충원을 위해 한국 인력을 적극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40세 미만 박사 출신과 10년 이상 근무한 기술 인재를 헤드헌팅 기업을 통해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 이렇게 중국으로 넘어간 반도체 인력만 지난 2018년부터 최근까지 6년 간 1천 명 내외로 추정됐다.

더디플로맷은 “많은 한국 반도체 엔지니어가 최근 중국 회사로 이직하며 한국에서 잠재적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동맹국으로 불리는 미국도 한국 반도체 인력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긴 마찬가지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한국과 대만에 빼앗긴 반도체 제조 주도권을 되찾아오겠다며, 반도체지원법 등 자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부족한 반도체 인력을 채우기 위해 한국 인재들을 적극 영입하고 있다.
 
미·중·일 ‘한국 반도체 인력 빼가기 혈안’, 반도체 인력난 갈수록 심각해진다
▲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반도체 기술자 모집 공고 페이지에 이전 합격자 근무회사 정보가 표기돼 있다. <마이크론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대표적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 디자인 엔지니어’ 모집 공고를 내면서, 자사 입사자가 이전에 주로 근무한 회사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언급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에 근무했던 인력이 이전 모집 합격자임을 강조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근무자에 입사 지원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론은 이미 한국 인재 영입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HBM 후발 주자였던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에 앞서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은 SK하이닉스 출신 인재들을 발빠르게 영입한 것이 주효했다.

미국 취업사이트 링크드인에 따르면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최근까지 500여 명의 삼성전자 출신과 40명 내외의 SK하이닉스 출신 인재를 채용했다. 인텔 역시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일한 인력을 오래전부터 채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중국으로 갈 때는 심리 장벽이 있지만, 미국은 그런 것도 없다”며 “인력 유출의 본격적 시작은 2~3년 후로 본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다시 반도체 제조 강국을 꿈꾸는 일본도 한국 인재를 탐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관련 인재 양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문화적·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 반도체 인재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기업과 TSMC의 합작법인인 JASM은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 반도체 인력을 대상으로 채용 설명회 등을 개최하며, 적극적으로 한국 반도체 인재 끌어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등과 정부 지원으로 2022년 설립된 일본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도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한국 반도체 인력를 모집하고 있다.

주요국들이 한국 반도체 인재를 노리는 이유는 갈수록 심해지는 반도체 인력난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2029년까지 미국 반도체 인력이 14만6천 명 부족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 일본전자정보기술협회는 일본 반도체 주요 기업에서 앞으로 10년간 4만 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 규모가 가장 큰 중국은 올해에만 20만 명의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다는 자료도 공개됐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2031년까지 한국의 반도체 인력이 약 5만4천 명에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2년에 보고한 1784명의 인력 부족보다 30배 이상 높은 수치다.
 
미·중·일 ‘한국 반도체 인력 빼가기 혈안’, 반도체 인력난 갈수록 심각해진다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정부는 인재 수혈과 양성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 7번의 채용을 진행하며 인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신입사원 공개채용 등을 진행하며 대규모 반도체 인력 확보에 나섰고, 해외 연구개발(R&D) 인재 채용을 위한 공고도 냈다.

국회는 ‘산업기술 보호법 개정안’을 검토 중이다. 반도체 인력 유출로 국내 핵심 기술까지 유출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개정안의 뼈대는 국가 반도체 기술 유출자에 대한 형량을 최대 18년까지, 벌금은 기존 15억 원에서 65억 원까지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반도체 인재 유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중국, 일본 등 기업들이 제시하는 연봉이 한국과 비교해 1.5배에서 최대 4배까지 높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은 한국 기업보다 1.5배에서 3배까지 높은 연봉을 제공한다. 심지어 한 반도체 연구원에게 중국 기업은 현재 받고 있는 연봉의 4배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많은 경우 더 나은 업무환경을 제시하기도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한국 반도체 엔지니어의 가족까지 포함한 주거, 의료, 휴가 등 파격적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한 해 수 백조 원을 투자하고 있고, 미국도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천문학적 자금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투입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발 벗고 나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인재 유출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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