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비만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법이 없지만 미국에선 관련 입법 뒤에 문제 해결에 큰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에서는 최근 위고비와 같은 혁신적 비만치료제들이 등장하면서 비만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미국 하원은 6월 '치료 및 비만감소법' 통과시켜 비만약의 보험 급여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고질적 사회문제인 비만 문제 해소에 새 전기가 열렸으며 인기 비만약인 위고비와 마운자로 관련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만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의료현장에서는 현재 비만이 질병인지 여부조차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비만학회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만 19세 이상 성인의 비만율(체질량지수 25 이상)은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성인 남성의 비만율은 47.7%에 이른다.
단순한 과체중을 넘어 2단계 비만(고도비만, 체질량지수 35 이상)으로 접어들면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세계 의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에 발맞춰 의료계에서 자체적으로 비만의 질병코드(E66)를 정해 처방을 해도 보건복지부나 보험사들이 이를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아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앞서 2007년에는 서울행정법원이 비만의 질병성을 인정하지 않는 보건복지부 판단을 뒤집고 비만의 질병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이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미 1997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질병으로 지정했고 국내에서도 비만을 질병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구호는 많지만 현행법과 건강보험 체계 아래서 비만은 단순히 미용 문제에 머물고 있다.
가장 연관성 높은 법인 심뇌혈관질환법에서도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동맥경화증 등 비만이 유발하는 관련 질병들만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건강보험상의 급여대상을 규정하는 보건복지부 고시 역시 비만을 주근깨, 탈모, 딸기코, 여드름 등과 같은 선상에 두고 있다.
비만 대책으로는 국민건강증진법, 학교보건법 등이 국민의 신체활동과 건강한 식습관을 장려하는 수준에서 비만대책을 자처하고 있는 형편이다.
임사무엘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서기관은 "비만기본법 제정을 통해 각 부처별로 파편화된 비만 관련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보건복지부 주도의 실태조사를 통해 비만치료 사각지대를 발굴할 수 있다는 의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바라봤다.
▲ 9일 국회에서 열린 '비만기본법 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임사무엘 국회 입법조사처 서기관, 남가은 비만학회 보험법제이사, 홍용희 비만학회 소아청소년이사, 박희승 민주당 의원, 박철영 비만학회 이사장, 김윤 민주당 의원, 이환범 김앤장 변호사, 이진한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 박정찬 비만협회 대외협력정책이사. <비즈니스포스트>
향후 비만의 질병성이 인정되고 건강보험 급여논의가 이뤄진다면 소아청소년과 2단계비만(고도비만)환자, 산간도서 주민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홍용희 대한비만학회 소아청소년이사는 "소아청소년 비만을 조기치료하지 않으면 성인이 돼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된다"며 "저출산으로 개별 아동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제도 도움 없이 현장의료진이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고도비만아(질병관리청 자체기준 비만도 150%)를 방치했다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고지혈증과 지방간, 고혈압, 당뇨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비만에 속하는 소아청소년은 불안과 우울증 위험이 33~43%까지 높아지고 조기사망 위험은 36% 높아졌다.
박정환 대한비만학회 대회협력정책이사는 "섬과 산간지역일 수록,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이 낮을 수록 비만율이 높게 나타난다"며 "사회불평등 문제 해소를 위해서라도 국가차원의 문제해결을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대한비만학회가 연간으로 발표하는 '비만병 팩트 시트'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제주도와 강원도의 비만율이 높았으며 소아청소년은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비만율이 높았다.
이진한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는 "비만인구 2천만 명에게 월 수백만원의 비만약 비용을 다 대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서도 "다만 심각한 수준의 비만환자와 합병증을 동반한 환자, 소아환자에게는 사회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비만학회는 비만을 질병으로 인정하고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박철영 대한비만학회 이사장은 "임상의 30년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진료하면서 느낀 소감 중 하나는 체중관리를 하면서 질병치료를 하면 효과가 높아지는데 이런게 안되다보니 치료가 실패해 더 비싸고 힘든 후기 치료단계로 넘어가는 비중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철영 이사장은 소아청소년과 관련해서는 "비만 발병시기가 빨라지고 비만병이 걸린 소아청소년은 평생 비만이 유발하는 각종 질병이 시달려야 하는데 비만만 제때 치료하면 각종 심혈관질환과 당뇨는 물론 불임, 암 이런 문제까지 방지할 수 있다"며 "정작 만병의 근원인 비만 자체는 완치가 가능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