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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도 대기업도 '차떼기 정경유착의 망령'을 잊었다

김디모데 기자 Timothy@businesspost.co.kr 2016-11-03 15: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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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정경유착의 덫에 또 걸렸다.

과거 정경유착 사례를 보면 칼날은 정치권으로 향했고 기업은 비교적 약한 매를 맞고 지나쳤다. 덕분에 정권이 무너지고 교체되는 와중에도 기업들은 착실히 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최순실 게이트를 놓고도 기업들은 강압적 모금이었다며 피해자를 자처하고 있다. 이번에는 정경유착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왜 재벌은 권력을 좋아할까

과거 군사독재시절 화려한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정경유착이 있었다. 정권에 적지 않은 돈을 바친 재벌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몸을 불렸고 내수를 넘어 수출로 도약하며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랐다.

전두환 정권은 재임기간 재계에서 9500억 원을 거둬들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상납받은 것만도 2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도 대기업도 '차떼기 정경유착의 망령'을 잊었다  
▲ 최순실씨가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고 있다.
민주화가 이뤄진 6공화국에 들어서도 정경유착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재벌기업에서 2850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령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때도 측근이 기업에서 돈을 받는 비리행위가 발생했다.

특히 2002년 대선 직전 벌어진 이른바 차떼기 사건은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재벌 대기업이 정치권에 검은돈을 바쳤다는 이유로 대거 수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차떼기 사건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삼성, 현대, LG, 한화 등 대기업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건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휴게소에서 현금을 가득 실은 2.5톤 트럭을 직접 넘겨받는 등 823억 원을 받아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민주당도 114억 원의 자금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치는 등 정치권은 한바탕 진통을 겪었다. 정치권뿐 아니라 재계에 미친 파장도 컸다. 대기업 주요기업 경영진들도 줄줄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피의자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차떼기 사건 이후 정치자금법이 개정돼 정치권이 재계에서 노골적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관행은 줄었다. 그러나 기업들은 여전히 기부금 등의 방식으로 돈을 거둬가는 준조세가 남아있다고 느낀다. 그 폐단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셈이다.

참여연대는 9월 미르와 K스포츠에 대기업이 자금을 지원한 데 대해 “고질적 폐해인 정경유착의 망령”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경유착은 경제력 집중과 불공정 경쟁을 야기한다”며 “현대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반사회적 범죄행위”라고 비난했다.

현재의 경제구조에서 권력에 약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속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구조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개선이 없으면 자본이 권력과 결탁하는 일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내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정부에 찍히면 손해가 크다고 생각해 정부가 요구하면 돈을 계속 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재벌들은 지배구조 등 약점이 있어 정부에 끌려다니게 된다”고 강조했다.

◆ 기업들, 피해 최소화 안간힘

차떼기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기업인들에 대한 최종 처벌 수위는 낮은 편이었다. 정치권이 주로 처벌대상이 된데다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기업인들에게 선처했기 때문이다. 재판도 신속하게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은 모두 불기소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불구속기소됐다.

  박근혜도 대기업도 '차떼기 정경유착의 망령'을 잊었다  
▲ 손길승 전 SK 회장.
기업인 가운데 구속된 건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과 이중근 부영 회장 두 사람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집행유예에 그쳤다.

과거 전력을 고려할 때 이번에도 검찰이 기업인에게 칼을 휘두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 정권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씨가 개입해 강압적인 모금을 했을 경우 강제력은 불확실한 대선정국에서 정치권에 전달한 책임과 비교할 수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이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르와 K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데 대해 처음에는 공익 목적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강압적이었다고 철저하게 선 긋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최씨를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죄 혐의로 체포했다는 점은 아직까지 기업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직권남용죄는 다른 사람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했을 때 적용하는 죄로 기업이 주장하고 있는 ‘강압적 기금 출연’이라는 맥락과 통한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최씨에게 공갈이나 협박죄가 적용될 경우 기업들은 오히려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협박에 따라 돈을 제공한 것으로 자의가 아니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갈·협박죄는 사실 입증에 어려움이 있어 적용 가능성은 낮게 여겨진다.

만약 최씨가 뇌물죄 혐의로 기소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뇌물죄는 대가성이 인정됐을 때 성립하기 때문이다. 대가성을 노리고 기금을 출연했다고 본다면 돈을 받은 최씨 뿐 아니라 기업들도 모두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순실 게이트가 재계에 미칠 파장은 대가성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이 현 정부에서 대부분 경영승계와 검찰수사,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에 대가를 노리고 자금을 댔을 것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아무 대가없이 개인에게 수백억 원의 이익을 몰아줬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라며 “대기업을 보는 여론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는 만큼 만약 검찰이 기업을 피의자로 규정하고 수사에 나선다면 차떼기 때보다 강도높은 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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