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비즈니스포스트] “나의 할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나의 아버지도 낙타를 탔다. 나는 메르세데스를 운전한다. 내 아들은 랜드로버를 운전하고 내 손자도 랜드로버를 운전할 것이다. 하지만 내 증손자는 다시 낙타를 탈 수 있다.”

오늘날 아랍에미리트(UAE)의 경제 중심지로 성장한 두바이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되는 두바이의 전 에미르(Emir) 라시드 빈 사이드 알 막툼이 한 말이다. 아랍권에서 석유와 같은 유한한 자원에 과도한 의존을 경계하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아랍에미리트 지역은 역사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부침을 반복해 왔다.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지금의 국가 형태가 마련된 이후에도 2008년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의 거센 파도는 늘 아랍에미리트를 덮쳤다.

아랍에미리트가 주요 산유국 가운데 가장 먼저 탈석유를 선언하고 아랍권 최초로 화성 탐사에 성공하는 등 혁신에 앞장서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아랍에미리트의 시선은 이제 인공지능(AI)을 향해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산업 전반은 물론 도시의 주요 정보를 디지털로 처리하는 스마트시티에서도 핵심 축으로 꼽힌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아랍에미리트의 스마트시티 인프라와 인공지능 역량이 결합하면 강한 시너지가 날 가능성이 크다.

미래 기술 투자에 진심인 아랍에미리트에서 한국 기업들은 어떤 기회를 엿볼 수 있을까?
  ◆대통령 이름 붙인 세계 최초 ‘인공지능 대학원’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마스다르시티에는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전문 대학원이 위치해 있다.

2019년 문을 연 모하메드 빈 자이드 인공지능 대학(MBZUAI)이다. 아부다비의 에미르이자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인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현재 대통령이 왕세제 시절부터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들어 공을 들이는 대학인 만큼 100% 장학금, 생활비 및 의료보험 지원, 숙소 제공 등 파격적 조건을 걸고 세계 각지에서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학장 역시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학자로 꼽히는 중국인인 에릭 싱 카네기 멜론 대학 교수를 임명했다.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지원한 수천 명의 지원자 가운데 100명 정도의 인원만을 선발하는 만큼 학생들의 자부심도 남다르다.

대학 내에서 마주친 재학생에게 모하메드 빈 자이드 인공지능 대학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니 망설임 없이 “이곳의 학생이라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우며 우리가 세계 최첨단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인공지능 대학이 이뤄낸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2024년 8월 말 기준 설립 5년 만에 미국 컴퓨터공학 기관평가(CS랭킹)에서 세계 100대 대학에 들었다. 인공지능 분야만 놓고 보면 18위로 평가된다.

인공지능 분야 상위 대학을 살펴보면 중국 칭화 대학,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카이스트(KAIST)는 9위, 싱가포르 국립대 11위, 미국 스탠포드 대학 17위 등이다.
  ◆미국과 중국 넘보는 아랍에미리트의 인공지능 역량

아랍에미리트는 ‘인공지능 국가전략 2031’을 수립하는 등 국가 차원의 인공지능 역량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부통령 겸 총리, 두바이의 에미르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은 아랍에미리트의 인공지능 전략을 놓고 “우리는 아랍에미리트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준비된 국가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는 2017년에는 세계 최초로 정부 내에 인공지능 전문 부처를 설립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인공지능 전문 부처를 설립할 당시에는 부처의 장관으로 27세에 불과했던 오마르 빈 술탄 알 올라마를 임명하는 파격적 결정도 내렸다. 오마르 빈 술탄 알 올라마는 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인공지능 역량은 세계 최고인 미국과 중국의 다음 수준으로 평가된다.

아랍에미리트는 2023년에만 팰컨(Falcon), 자이스(Jais) 등 오프소스 대형언어모델(LLM) 두 가지를 내놨다.

특히 자이스는 세계 최초로 아랍어를 학습한 대형언어모델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인공지능 대학, 아랍에미리트의 국영 인공지능 기업 G42 등이 협업해 만든 결과물이다.

가장 대표적 대형언어모델로 꼽히는 챗GPT를 개발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역시 G42와 인공지능 합작회사 설립을 논의하는 등 아랍에미리트와 협력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마트시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공지능, 한국과 협력도 타진

인공지능은 도시의 데이터를 디지털로 처리하는 스마트시티 혁신의 핵심이다.

스마트시티의 ICT 인프라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인공지능을 통해 의미 있게 가공될 때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아부다비, 두바이 등 주요 도시에 세계적 수준의 스마트시티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아랍에미리트로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도시 혁신의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셈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이미 도시 인프라에 인공지능을 접목해 활용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도시 내 이동 감독 등에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효과를 봤으며 해수담수화 운영 등 도시 자원 공급에도 인공지능이 쓰인다.

두바이에서는 과속 카메라에도 인공지능에 기반한 모션 측정 기능이 적용돼 있어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을 적발할 수 있다는 점은 관광객들에게 주의할 점으로 자주 소개되기도 한다.

아랍에미리트는 인공지능, 스마트시티 등에서 지속적 혁신을 위해 해외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인구의 90%가 외국인일 정도로 개방된 국가인 데다 해외기업의 투자에 우호적 환경이 조성돼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현지에서 활동하려는 외국인 가운데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전문가에게는 10년 장기 체류가 가능한 골든 비자를 발급해 준다. 사업 혹은 투자를 진행하려는 외국기업에는 비용 지원, 법인세 혜택 등도 제공한다.

오픈AI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세계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아랍에미리트에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역시 아랍에미리트가 고려하는 인공지능 분야의 협력 국가 후보다. 특히 국내 주요 IT 기업인 네이버는 아랍에미리트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압둘라 빈 투크 알 마리 아랍에미리트 경제부 장관 등 10여 명의 방문단이 네이버의 제2 사옥인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1784’를 방문했다.

아랍에리리트 토후국 가운데 하나인 샤르자의 술탄 빈 모하메드 알 카시미 왕자가 지난해 6월에 네이버 1784를 방문하는 등 아랍에미리트 고위급 인사의 네이버 본사 방문은 모두 6차례나 이뤄졌다.

술탄 빈 모하메드 알 카시미 왕자는 네이버의 로봇, 자율주행, 디지털트윈 등 기술을 체험한 뒤 “한국의 발전된 디지털 인프라 및 기술현황을 직접 확인한 만큼 샤르자의 디지털 혁신 및 인프라 구축에 많은 혜안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네이버 역시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중동 지역으로 진출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아랍에미리트가 네이버가 보유한 기술에 관심을 보여와 협업을 논의하는 단계”라며 “네이버 역시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중동 지역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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