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Who
KoreaWho
인사이트  외부칼럼

[당신과 나의 마음] 핑계고의 전도연과 사회적 맥락, 그리고 마음이론

반유화 yoowha.bhan@gmail.com 2024-09-02 08:30:00
확대 축소
공유하기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네이버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유튜브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 인쇄하기

[당신과 나의 마음] 핑계고의 전도연과 사회적 맥락, 그리고 마음이론
▲ 배우 전도연이 핑계고에 출연해 보인 태도와 관련한 해프닝은 사회적 맥락과 마음이론 등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많다. <유튜브채널 뜬뜬 '핑계고' 영상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하루에도 수많은 뉴스가 쏟아지는 동시에 며칠도 되지 않아 잊혀지는 세상이다.

몇 주전 배우 전도연이 <핑계고>라는 유튜브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진행자인 유재석을 불편해하는 듯한 반응을 시종일관 보여 논란(?)이 되었던 일 역시 어느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그러나 이 해프닝은 여러모로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많아 지면에서 다루어보고 싶다. 

뉴스를 보고 나서 문제의 핑계고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마도 나같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전도연이 무례하다 여겼을 것이다. 우리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 그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을 빨리 지목한 뒤 공격함으로써 고통을 덜고자 한다. 불확실성은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불편한 감정이 전도연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해서 거기에 반드시 공격받아야 할 만한 잘못이나 혐의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여기서는 혐의의 문제를 떠나, 그저 핑계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보고자 한다. 

핑계고 내용을 말하기 전에 사회적 맥락(social context)이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이는 특정한 공동체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상호 이해가 가능한 사회문화적 상황을 말한다. 쉽게 표현하면 암묵적 룰 같은 것이다.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라고 하면 외국 사람은 ‘왜 많이 차렸으면서 차린 게 없다고 하지?’ 라며 의아해 하겠지만, 우리는 이것이 겸손함을 담은 의례적인 표현임을 안다. ‘차린 건 없다’라고 말해야 하는 명시적 규칙이 있지는 않지만, 우리 문화권 안에서 이것은 암묵적 규칙처럼 작용하여,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무례한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암묵적 룰로는 ‘결혼 생활을 불행한 것처럼 묘사해야 한다’가 있다. 기혼자가 예능 프로에서 “하하, 결혼 생활 너무 행복하죠!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를 선택할 거에요. 하하핫”이라 말하고 옆에 있는 출연진들이 와하하 웃으며 당신의 진짜 속내를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자주 연출된다.

‘결혼 생활은 불행해’ 밈이라고나 할까.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마지막 기회다... 다시 생각해!”, “가족끼리 어떻게 스킨십을 해?” 등, 이 밈은 끝이 없다. 

또 하나 살펴볼 개념은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다. 마음이론이란, 타인이 감정과 생각, 의도 등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다. 눈치, 즉 사회적 단서(social cue)를 잘 읽는 것과 비슷한 의미이지만, 마음이론은 단순히 분위기 파악에 그치지 않고 상대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더 정확히 알아차리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핑계고로 들어가보자. 전도연과 유재석의 대화는 여러 군데에서 파열음이 났지만 대표적인 상황 두 가지만 살펴보자. 이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일단 알아야 할 사전 지식은, ‘유재석과 전도연은 대학 동기이나 당시에는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전혀 아니었다’는 점이다.

유재석은 이를 활용한 농담을 지속적으로 시도한다. 자신이 전도연과 절친이라는 식의 표현을 반복한 것이다. 유재석 자신이 ‘유명인(여기서는 전도연)과의 연결고리를 어떻게든 찾고 친분을 과시하려는 사람’을 연기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려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사회적 맥락이다. 이럴 때 상대 역시 보통 정해진 방식으로 반응한다. 맞장구 치면서 과장된 친한 척을 해주거나, 또는 장난스럽게 정색하면서 상대를 전혀 몰랐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도연은 이 사회적 맥락에 동조하는 반응을 전혀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당시에 하나도 친하지 않았는데 왜 자꾸 친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정색하며, 선넘고 ‘훅 들어오는’ 사람을 대하듯 불편해한다. 여기서 긴장이 발생한다. 

두 번째 상황은 유재석과 전도연의 대사를 통해 들여다보자. 

유재석: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투자 같은 것 하고 싶지 않으세요? 
전도연: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어떤 투자요?
유재석: 미리 알고 있으니까, 과거로 가서...
전도연: 치, 아니 너무 웃기지 않아요?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돈벌겠다는 거잖아요. 
유재석: (당황한 표정으로 장난스레) 돈 버는 게 뭐가 나빠요? 

우리 사회에는 “아, 내가 10년 전에 비트코인만 샀어도...” 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우리 모두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 존재한다. ‘큰 돈을 벌고 싶어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 행세를 하며 자조적인 농담을 한다.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돈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사람조차 돈을 많이 벌 기회를 놓쳐 속상하다는 식의 말을 하며 사회적인 맥락에 자신을 맞출 때가 많다.   

그런데 전도연은 이번에도 여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두 번째 균열이 발생한다. 

핑계고 속 유재석을 마음이론의 틀로 해석하자면, ‘유명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처럼 행동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당신과 친한 척을 하려고 해요. 부디 그런 나를 놀리거나 또는 함께 친한 척을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세요’, ‘당신도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처럼 말해서 대중에게 인간적인 느낌과 재미를 주세요.’ 인데, 전도연은 유재석의 이 모든 의도에 호응하지 않았다.  

권력이 작은 사람이 자신의 신념과는 다른 사회적 맥락에 동조하지 않기란 무척 쉽지 않은 일이다. 인지도를 어떻게든 높여야 하는 신인 배우라면, 최대한 기민하게 사회적 맥락을 포착하고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위를 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전도연은 자신의 권력을 사용한 것일까? (전도연이 핑계고 속 사회적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고 마음이론도 잘 갖추었는데도 맞춰주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 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인지는 여기서 말하기 곤란한 주제이므로 넘어가자.) 권력이 많을수록 사회적 맥락을 무시해도 안전한 것은 사실이나, 여기서 전도연의 권력이 과연 많은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쉽게 결론내리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권력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이 기여하기 때문이다. 유명인은 권력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분노한 대중 앞에서는 을이 되기도 한다. 또한 권력에는 성별과 나이, 그리고 직업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나이가 많은 남자 배우가 사회적 맥락을 무시했을 때는 덜 비난받을 확률이 높다. 그런 면에서 말과 행동에 대해 가장 가혹한 비난을 받는 집단은 아무래도 ‘어린 여자 아이돌’인 것 같다. “칼국수가 뭐지..” 라고 중얼거렸다가 사과의 사과를 거듭해야 했던 이 역시 미성년의 여자 아이돌이었다. 

그런 면에서 전도연이 받은 비난은, 미성년 여자 아이돌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어쩌면 중노년 남자 배우보다는 좀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일일이 다 정확히 계량해 내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한 경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미 대중이 잊어버린 핑계고 해프닝은 사회적 맥락과, 마음이론과, 그것에 동참하지 않았을 때 유발되는 긴장과, 약간의 아이러니한 통쾌함과, 권력의 복잡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무례한 게 맞는지 아닌지’가 아닌,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 

최신기사

윤석열 "명태균한테서 축화전화는 받아" "여론 조작할 이유 없어"
LG전자 상업용 세탁·건조기 'LG 프로페셔널' 공개, B2B 공략 본격화
LX그룹 구본준 '네 쌍둥이' 아빠 직원에 1억 선물, 저출산 해결 동참
전국지표조사 윤석열 지지율 19%로 또 최저치, 정당지지 민주 31% 국힘 29%
윤석열 “김건희 특검법안은 헌법 위반, 수사대상 추가는 정치선동일 뿐”
비트코인 시세 '100만 달러' 전망도 나와, "트럼프 첫 임기에 1900% 상승"
[다시, 트럼프] 트럼프 재선에 대우건설 인연 재부각, 1기 효과 ‘미미’ 2기는 달라질까
TSMC 글로벌파운드리 미국 반도체 보조금 수령 임박, '트럼프 리스크' 덜어
일본·폴란드 원전 협력 계약 체결, SMR 포함 최신 기술 공동개발도 고려
대신증권 “HD현대 매수의견 유지, 조선 ‘호실적‘ 정유·건설기계 부진 예상”
koreawho

댓글 (1)

  •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 저작권 등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은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등 비하하는 단어가 내용에 포함되거나 인신공격성 글은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삭제 합니다.
ㅇㅇ
칼럼을 쓸거면 제대로쓰든가 핑계고 봤다면서 절친이다 언급은 어디있음 ?? 동기언급만 나왔지 /핑계고 속 유재석을 마음이론의 틀로 해석하자면, ‘유명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처럼 행동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당신과 친한 척을 하려고 해요. 부디 그런 나를 놀리거나 또는 함께 친한 척을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세요’, ‘당신도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처럼 말해서 대중에게 인간적인 느낌과 재미를 주세요.’ 인데, 전도연은 유재석의 이 모든 의도에 호응하지 않   (2024-09-02 12:4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