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텔이 실적 부진과 재무 악화로 위기에 직면하면서 파운드리 사업 전략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인텔의 부진에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떠오른다. 미국 오리건주에 위치한 인텔 반도체 연구개발센터. |
[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이 심각한 재무 위기에 직면해 반도체 사업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 시설 투자를 대폭 축소하는 데 이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매각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서 잠재적 경쟁사인 인텔의 추격을 확실하게 뿌리치고 선두 TSMC에 버금가는 기업으로 도약할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1일 반도체 학술전문지 IEEE스펙트럼에 따르면 인텔의 재무 위기가 회사 차원을 넘어 미국 정부의 첨단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노력에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한국과 대만에 미세공정 시스템반도체 공급망 의존을 낮추려는 목적으로 인텔의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를 적극 지원해 왔다.
그러나 인텔이 실적 부진과 재무 악화를 이유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반도체 공장 투자를 축소하는 등 사업 전략에 큰 변화를 추진하며 상황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인텔의 반도체 공장 투자에 85억 달러(약 11조4천억 원)의 보조금과 110억 달러(약 14조7천억 원)의 대출 등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2026년까지 가동을 시작하는 미국 반도체 공장에 최고 25% 수준의 세제혜택도 제공된다.
그러나 인텔이 현재까지 미국에 1천억 달러 이상의 설비 투자 계획을 발표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미국 정부 지원만으로 경제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인텔이 아직 파운드리 사업에서 실적에 확실하게 기여할 고객사를 찾지 못했다는 점도 공격적인 반도체 공장 건설에 따른 자금 부담을 키우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결국 인텔의 재무 위기는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시각도 나온다. 자체 반도체 설계 사업과 파운드리를 동시에 육성하겠다는 목표가 무리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앞세우겠다는 목표를 두고 2030년까지 TSMC에 이은 2위 기업으로 자리잡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현재 2위 기업인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수 년 만에 뛰어넘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인 셈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필수적인 대규모 공장 투자 계획을 실현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 처하며 삼성전자로서는 경쟁 부담을 한층 덜게 됐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 팻 겔싱어 인텔 CEO가 미국 현지시각으로 2월22일 캘리포니아에서 개최한 IFS 다이렉트커넥트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텔은 현재 56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위기 의식을 바탕으로 사업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추진할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파운드리 사업을 반도체 설계 사업과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뿐 아니라 외부에 매각하는 시나리오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인텔이 매각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당장 취하기보다 일단 시설 투자를 대폭 축소하는 쪽으로 우선 가닥을 잡을 공산이 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인텔이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단기간에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파운드리 사업을 중단하고 다른 기업에 매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파운드리 사업 특성상 해마다 수십 조 원의 시설 투자가 이뤄져야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재무 여력을 갖추기가 현재의 인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은 여러 측면에서 삼성전자에 반사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인텔이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시나리오와 같이 공장 신설 프로젝트를 일부 철회하고 투자를 줄인다면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지켜내는 데 유리해진다.
TSMC 이외에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길 대안을 찾는 기업들의 수요가 대부분 삼성전자에 몰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인텔이 미국 정부 지원 대상에 포함된 반도체 공장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투자를 백지화하면 관련 보조금은 다른 기업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고려하는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TSMC와 삼성전자 모두 유력한 후보다. 두 기업 모두 미국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인텔이 만약 파운드리 사업을 매각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삼성전자는 이를 인수할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힐 수 있다. 미국 정부로서도 미세공정 반도체 시장에서 TSMC가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확보하는 일을 막으려면 2위 기업인 삼성전자가 몸집을 키우는 일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인텔은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 기업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인텔의 재무 위기를 계기로 오히려 지원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투자은행 도이체방크가 주최한 기술 콘퍼런스에 참석해 “어려운 상황에도 결실은 눈 앞에 보이고 있다”며 "외부 파운드리 고객사로부터 긍정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