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기자 swaggy@businesspost.co.kr2024-04-25 12: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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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한국의 출생률이 갈수록 떨어지며 ‘국가소멸’ 위기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4월 22대 총선 과정에서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생 공약을 대거 내놨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현금성 지원을 포함해 거주지 제공, 적극적인 이민제도 제고 등 청년층을 위한 특단의 추가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국민권익위원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온라인 국민소통창구 ‘국민생각함’에서 출산지원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사는 최근 부영그룹이 출산한 직원에게 현금 1억 원을 지원한 사례를 언급하며 '산모 또는 출생아를 수혜자로 지정하고 출산·양육지원금 직접 지원을 확대하는 제도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조사에서 권익위는 출산한 산모 또는 출생아에게 파격적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 출산에 동기부여가 되는지, 이에 따른 재정 투입에 동의하는지, 출산·양육지원금 지급을 위해 다른 유사한 목적의 예산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물었다.
현금성 지원에 관한 의견을 묻는 이번 조사는 2007년 17대 대선 당시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가 △결혼 수당 1억원 △출산 지원금 3천만 원 지급 등의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허 후보는 그 뒤 19·20대 대선에서도 비슷한 공약을 더 큰 금액으로 제시한 바 있었고 이를 놓고 황당하다고 여기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공약들이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진지하게 토의되는 사안들로 변모한 셈이다.
한국 합계출산율은 지난 2월 기준 0.65를 기록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가파른 추락을 보이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2040년에는 인구 5천만 명 선이 깨지고 3명 중 1명이 고령자로 구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 18년 동안 총 380조 원을 쏟아부으며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지난 18년 동안 실패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음에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총선에서 내놓은 저출생 공약에는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18일 강남구 중소기업 휴레이포지티브에서 총선 1호 공약 저출생 대책 '일·가족 모두행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정부조직 개편과 육아휴직 급여 상승, 무상교육 확대 실시, 세액공제, 세자녀 이상 대학등록금 면제, 부부 대출 요건 완화 및 주택공급 증가 등을 저출생 공약으로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3자녀 출산시 분양전환 임대주택 제공과 17세까지 아동수당 20만 원, 신혼부부 10년만기 1억 원 대출, 청년·신혼부부용 반값 아파트 25만호 제공, 국가 무한책임 보상제(돌봄), 육아휴직 급여 확대 등을 내놨다.
두 거대 양당의 공약은 과거와 비교해 진전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결혼과 출산의 적령기에 있는 청년들의 피부에 와 닿을지는 의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일례로 국민의힘과 민주당, 그리고 정부는 모두 세제지원 등을 통한 지원책을 내세웠지만 청년들은 자녀 양육에 대한 소득세제상 혜택이 크지 않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재정포럼 2월호에 실린 ‘저출산 대응을 위한 소득세제의 역할에 관한 소고’에 따르면 20대 가구의 평균 소득은 4천만 원 내외로 평균 실효세율은 1.2%였고 30대 가구는 5200~5600만 원으로 평균 실효세율은 3.3%로 나타났다.
반면 자녀가 없는 20대 가구의 평균 소득은 3890만 원 수준으로 평균 실효세율은 1.6%, 30대 가구의 평균 소득은 5244만 원으로 평균 실효세율은 4.1% 수준을 보였다.
유자녀와 무자녀간 평균 실효세율이 1%포인트 미만으로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자녀 양육에 대한 소득세제 혜택은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권성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소득세제를 통한 조세 지원은 세부담을 완화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20·30대의 경우 사회 초년생이거나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완화할 소득세 부담 수준이 낮거나 거의 없어서 저출산 대응 정책으로 효과를 달성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민주당이 그나마 현금성 지원을 담았지만 결혼이 힘든 현실에서 이를 전제로 한 지원은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젊은층 사이에선 청년에게 맞는 저출생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젊은 세대로부터 큰 인기가 있는 구독자 318만 명의 경제유튜버 ‘슈카(본명 전석재)’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청년’을 위한 집중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이같은 내용을 담은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게시했는데 현재 117만여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 슈카월드 코믹스 채널에서 슈카(전석재)가 출산율 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슈카월드 코믹스 유튜브 갈무리>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진 결혼을 해야 출산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슈카는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결혼을 안하는 이유 1위인 ‘결혼 자금 부족’과 2위 ‘고용 상태 불안정’을 근거로 들며 결국 ‘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정부가 제공하는 돌봄 정책, 육아휴직 등보다는 당장의 소득은 아닐지라도 기대 소득과 전망에 대해 안정감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슈카는 청년들의 고소득 일자리 제공을 위한 산업구조 조정의 필요성과 국민연금 보험료율의 재분배를 통한 청년 부담 완화 등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신혼부부에게 아파트 등 거주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파격적인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가 대전 거주 만 20-39세 남·여 1천명을 대상으로 최근 진행한 ‘대전시 청년정책 활성화를 위한 여론조사’를 보면 저출생 정책과 관련한 중요도를 묻는 질문에 일자리 정책이 43.2%. 주거 정책 39.2%로 총 82.4%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을 반영해 주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YTN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에 최근 나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 필요하다"며 구체적 방안으로 임대주택 공급, 전세자금 지원 등을 꼽았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 17일 '서울이노코믹포럼'에서 "청년들이 사회에서 주어진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출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금융부문이 중요하다"며 실질적 주거비를 줄여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바라봤다.
저출생 극복방안으로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도 제기되고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주장한 ‘이민청’과 같은 기관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노동인구의 유입을 통해 인구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과학·기술 외국인 인재 등에게는 선별적으로 빠르게 영주권을 지급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일반 외국인 노동인구에 대해선 여전히 높은 장벽을 두고 있다.
동포 등이 아닌 일반 외국인이 ‘F-5’ 영주 비자를 받기 위해선 까다로운 소득, 학력 조건 등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1인당 GNI(국민총소득)의 2배 이상이란 조건이 가장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는데 세전 연봉으로 따질 때 8천만 원대에 이른다.
외국인에게 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일본조차도 지난해 기준으로 영주권자 비율이 우리나라(7.8%)보다 3배나 높은 28%에 이를 정도로 벽을 낮추고 있다. 양질의 노동인구 유입을 위해 영주 비자 발급을 위한 장벽을 더욱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