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한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인으로서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법무부장관 옷을 벗자마자 여당의 당대표 격인 비상대책위원장에 오르며 정치에 발을 들였지만 그가 진두지휘한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사실상 패배했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 주자로 거론됐던 그의 앞길이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10일 지상파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 조국혁신당 등 진보 계열로 분류되는 정당이 모두 196~211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전체 의석 수 300석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몫이 진보 계열 정당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국회의원 200석은 정치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뿐 아니라 헌법 개정, 대통령 탄핵 등을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의석 수가 바로 200석이다.
국민의힘이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에게 ‘절대권력’을 헌납하는 꼴이 예상되면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으로서는 정치 데뷔 100여일 만에 최대 위기를 마주하게 됐다.
한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말 국민의힘 사령탑 자리에 오를 때만 해도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올해 2월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국민의힘이 단독으로 의회 과반을 확보하는 것 아니냐는 장밋빛 전망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한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 선거 승리를 기반 삼아 앞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해 나갈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30%대에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어려운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이라는 타이틀까지 붙는다면 차기 대선 주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이견은 없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거듭된 실책이 한 비대위원장의 발목을 잡았다. 선거를 한 달가량 앞두고 이른바 ‘이종섭·황상무 논란’이 여권에 악재로 작용하면서 결국 한 비대위원장도 정치인으로서 동반 몰락하는 모양새다.
한 비대위원장은 앞으로 정치적 휴식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세 시기만 하더라도 선거가 끝나도 당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최종책임자로서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결국 비대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을 공산이 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국민의힘이 이른바 개헌저지선조차 확보하지 못한다면 한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을 통해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 비대위원장이 정치 초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의 당 대표까지 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 손발을 오래 맞췄다는 인연 때문이었다.
이른바 ‘윤심’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정치에 입문한 것인데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면서 그가 더 이상 정치인으로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를 놓고 의구심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한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여러 차례 각을 세웠다는 점도 그의 정치적 재기가 한동안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한 비대위원장은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용산 대통령실과 마찰을 빚었다. 대통령실로부터 직접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나줄 것을 요청받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 비대위원장은 즉시 거절 의사를 나타내며 윤석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모습까지 보였다.
한 비대위원장은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화해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이종섭·황상무 논란 당시에도 대통령실과 다른 입장을 내놓으면서 ‘2차 윤한갈등’도 겪었다.
윤석열 정부를 도와야 하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실과 자주 갈등하는 모습을 내비친 한 비대위원장에게 당의 중책을 다시 맡아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슷한 이유에서 행정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지도 크지 않아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자신에게 여러 차례 반기를 든 한 비대위원장에게 중요한 자리를 맡기기가 내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사활이 걸린 선거에서 참패한 뒤 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난 정치인 가운데 재기에 성공한 인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홍 시장은 2017년 5월 실시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큰 표차로 졌다.
보수정당 역사상 대선에서 최악의 참패를 당한 후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선이 끝난지 약 두 달 만인 2017년 7월 자유한국당 초대 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러나 홍 시장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패배한 데 책임을 지고 당 대표에서 물러났고 2020년에는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은 탓에 지역구 경선에서 컷오프되기까지 하며 정치적 시련기를 또 맞이했다.
하지만 홍 시장은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을에 출마해 당선되며 자력 생존에 성공했다.
이후 2022년 대선 출마에 도전했지만 윤석열 후보에게 밀려 또다시 역경을 겪는 듯 했으나 이후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민선 복수 광역자치단체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물론 한 비대위원장과 홍 대구시장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시각도 많다.
홍 대구시장은 비록 국민의힘 내부에서 계파색이 없는 비주류 정치인으로 분류되지만 국민의힘 전신인 신한국당에 1996년 입당해 30년 가까이 한 당에서만 활동한 보수 계열 정당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여러 차례 선거에 지거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도 줄곧 국민의힘 대표 정치인으로서 역할을 다시 부여받았던 이유 가운데 이런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한 비대위원장은 홍 대구시장과 달리 국민의힘 내부에 뚜렷한 지지기반을 확보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당을 통해 정치 활로를 모색하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상파방송3사 공동출구조사는 KBS·MBC·SBS가 한국리서치와 입소스주식회사,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진행됐다. 10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조사했으며 전국 투표소 1980곳에서 모두 35만9750명을 대상으로 물었다.
매 5번째 투표자를 같은 간격으로 조사하는 체계적 추출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지역별로 95% 신뢰수준에서 ±2.9%포인트~7.4%포인트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