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이 올해 새로운 저가 전기차 신차를 잇달아 출시하고 충전 인프라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위축된 국내 전기차 시장이 반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차그룹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는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며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내에서 국산 전기차 대부분을 생산·판매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그룹은 올해 새로운 저가 전기차 신차를 잇달아 내놓고, 충전 인프라 확대에 나서고 있어 '캐즘'(대중화 전 산업 수요 감소)에 빠진 국내 전기차 시장 반등을 이끌 수 있을 지 주목된다.
31일 독일 자동차경영센터(CAM)와 한국자동차연구원 통계를 종합하면 지난해 세계에서 전기차는 약 900만 대가 판매돼 전년보다 29% 증가하는데 그쳤다.
2021년과 2022년 전년 대비 글로벌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각각 115.2%, 67.9%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성장세가 급격히 줄었다.
전기차 시장 위축 현상은 특히 한국에서 뚜렷하게 관측되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통계를 보면 2022년 국내에서 전년 대비 판매 성장률이 63.8%에 달했던 전기차는 2023년엔 1.1% 역성장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2월까지 국내 전기차 판매량 역시 4534대에 그치며 전년 동기(1만2302대)보다 63%나 줄었다. 물론 올해 1~2월 국내 전기차 판매 감소는 수요 자체의 추가 위축이 아니라, 올해 전기차 국고 보조금 확정이 작년보다 늦어져 소비자의 전기차 구매가 미뤄진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올해 국내 연간 전기차 판매량이 또다시 역성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올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의 전기차를 잇달아 출시하고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 전방위적 전기차 판매 확대에 나서고 있어 시장 위축 추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내 시판 국산 전기차 가운데 KG모빌리티의 토레스 EVX를 제외한 모든 차량은 현대자동차그룹이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기아는 올 상반기 브랜드 첫 보급형 전용 전기차 'EV3'를 국내에서부터 출시한다.
송호성 기아 대표이사 사장은 이달 주주총회에서 "최근 전동화 시장은 대중화 시대로 진입하면서 일시적 수요 둔화를 겪고 있으나 미래에는 전기차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올해 볼륨 모델인 EV3를 신규 런칭해 전기차 대중화를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앞서 송 사장이 작년 10월 기아 EV데이에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대중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첫번째 원인으로 전기차의 높은 가격을 지목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겠다"며 콘셉트카를 최초로 선보인 보급형 전기차가 바로 EV3다.
기아는 지난달 기아 광명 2공장에서 EV3를 생산하기 위한 설비교체를 마치고 시험가동에 들어갔다.
기아 측은 EV3 판매가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미국 출시 가격은 니로 EV보다도 1만 달러 가량 낮은 3만 달러(약 4천만 원) 수준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송호성 기아 대표이사 사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기아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제8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 <기아> |
장재훈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도 이달 주총에서 "전기차 부문에서 경쟁사의 공격적 가격 인하로 촉발된 EV 원가경쟁력 확보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며 "EV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상품 라인업 효율화 등을 통해 원가절감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올 하반기 시판 경형 전기차보다 주행거리를 혁신적으로 늘린 '캐스퍼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대차의 경차 캐스퍼를 위탁 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올해 7월 캐스퍼 전기차를 양산하기 위해 지난달 시험 생산을 시작했다.
GGM에 따르면 캐스퍼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 모델보다 전장을 25cm 늘리고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했다.
이에 따라 캐스퍼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작년 기아가 출시한 경형 전기차 레이 EV(205km)보다 무려 150km 증가한 350km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룹 차원에선 대대적 충전 인프라 확대에 나서고 있다.
그룹은 2021년 4월 초고속 충전 서비스 이피트(E-pit) 72기를 고속도로에 설치한 뒤, 올해 3월 현재 총 54개소에서 4배 가량 늘린 286기를 운영하고 있다. 내년까진 2021년 대비 7배 증가한 500개 이피트 충전기 구축할 계획을 세웠다.
그룹은 이피트 외에도 내년까지 계열사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를 통한 국내 초고속 충전기 3천 기와 현대엔지니어링을 통한 완속 충전기 2만 대를 추가 설치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환경부는 올해 공용 충전시설 설치 보조금을 42% 늘린 3715억 원으로 책정하고, 급속 충전기당 최대 7천 만원을 배정하며 국내 충전 생태계 확대 지원에 나섰다.
이런 현대차그룹 국내 전기차 판매확대 전략은 일단 국내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딜로이트그룹이 발간한 '2024 글로벌 자동차 소비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는 전기차와 관련해 특히 충전과 가격 관련 우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소비자 가운데 가장 많은 48%는 충전 소요 시간을 우려 사항으로 꼽았다. 이어 전기배터리 안전 문제(45%), 주행거리(36%), 공공 전기충전 인프라 부족(36%) 순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비싼 가격을 우려한다는 소비자도 30%로 나타났다.
김태환 한국딜로이트그룹 자동차산업 전문팀 리더는 "일부 시장에서는 높은 이자율과 차량 가격 상승으로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현상이 관찰된다"며 "정부의 인센티브에도 짧은 주행거리, 오랜 충전시간, 충전 인프라 부족 등으로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