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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모든 것] 상속 재산의 정리가 필요할 때, 유언은 요건 갖춰져야

고윤기 info@kohwoo.com 2024-03-13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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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모든 것] 상속 재산의 정리가 필요할 때, 유언은 요건 갖춰져야
▲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전 재산을 막내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이미 작성해 줬다면 막내아들은 아버지가 써준 유언장만 믿고 안심해도 될까? 아니다. <코파일럿>
[비즈니스포스트] 아버지가 등산을 갔다가 낙상했다. 몇 차례 수술을 했지만 몸 전체에 마비가 왔다. 그래도 말하는 데는 지장이 없고 아직 정신이 흐려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안타깝지만 요양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전처 소생의 큰 딸이 있는데 몇 년 전에 아버지와 다툰 뒤 의절 상태였다. 

그런데 그 딸이 갑자기 효녀가 되었다.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와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 속셈은 뻔하지만 모른 척하고 있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재산을 증여받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유언장을 받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 전 재산을 막내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이미 작성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 사례에서 막내아들은 아버지가 써준 유언장만 믿고 안심해도 될까? 아니다. 

먼저 이 사례처럼 전신불수 아버지의 재산을 증여받고 싶은 큰 딸이 하는 행동 패턴을 알아보자. 큰 딸은 먼저 아버지의 통장과 도장, 은행 현금카드를 찾는다. 몰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 책상, 옷장 같은 곳을 뒤지기도 한다. 

이렇게 금융재산이 우선적인 표적이 된다. 왜냐하면 금융재산은 비교적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아버지 본인이 직접 움직이지 않더라도 은행카드, 스마트폰을 통해 계좌 이체가 가능하다.

큰 딸은 아버지의 계좌내역을 확보해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있는지 목돈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돈을 인출할 수 있는 경우라면 찾아가거나 이체한다. 스마트폰 뱅킹과 인터넷 뱅킹이 활성화된 이후에는 더 간단해졌다. 클릭 한 번이면 계좌 이체가 가능하다. 

아버지가 고령이어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우면 아버지를 은행으로 데리고 가서 폰뱅킹이나 인터넷 뱅킹 가입을 시도한다. 

물론 은행에서 폰뱅킹이나 인터넷 뱅킹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큰 딸은 아버지에게 소요되는 병원비, 생활용, 세금 등의 비용을 관리하려면 필요하다고 설득한다. 

금융재산을 확보하고 보니 더 욕심이 생긴다. 아버지의 부동산을 갖고 싶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부동산을 증여받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보통 자신의 병원비나 생활비, 공과금에 사용하도록 금융재산을 증여하는 데는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부동산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큰 딸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아버지는 부동산을 증여할 의사를 내 비추지 않는다.

보통은 이 지점에서 포기하는데 상황에 따라 아버지 몰래 부동산을 이전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려면 기본적으로 인감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대리인에게 인감도장이랑 신분증만 맡기면 인감증명서의 대리 발급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검증 절차가 까다로워졌다. 그리고 법무사가 부동산 등기를 증여로 이전하는 경우 증여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큰 딸은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동의해 주지 않으며 부동산을 자신에게 이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때부터 친절했던 큰 딸은 날카로워지기 시작한다. 배다른 형제들과 이런저런 일로 싸우고 아버지에게 폭언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뒤로는 아버지에게 유언장 작성을 강요한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시작하기도 한다. 

유언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어제 아들에게 전 재산을 주기로 한 유언장을 오늘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유언의 내용을 바꾸는 데도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도 유언장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아버지가 변심해서 언제 다른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할지 모른다. 사안처럼 미리 유언장을 받아 놓은 경우에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사안에서 아버지는 전신불수이기 때문에 손으로 유언장을 작성할 수 없다. 그러면 남은 방법 중에 가장 간편하고 비용이 저렴한 것은 ‘녹음 방식에 의한 유언’이다. 녹음기 대신에 스마트 폰으로 영상을 찍어서 유언할 수도 있다. 그래서 큰 딸은 스마트 폰으로 아버지의 유언을 녹화하려고 시도한다.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성년 후견 신청을 통해서 이런 시도를 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큰 딸의 행위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유류분 반환청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스마트폰에 녹화한 유언은 무효가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유언은 민법에서 정한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요건 가운데 한 가지만 빠져도 무효가 된다. 

스마트폰 유언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내용), 자신의 이름과 유언 날짜를 말해야 하고 증인 1명이 나와서 자신의 이름과 유언이 정확하다는 점을 말하는 영상이 녹화돼야 한다. 여기서 미성년자, 피성년 후견인, 피한정 후견인, 그 유언에 따라 이익을 받게 될 자나 직계혈족은 증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본 대부분은 스마트폰 유언은 이 가운데 무언가 하나가 빠져 있었다. 이러면 유언 전체가 무효가 된다. 사안에서 큰 딸이 아버지의 유언을 법에 규정한 형식에 맞춰 녹화하지 못했다면 유언을 무효로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놀랍게도 이 사안은 가상의 사례가 아니다.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조금 각색한 것일 뿐이다. 이 사안처럼 급작스러운 사고나 병으로 피상속인의 건강이 나빠지면 미리 상속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본 많은 사안에서 피상속인은 자신이 약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다 점차 시간이 지나고 피상속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정신도 흐려진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한다.

정신이 더 흐려지기 전에 유언장을 작성하던 재산을 증여하든 사인 증여 계약이나 유증을 하든지 간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당장에 자식들은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의 사후에 자식들이 법정에서 얼굴을 붉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늦지 않게 결심해야 한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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