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9월8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박람회에 허사이의 AT128 라이다 제품을 탑재한 차량이 전시돼 있다. 전면부 유리 가운데 위쪽에 검은색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라이다다. < Hesai > |
[비즈니스포스트] 자동차 자율주행 관련 제품인 ‘라이다(LiDAR)’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을 무기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반면 미국 라이다 업체들은 중국산 제품 관련 규제를 촉구하며 자국 정치권에 로비를 강화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기업들을 상대로 글로벌 기업들이 벌이는 각축전이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8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3년 연말까지 23년 동안 중국 기업들이 출원한 라이다 관련 특허 개수는 모두 2만5957건이다. 매년 평균 1128건 꼴이다.
같은 기간 미국과 일본 기업들은 각각 1만8821건과 1만3939건을 출원했다.
일반적으로 기술 강국으로 여겨지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최소 37.9% 이상 많은 수의 특허를 중국업체들이 낸 것이다.
중국업체들은 기술 상용화를 넘어 세계 시장 점유율도 높이고 있다.
프랑스의 시장조사업체 욜(Yole)에 따르면 중국 기업인 허사이(Hesai Technology)가 2022년 세계 라이다 시장의 47%를 차지했다. 기업 한 곳이 과반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인 셈이다.
허사이는 미국 완성차기업인 GM이 대주주로 있는 로보택시 회사 크루즈에 제품을 납품한다.
로보센스라는 중국 기업도 2022년에 5만7천여 개의 라이다 제품을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도호쿠대학의 로봇공학 전공 슈지 다나카 교수는 닛케이아시아를 통해 “허사이와 로보센스는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수년 동안 글로벌 라이다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빛 감지 및 거리 측정(Light Detection And Ranging)’의 영문 약자인 라이다는 자율주행차의 핵심 부품으로 평가된다.
레이저를 목표물에 비춘 뒤 반사되는 빛을 감지해 사물과의 거리 및 물성을 감지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사람으로 치면 ‘눈’에 해당하는 장치다.
라이다 센서를 부착한 차량은 이를 통해 경로와 속도를 설정하거나 충돌을 방지하도록 자율적으로 주행한다.
▲ 한 탑승객이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오스터의 라이다 제품을 탑재한 현대 아이오닉 5 로보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 Motional > |
라이다는 초기에 개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과 정확도 문제 때문에 도입하는 업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수요가 부족해 라이다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인 독일 보쉬는 최근 기술 개발을 중단했다.
전기차 기업의 대명사인 테슬라도 라이다 대신 카메라를 활용한 시각정보로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자체 기술인 ‘테슬라 비전’을 활용한다.
서구 업체들이 라이다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하는
사이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시장 저변을 넓혀나가고 있는 셈이다.
닛케이아시아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의 라이다 개발자들은 라이다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반대로 중국 기업들은 2015년 이후 특허 출원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짚었다.
중국 기업들의 성장세를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났다. 미국 정치권 로비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의 2023년 12월28일자 기사에 따르면 라이다 기업인 미국 오스터가 중국산 라이다 탑재한 차량이 미국에서 운행하지 못하거나 관세를 높이게끔 정치권에 로비를 한 정황이 파악된다.
오스터는 현대차가 미국의 전장기술 업체 앱티브와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해 함께 설립한 모셔널에 라이다 제품을 공급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과 첨단 산업에서 경쟁하는 중국 업체들이 라이다 기술로 미국의 주요 인프라를 감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폴리티코는 “오스터가 경쟁사를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경쟁업체의 기술력을 미국 업체가 경계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중국의 허사이는 미국에서 자체 로비스트와 홍보팀을 새로 꾸리고는 미국 업체의 공세에 맞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허사이의 고객사는 규제에 반대하는 의견을 폴리티코를 통해 전하면서 “허사이의 라이다는 우리가 자율주행 기술을 작동하는데 필요한 성능을 갖춘 유일한 기기”라며 “다른 어떤 가격에도 (허사이만큼의) 기능을 보장하는 제품이 없다”고 했다.
허사이가 가격 경쟁력은 물론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로 풀이된다.
결국 라이다 개발에 글로벌 업체들이 주춤한 사이 중국 기업들이 영향력을 키우며 미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