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영건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갚지 못해 28일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을 신청하면서 도미노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건설업계가 유동성 위기 확산 우려에 시린 연말을 보내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16위의 태영건설이 당장 갚아야 하는 480억 원 규모 차입금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을 신청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시작으로 건설업계 전반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긴장감이 확산하고 있다.
28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기준 국내 부동산 PF 대출잔액(채무보증 제외) 규모는 134조3천억 원에 이른다. 전반적 대출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지만 은행과 증권사 PF 대출잔액이 각각 2022년 말과 비교해 약 4조8천억 원, 1조8천억 원 증가했다.
특히 연체율이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의 PF 대출 연체율은 3분기 기준 각각 5.6%, 4.2%로 지난해 말보다 3.5%포인트, 4.1%포인트 상승했다. 증권회사 연체율은 13.9% 수준이다.
건설사들이 PF 대출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태영건설이 이날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이런 건설업계의 유동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워크아웃은 회사와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마련하는 회사 재건협약으로 재정위기에 처한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에 선택하는 재무구조개선작업을 뜻한다.
정부는 태영건설이 이날 워크아웃을 신청하자 바로 김주현 금융위원장 주재로 회의를 진행하고 시장안정화를 위한 대응방안 브리핑을 열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건설업계 나아가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즉각적 조치에 들어갔다.
정부는 태영건설 관련 사업장 협력업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 등 비상계획 가동, 건설사 발행 회사채와 PF 보증에 관한 차환지원 프로그램 확대 시행 등을 발표했다. 태영건설은 PF 보증 규모, 부채비율 등 상황이 다른 건설사들과 다르기 때문에 건설산업 전반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PF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특정사업의 사업성과 장래 현금흐름을 예상해 자금을 지원해주는 금융기법이다. 업황이 좋고 사업이 잘 될 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원자재값 상승 등에 따른 건설사업 수익성 저하와 경기침체 전망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사업지연, 자금시장 경색, 금융비용 누적 등 여러 악조건으로 우발채무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발채무는 일정한 조건이 발생하면 부채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태영건설의 사례를 봐도 2022년 하반기부터 계속된 PF 우발채무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차입 규모가 더 불어나고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이 커지면서 결국 워크아웃 상황에 몰렸다.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신용평가사 분석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2023년 11월 말 별도기준 도급사업 PF 우발채무 규모가 3조6천억 원 수준에 이른다. 2021년 말 기준 2조3435억 원, 2022년 2조9891억 원으로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태영건설은 PF 우발채무 규모가 회사 자기자본의 3.7배 수준을 보이고 있다. 우발채무 가운데 과반이 미착공 또는 착공 뒤 분양 전 사업장으로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재무부담이 더 악화될 공산이 크다. 9월 말 기준 태영건설의 PF 사업장은 60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태영건설은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 우발채무가 1조6천억 원 규모다. 이 가운데 우발채무 9680억 원 규모는 실질적으로 차환 위험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태영건설은 앞서 건축과 자제분양사업이 호조를 보이면서 2022년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을 191.7%까지 개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채무불이행 선언으로 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태영건설을 비롯한 건설업계가 유동성 확보 문제가 본격화됐다.
태영건설은 올해 1월 그룹 지주회사 티와이홀딩스로부터 연 이율 13% 높은 금리로 4천억 원을 차입했다. 3월에는 경북 경주시 루나엑스 컨트리클럽(CC)를 담보로 한국투자증권과 2800억원 규모 투자협약을 맺었고 9월에는 사옥을 담보로 1900억 원을 빌렸다.
계열사 태영인더스트리와, 평택싸이로 매각, 포천파워 지분 매각, 경기 부천 군부대 현대화 및 도시개발사업 지분 매각 등 전방위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섰지만 과도한 우발채무를 해결하지 못했다.
▲ 김주현 금융위원장(가운데)이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오른쪽)이 참석한 가운데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관련 관련 대응방안'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태영건설 외에도 신세계건설, 동부건설, GS건설 등은 재무부담 확대 등을 이유로 최근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됐다.
신세계건설은 2023년 3분기 연결기준 부채비율이 467.9% 수준으로 2022년 말(265%)보다 크게 높아졌다.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022년 말 –0.8%에서 올해 3분기 기준 –7.8%로 악화됐다.
신세계건설은 2021년 말까지는 실질적으로 무차입 기조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대구 등 지역의 미분양 주택 공사비 회수가 지연되고 골프장 부지 매입 등 자금소요가 늘어나면서 회사의 총차입금은 2022년 말 1125억 원에서 올해 3분기 말 3785억 원으로 증가했다.
9월 말 누적기준 회사의 영업현금흐름(–172억 원), 잉여현금흐름(-1842억 원)로 적자를 보이고 있다.
동부건설도 상황은 비슷하다. 주택분양 경기 부진 등으로 수익은 하락하고 원가율은 상승하면서 재무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동부건설은 2023년 9월 말 기준 순차입금이 5207억 원으로 2022년 말보다 1천억 원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171%에서 206.3%로 높아졌다.
GS건설도 최근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2023년 말 기준 PF 우발채무 1조7천억 원 규모에 관한 유동성 대응은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차입금 확대, 인천 검단아파트 재시공 비용반영 등으로 재무구조는 악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권준성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12월 건설산업 2024년 전망 보고서에서 분양경기 침체에 따른 사업성 저하로 건설사들의 PF 우발채무 차환 및 현실화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바라봤다.
권 연구원은 “2020~2021년 부동산 호황기에 주택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한 일부 건설사의 경우 PF 우발채무가 크게 증가하고 지방사업장의 비중도 높아진 상황”이라며 “주택시장의 지역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재무적완충력이 취약한 가운데 PF 우발채무 규모가 과도하거나 지방 사업장 비중이 높은 건설사를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PF 부실 우려가 확산하는 일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특히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때와 다르게 이미 알고 있던 리스크였다는 점에서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모든 위험 요인을 관리하고 있다"며 "금리나 거시경제 상황이 조금 더 개선되면 생각대로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재보 역시 금융안정보고서 기자간담회에서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금융시장 안정 등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본다'며 "만에 하나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한은과 정부가 협력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