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확장현실(XR) 기기 시장에 진입을 앞두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확장현실 기기의 판매 흥행에서 성패는 관련 콘텐츠 기반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그런 만큼 삼성전자는 먼저 콘텐츠 생태계를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확장현실(XR) 기기 시장 공략에 나서기 앞서 관련 콘텐츠 생태계 마련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2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년 하반기에 출시될 것으로 전망되는 확장현실 기기 초도 출하량을 3만 대 수준으로 제한하는 보수적 시장진입 전략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IT전문매체 WCCF테크는 팁스터(IT정보유출자) 코너를 인용해 "삼성전자는 초도 출하량 3만대라는 극히 낮은 목표를 세우고 있다"며 "이 목표는 애플의 확장현실 기기인 비전프로의 내년 출하량 추정치 60만 대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자신들이 만든 XR기기가 큰 관심을 끌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애플이 내년 비전프로 출하를 신중하게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삼성전자는 그보다 훨씬 보수적 전략을 펼 것이라는 관측이다.
삼성전자가 XR기기 수요를 보수적으로 잡고 있는 배경으로 자체 XR 콘텐츠 생태계가 아직까지 미흡하다는 점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XR기기 시장이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려면 무엇보다 XR기기에서 구동되는 콘텐츠가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마련한 XR 콘텐츠 생태계는 아직까지 미성숙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IT전문매체 샘모바일은 “삼성전자의 XR기기는 충분한 콘텐츠 없이 성공할 수 없다”며 “하지만 현재까지 삼성전자는 XR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충분히 구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경쟁업체인 애플이 조성하는 XR 콘텐츠 생태계에 편승하는 전략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은 XR기기를 삼성전자보다 앞서 상반기에 출시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애플 기기에서만 구동되는 폐쇄생태계를 XR기기 영역까지 확장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XR 경쟁업체인 메타는 주로 게임 콘텐츠에만 집중하고 있는 만큼 스마트폰 및 웨어러블과의 연동성을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삼성전자와는 XR기기의 방향성이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자체 XR기기 콘텐츠를 마련하기 위해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업체들과 제휴전략에 힘주고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모바일 경험)사업부장 사장은 올해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구글 및 퀄컴과 XR 생태계 구축에 협력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 뒤 다니엘 아라우조 삼성전자 DX(디바이스 경험)사업부 전략기획팀 상무는 2분기 실적발표 뒤 진행된 콘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XR 콘텐츠 생태계 구축을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몰입 경험 제품 기획과 개발을 위한 전담 조직을 설치했으며 여러 관계사 및 파트너사와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중공업과 함께 세운 벤처캐피탈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지난해 국내 메타버스(가상현실 공간) 스타트업 더블미가 진행한 2500만 달러(약 326억 원)의 투자에 참여한 바 있다. 더블미는 홀로그램 기반의 메타버스를 구축하는 업체다.
삼성전자는 메타버스를 넘어 콘텐츠 사업영역을 더욱 넓힌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행사 IFA2023에서 “XR 등을 활용해 헬스케어부터 엔터테인먼트, 원격근무까지 모든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특히 헬스케어 분야에서 XR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왼쪽부터),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 히로시 로크하이머 구글 수석부사장이 2월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 2023 행사에서 XR(가상현실) 부문협업을 발표하는 장면. <삼성전자>
삼성전자와 협력하는 퀄컴은 헬스케어 분야 가운데 하나인 온라인 피트니스 분야에 힘쏟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피트니스 XR 콘텐츠는 스마트폰 및 웨어러블과의 연동성을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삼성전자에게 유리한 영역으로 꼽힌다.
휴고 스와트 퀄컴 수석 부사장겸 XR 부문 본부장은 IT전문매체 씨넷과의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을 카메라로 사용할 수 있는 XR 피트니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가상현실에서 피트니스 운동을 하는 동안 스마트폰 뒷면을 이용자쪽을 향해 움직임을 캡처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협력을 통해 XR기기 콘텐츠 생태계 기반을 넓히면 애플과의 경쟁에 보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당초 XR기기를 내년 상반기에 출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애플이 비전프로를 공개하자 출시일을 하반기로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XR 전문매체 믹스드는 “애플 비전프로의 뛰어난 성능이 삼성전자가 XR기기 출시를 미룬 이유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애플 XR기기도 아직까지 콘텐츠 생태계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XR 부문 전문가 잭 양은 사회관계망서비스 미디엄을 통해 “애플은 XR 분야에서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애플도 XR 콘텐츠 생태계 마련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은 XR기기 시장의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에게도 기회 요인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애플은 폐쇄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의 XR기기를 뒷받침할 콘텐츠 생태계가 영역 면에서 더욱 다채로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노태문 사장은 구글, 퀄컴과 XR 협력을 알리면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은 한 회사의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고 “선도기업들과 개방적인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바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