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에 위치한 ‘예언자의 모스크(알 마스지드 안 나바위, Al Masjid an Nabawi)’의 모습,. 녹색 지붕이 있는 곳 아래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관이 안치된 묘실이다. <비즈니스포스트> |
[사우디아라비아 =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 “거기는 지금 위험한 것 아닌가.” “요즘 그쪽 정세도 불안한데.” “이슬람권 나라는 방문하기 좀 그렇지 않나.”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10월7일 이스라엘을 공격해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하자 기자에게 주변 사람들이 자주 건냈던 말들이다. 기자는 당시 10월 9~16일 일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출장은 무사히 마쳤고 달도 바뀌어 5일에 이르기까지 한달 가량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갈등은 오히려 격화돼 가자지구에서 시가전까지 전개되는 등 이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까지 사태가 악화됐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연일 중동 사태, 중동 분쟁, 중동 전쟁과 같은 단어가 머릿기사 제목을 장식하고 있다. 기자에게 사우디아라비아 출장 후일담을 묻는 사람들 다수도 안전과 관련된 질문을 던진다.
한국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대체로 그렇게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중동, 이슬람, 거기, 그쪽이라는 표현 속에 주변 지역과 한 데 묶여 낯설고 위험한 곳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는 분명 독특하고 우리와 매우 다른 나라이기는 하다.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지닌 전제 군주가 있고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종교의 영향력이 강하다.
게다가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기까지 하다. 그나마도 이슬람 관련해서는 주로 국제뉴스를 통해 테러, 무장단체, 히잡과 같은 여성 억압 등 부정적 정보만을 주로 접하게 되니 낯설음에 막연한 두려움도 더해진다.
하지만 기자가 제다(Jeddah)와 메디나(Medina)를 방문하면서 직접 접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람 사는 모습은 생각과 너무나도 달랐다.
정치, 문화, 종교가 달라도 그들이 사는 모습은 우리네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해안가의 주말 저녁 모습.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 한강, 월미도와 같이 흥이 넘치는 제다의 해변가
‘터치 미 라이크 유 두, 터 터 터치 미 라이크 유 두~’
영국 가수 엘리 굴딩의 세계적 히트곡 ‘Love me like you do’의 도발적 가사가 파도 소리와 함께 귓전에 울린다. 해변가를 화려하게 수놓은 분홍빛 조명은 더욱 흥을 돋운다.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가족들, 놀이기구를 타겠다고 떼쓰는 아이와 한적한 곳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까지. 서울의 한강변 혹은 인천의 월미도 해안가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항구도시 가운데 하나인 제다의 주말 저녁 모습이다.
출장 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다. 사실 기자가 출장 전에 상상한 사우디아라비아의 풍경은 대체로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사막 같은 지역에 저층 건물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같이 개방되고 발전된 도시로 유명한 곳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살면서 사진이나 영상으로 접한 중동지역의 모습이 대체로 그러했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 평화롭고 우리 일상과 똑같은 모습을 접하며 신변 안전과 관련해 출장 전 품었던 한 가닥 불안한 마음이 사라졌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이 과연 맞나 의문까지 들었다.
스마트폰을 켜고 세계 지도를 살펴보니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요르단이 있어 두 나라가 직접 국경을 맞대지 않는다.
게다가 제다와 가자지구 사이 거리는 대략 1100km가 넘는다. 한반도 쪽에 대입해 보면 중국을 가로질러 몽골까지 이를 수 있는 거리다.
▲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해안가의 주말 저녁 모습. 나들이객들이 해안가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무슬림에게도 빗장 푼 이슬람의 3대 성지 '메디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자 한 번 더 용기를 내보기로 결심해 봤다.
취재 일정이 없는 주말을 이용해 이슬람교의 3대 성지 가운데 한 곳인 메디나(Medina)를 방문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슬람교의 3대 성지는 메카와 메디나,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 무색하게 서구권과 이슬람권의 갈등이 수백 년 동안 이어지는 도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갈등 역시 예루살렘이 지니는 상징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메카, 메디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이슬람권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도시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앞세우는 칭호가 ‘두 도시의 수호자’일 정도다.
이슬람교의 중요한 성지인 만큼 메카, 메디나는 오랜 기간 무슬림(이슬람 신도를 이르는 말)에게만 출입이 허락된 도시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광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한 2019년에도 메카, 메디나만큼은 비(非)무슬림에게 개방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비전 2030’을 통해 개방 정책 및 관광을 강화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지난해부터 메디나는 무슬림이 아니어도 방문할 수 있도록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메디나는 이슬람교의 3대 성지 가운데 비무슬림이 안전하게 방문할 수 있는 유일한 성지인 셈이다.
▲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에 위치한 '예언자의 모스크'를 북쪽에서 바라본 모습. 넓은 대로가 펼쳐져 있지만 수많은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비즈니스포스트> |
메디나를 방문하기로 결정했지만 막상 가려니 긴장도 됐다. 기자는 누가 봐도 이곳에서는 눈에 띄는 철저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외국인 수가 적은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인근 국가에서 온 무슬림 외국인이라 한국인은 커녕 동북아시아인을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출장 기간 내내 마주친 동북아시아인이라고는 같은 호텔에 묶는 홍콩인으로 추정되는 3~4인 무리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었을 정도다.
개방된 지 1년도 안 된 성지에서 당연히 비무슬림일 것으로 생각될 동북아시아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할지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메디나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예언자의 모스크(알 마스지드 안 나바위, Al Masjid an Nabawi)’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웅장한 모스크로 향하는 대로가 눈에 들어온다. 엄숙하고 경건할 것 같았던 모스크 앞 풍경은 예상과 크게 달랐다.
아랍식 전통 복장을 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이흐람(이슬람 순례자 복장)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청바지에 면티 같은 편안한 차림을 한 사람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분위기도 축제 분위기에 가까웠다. 중동지역은 물론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무슬림들은 메디나 방문을 즐기고 있었다.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사진 촬영 지점도 마련돼 있었고 거리의 상점가에서는 기념품은 물론 간단한 먹거리도 팔고 있었다. 흔한 관광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스크로 이동할 때까지 기자에게 무슬림이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기념 촬영을 부탁하며 휴대폰을 건네도 모두들 흔쾌히 응해 주었다.
▲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 예언자의 모스크 내에 예언자 무함마드의 관이 안치된 묘실 앞의 모습. 기도하는 사람, 고향 친지와 영상통화하는 사람 등으로 북적인다. <비즈니즈포스트> |
예언자의 모스크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후계자인 1, 2대 칼리파 아부 바르크, 우마르 등 3인의 묘가 있다. 이들의 관이 안치된 묘실은 성지의 핵심 장소지만 여기까지도 아무런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묘실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거나 고향 친지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등 많은 사람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묘실 앞에 몰려 있다보니 군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밀며 밖으로 내보내기는 했으나 기자를 향해 특별한 경계나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메디나의 핵심 장소까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관람을 마치고 나니 안도감과 함께 대체 왜 그렇게 긴장을 했었는지 약간의 허무감마저 들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중동, 이슬람, 사우디아라비아
중동이라는 모호한 지역적 개념으로 국제뉴스를 통해서만 피상적으로 상상한 모습은 직접 경험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진짜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많을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 출장은 내내 편견과 선입견이 깨지는 경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마침 한국과 인연이 많은 국가다. 한국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인프라를 건설해 주면서 외화를 벌었고 이때 벌어들인 돈으로 경제 성장의 밑거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과거 한국 근로자들이 보여준 성실한 모습을 부모 세대의 말을 통해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고 한류 콘텐츠를 즐기는 등 한국을 향한 친근감을 지니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달 한국을 방문해 “사우디의 국가발전 전략인 '비전 2030' 중점 협력 국가인 한국과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 협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고 발언한 것도 결코 저절로 이뤄진 일이 아니다.
▲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해안가에서 나들이객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실제로 기자가 제다, 메디나에 머물면서 현지 사람들과 대화 중에 한국에서 왔다고 밝히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을 하거나 크고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떤가.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전히 중동 어딘가, 이슬람이라는 낯설고 위험한 종교가 지배하는 국가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살펴보면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서구권에는 여전히 한국, 중국, 일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위험한 지역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한국인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고국의 가족들이 연락해 전쟁 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스레 안부를 묻는다는 이야기도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그런 서구권 사람들의 시선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과연 우리는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무슬림과 20여 개 국가가 모여 있는 중동지역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나.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이 보여준 수많은 미소와 친절이 기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이상호 기자
▲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의 모습. 한국에서는 대체로 중동 지역과 관련해 부정적 뉴스에 실린 사진과 영상으로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