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K-푸드의 세계화를 위한 해외출장으로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불출석 사유서에 적힌 내용이다.
▲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K푸드 세계화를 위한 해외출장을 내세워 국정감사에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
허 회장은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국제제과제빵박람회’(IBA) 참석을 이유로 들었다.
오너들의 불출석 사유서 제출은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해외출장이 필요하면 가는 것이 맞다. 기업 회장이 열심히 일을 하겠다는 데 뭐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소비자들이 지금 SPC그룹에 바라는 것이 과연 ‘K-푸드의 세계화’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SPC그룹에서는 지난해부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0월까지 근로자가 죽거나 다친 사고만 5건이다. 2명은 사망했고 3명은 손가락을 다쳤다.
올해에만 1명이 죽고 2명이 다쳤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허 회장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다.
허 회장의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은 국회의원들만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허 회장의 불출석 관련 글에 ‘기본도 못 지키면서 무슨 세계화냐’ ‘빵값 때문에 국감 부른거면 이해하겠는데 노동자 사망 이슈를 무시하는거냐’ ‘국민을 도대체 뭐로 보는거냐’ 등 비판하는 의견이 많이 올라왔다.
지난해 ‘SPC 제품 불매운동’을 겪은 SPC그룹으로서는 여론을 신경쓸 수 밖에 없다.
지난해 10월15일 SPC그룹 계열사인 SPL의 경기도 평택시 소재 제빵공장에서는 여성 직원 A씨가 소스 배합기에 몸이 끼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빵공장에서는 사고가 일어난 10월15일 밤 작업을 재개했고 그날 생산된 빵 4만 개가 전부 유통됐다. ‘피에 젖은 빵’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허 회장은 사고 발생 6일 후 대국민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향후 3년 동안 모두 1천억 원을 투입해 안전성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23일에는 SPC그룹 계열사인 샤니의 경기도 성남시 소재 제빵공장에서 근로자 B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쪽 집게손가락이 끼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8일, 허 회장이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한지 이틀 만에 발생한 사고였다.
끼임 사망사고와 함께 SPC 제품 불매운동이 폭발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허 회장이 ‘K-푸드 세계화’를 이유로 국정감사에 불출석하기로 하면서 비판 여론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고 있다.
문제는 비판 여론이 커질수록 그 피해는 가맹점주들이 고스란히 받는다는 점이다.
SPC그룹은 계열사로 파리크라상, 비알코리아 등을 갖고 있다. 파리크라상은 파리바게뜨를, 비알코리아는 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가맹점 수를 합치면 6천여 개가 넘는다.
지난해 불매운동이 한창일 당시 프랜차이즈업계에서는 파리바게뜨 매출이 2021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0% 이상 감소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SPC그룹이 직영점만 운영한다면 불매운동으로 인한 매출 감소는 SPC그룹의 손해로만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SPC그룹은 대표적인 브랜드로만 따져도 6천여 명이 넘는 가맹점주와 함께 하고 있다.
허 회장이 국회와 여론은 무시한 채 해외출장을 택한 것이 더욱 아쉬워지는 지점이다.
▲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국정감사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한 장의 ‘약과’ 사진을 첨부했다. |
허 회장은 국정감사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한 장의 ‘약과’ 사진을 첨부했다.
SPC삼립 약과가 글로벌 식품박람회 ‘아누가’에서 ‘이노베이션쇼’를 수상했다는 것이다. 7900개 후보 가운데 68개만 선정돼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이 뜨겁다고 했다.
이노베이션. 혁신.
지금 SPC그룹에게 필요한 것은 약과를 통한 혁신이 아니라 사업장 안전에 있어서의 혁신이 아닐까.
허 회장은 국정감사 불출석 사유서에 SPC그룹을 총괄하는 황재복 대표이사가 국회에 대신 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12일 진행된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도 이강섭 샤니 대표이사 사장이 출석했다.
더 이상 다른 대표이사들 뒤로 숨을 때가 아니다.
허 회장은 지난해 대국민 사과 때도 질의응답 시간 없이 준비된 사과문만 읽고 들어갔다. 국민은 허 회장이 직접 답변하는 모습을 원하고 있다.
허 회장이 직접 국회에 출석해 답변할 날을 기다려본다. 그를 계기로 SPC그룹이 노동자는 물론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진짜 이노베이션을 통해서 말이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