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 역대 회장 가운데 관료 출신이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이어간 적은 한 번도 없다.
2001년 출범해 2014년 사라진 옛 우리금융지주를 포함해 4대 금융지주의 역대 관료 출신 회장은 박병원 전 우리금융 회장과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 등 2명인데 두 명 모두 1년 남짓 회장을 하고 물러났다.
4대 금융지주에서는 처음부터 외부에서 온 회장이 연임을 한 적도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고려대학교 총장 출신인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은 연임 가능성이 나왔으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스스로 물러났다.
현직인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회계사 출신으로 연임에 두 번 성공했으나 회장에 오르기 전 KB국민은행 부행장, KB금융지주 최고재무관리자(CFO) 등을 거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벽한 외부인사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현재 4대 금융지주 CEO(대표이사) 가운데 유일한 관료 출신 회장이다. 11월 KB금융 회장이 바뀌면 유일한 외부 출신 CEO로 남게 된다.
임 회장은 올해 3월 회장에 올라 임기가 2026년 3월까지다. 이에 따라 연임 여부는 앞으로 약 3년 뒤 결정되는데 이번 연말인사 부회장직 신설 여부는 이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현재 KB금융과 하나금융은 부회장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은 부회장을 두지 않고 있다.
금융지주 부회장은 그룹의 2인자로 회장을 보좌하는 동시에 경영승계와 연관이 깊어 현재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임 회장이 임기 1년을 마치는 상황에서 부회장을 두지 않는다면 남은 임기 안정적 경영승계보다 직할체제를 통한 성과내기에 집중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임 회장이 내년 말 인사에서 부회장직을 신설할 수 있지만 임기 만료까지 시간이 1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정적 승계 프로그램을 구축했다고 보기 힘들 수 있다.
다만 임 회장이 부회장직 외에 다른 방식으로 경영승계 준비를 고민할 가능성도 있다.
임 회장은 취임 이후 은행장 오디션으로 불린 경쟁 방식의 선임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은행장을 뽑았다.
금융권에서는 각 금융지주가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획일화한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분들이 지배구조가 정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각 회사의 상황, 업종의 특성, 문화적 차이 이런 것 때문에 획일적 방법은 쉽지 않다”며 “각자의 체질에 맞는 방법을 개발하고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 회장도 투명한 지배구조를 위한 경영승계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 (왼쪽부터) 강신국 우리은행 기업투자금융부문장, 박완식 우리카드 대표, 임종룡 회장, 조병규 은행장 최종 후보자, 이석태 우리은행 국내영업부문장이 5월26일 은행장 선임 프로그램 종료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새로운 기업문화’를 경영 아젠다 1순위로 제시하며 경영승계 절차 등에 과감한 혁신을 약속했다.
임 회장은 “특히 인사 평가 및 연수 제도, 내부통제, 사무처리 과정, 경영승계 절차 등 조직에 부족한 점이 있거나 잘못된 관행이 있는 분야는 과감한 혁신을 지속하겠다”며 “이를 통해 고객, 주주, 시장뿐 아니라 임직원들에게도 깊은 신뢰를 받는 금융그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정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지속 강조하는 점도 안정적 경영승계 프로그램 마련을 향한 임 회장의 고민 강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임 회장은 금융위원장까지 지낸 관료 출신답게 취임 이후 상생금융 등 정부의 주요 금융정책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 회장은 6월 말 취임 100일을 맞아 그룹 전 직원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공정과 소통에 대한 문제의식을 저도 잘 알고 있다”며 “새로운 방식의 은행장 선임을 우려 속에서 잘 진행한 것처럼 앞으로 그룹의 다른 제도들 역시 하나씩 공정하고 투명하게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