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올해 신세계그룹 정기 임원인사의 키워드는 한마디로 ‘신상필벌’이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앞으로도 성과주의를 통한 신상필벌로 조직개편에 힘을 줄 것으로 보인다.
▲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앞으로도 성과주의를 통한 조직개편에 힘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일 신세계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신세계그룹 인사는 이 회장의 승인이 있어야 최종 결정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이마트쪽과 신세계쪽 인사를 각각 정하긴 하지만 결국 이 회장의 의중이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일 신세계그룹이 진행한 2024년도 정기 임원인사에 대해 ‘신상필벌’이라는 의례적 평가들이 나오지만 사실상 ‘신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무나 상무로 승진한 임원들은 있지만 부사장이나 사장으로 승진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지난해 인사에서는 사장과 부사장으로 승진한 임원이 각각 1명씩 있었다.
이 회장이 인사 원칙에 있어서 철저한 성과주의 기조를 정한 것으로 읽힌다.
대표적 사례는
손영식 신세계 대표이사 사장이다.
손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박주형 신세계센트럴시티 대표이사에게 신세계 대표이사 자리를 내줬다.
손 사장의 해임은 올해 신세계그룹 인사에서 가장 의외라는 평가를 받는다.
신세계그룹이 고문으로 물러났던 손 사장을 신세계 대표이사로 불러들인지 2년밖에 되지 않아서다. 손 사장은 지난해 신세계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부사장을 단 지 7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손 사장은 신세계 대표로 경영에 복귀한 뒤 1년도 안 돼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신세계는 지난해에도 역대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1년 만에 갈아치웠고 백화점부문은 올해 2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매출 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부진한 신세계 영업이익이 손 사장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신세계는 올해 상반기 별도기준으로 영업이익 1248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26.5%가 줄었다.
신세계그룹의 다른 한 축인 이마트 대표이사도 4년 만에 바뀌었다.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 겸 SSG닷컴 대표이사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신 한채양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이사가 이마트를 이끈다.
강 사장이 이번 인사에서 유임될 것인지에 대해 유통업계 안팎으로 관심이 높았다.
최근 이마트 실적만 놓고 보면 해임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만 강 사장이 ‘
정용진 의 남자’로 불릴 만큼 정 부회장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기에 유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강 사장은 지난해 인사에서 부진한 이마트 실적에도 불구하고 정 부회장으로부터 한 번 더 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해임을 피해가지 못하면서
이명희 회장 선에서 결정된 인사가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그룹의 양 축인 이마트와 신세계 대표이사가 동시에 해임되고 필벌에 방점을 찍은 인사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빈자리가 많아지게 됐다.
이명희 회장은 빈자리 하나마다 새 인물을 한 명씩 채우는 ‘물갈이’보다는 겸직 대표를 통해 대표단 규모를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번 인사에서 겸직 대표를 맡게 된 임원만 모두 4명이다.
▲ 신세계그룹이 20일 2024년도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박주형 신세계 대표이사 겸 신세계센트럴시티 대표이사(왼쪽)와 한채양 이마트 대표이사 겸 이마트에브리데이 대표이사 겸 이마트24 대표이사. <신세계그룹>
박주형 대표는 신세계와 신세계센트럴시티 대표이사를, 송현석 대표는 신세계푸드와 신세계엘앤비를 겸직한다.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이사는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까지 맡는다.
한채양 대표이사는 오프라인 유통사업부인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등 무려 3개 계열사를 이끈다.
실적에 있어서 그룹 전체적으로 힘든 상황인 만큼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는 모험보다는 검증된 인물들에게 겸직을 맡기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박주형 대표는 2017년부터 신세계센트럴시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신세계센트럴시티는 2017 933억 원, 2018년 640억 원, 2019년 738억 원, 2020년 406억 원, 2021년 525억 원, 2022년 634억 원의 영업이익을 각각 기록했다.
감소세를 보이던 영업이익이 2021년부터 큰 폭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무려 39.3% 증가한 305억 원을 기록했다.
신세계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부진을 겪은 만큼 박주형 대표에게 수익성 개선이라는 임무를 맡긴 것으로 파악된다.
오프라인 유통사업부 3사를 맡게 된 한채양 대표도 마찬가지다. 한 대표는 2020년부터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이사를 맡았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연결기준으로 2020년과 2021년 각각 영업손실 706억 원, 493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2년 영업이익 222억 원을 거두며 흑자로 돌아섰다. 호텔업에 있어서 코로나19 상황이라는 특수성이 있음을 감안해도 의미있는 성과다.
영업이익에 있어서 반등의 기회를 만들지 못했던 이마트의 대표이사로는 제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왼쪽부터) 송현석 신세계푸드 대표이사 겸 신세계엘앤비 대표이사,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이사 겸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이사, 이석구 신세계라이브쇼핑 대표이사. <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은 겸직 대표가 늘어나면서 계열사 사이의 시너지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특히 현재 스무디킹코리아 대표이사도 맡고 있는 송현석 대표를 신세계엘앤비에 배치해 푸드와 음료, 주류사업의 시너지를 노린 다. 신세계엘엔비는 신세계그룹에서 주류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새로운 대표이사 운영구조도 도입했다.
신세계그룹은 ‘리테일 통합클러스터’를 신설하고 산하에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신세계프라퍼티, SSG닷컴, 지마켓을 편제시켰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리테일 통합클러스터라는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진다기보다 여러 계열사들이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서 관심을 받는 또 한 명의 인물은 신세계라이브쇼핑 대표이사로 내정된
이석구 신성장추진위원회 대표다.
이명희 회장은 1년 만에 신세계라이브쇼핑 대표를 바꿨다.
이석구 대표는 ‘신세계그룹 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국내 10대 그룹 계열사 최고령 사장’, ‘스타벅스 대표 11년’, ‘트렌드세터’ 등 여러 수식어를 얻었다.
1949년생임에도 트렌드세터로 불리기도 한다.
2007년 12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약 11년 동안 스타벅스를 이끌었는데 당시 다양한 시도들로 스타벅스를 탈바꿈시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스타벅스 대표를 맡고 있던 시절 스타벅스 매장에 전기 콘센트와 무료 와이파이가 설치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 시도여서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카공족’이란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모바일 주문 시스템인 ‘사이렌오더’는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 가운데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돼 미국 본사에 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이 대표가 스타벅스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로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다.
신세계그룹은 이 대표가 ‘스타벅스 성공신화 DNA’를 통해 신세계라이브쇼핑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놓길 기대하고 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