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중국 조선사들이 메탄올 선박을 중심으로 친환경선박 분야에서도 국내 조선사들을 가파르게 추격하고 있다.
정기선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은 경쟁사들에 앞서 선점해온 메탄올 선박 시장 지위를 지키기 위해 고객사인 선사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엔진 기술력 향상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 정기선 사장이 14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2100TEU(티이유)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 운반선 '로라 머스크(Laura Maersk)호'의 명명식에서 로버트 머스크 우글라 의장과 환담을 나눈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HD현대 >
1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중국 조선사들이 최근 자국 내 메탄올 공급망과 해운 영향력을 기반으로 메탄올 선박 분야에서 다량의 일감을 확보하고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국영선사 CMES는 세계 최초로 메탄올 이중연료 추진 VLCC(초대형원유운반선)을 최근 발주했다. 계약 상대는 중국 다롄조선으로 이번에 건조하게 될 선박의 크기는 30만6천 DWT(순수화물적재톤수) 규모이며 계약금액은 약 1억750만 달러에 이른다.
또 다른 중국 국영선사인 COSCO는 2022년 자국 조선사들에 척당 2억3900만 달러로 12척의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발주한 바 있다. COSCO는 글로벌 선복량 기준으로 점유율 10% 안팎을 차지하는 세계 4위 해운사다.
중국 조선사들로서는 자국 내 발주를 통해 메탄올 선박시장에서 건조역량과 경험, 시장 점유율 등을 늘릴 수 있다는 이점을 얻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중국 조선사들은 중국 외 선사들로부터도 메탄올 선박 수주를 늘려나가고 있다. 중국 양쯔쟝조선은 올해 6월 덴마크 선사 머스크가 발주한 9천 TEU급 메탄올 선박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SWS는 최근 프랑스 선사 CMA CGA로부터 9200TEU급 8척의 일감을 따냈다.
중국이 메탄올 공급망을 탄탄히 갖춰놓고 있는 만큼 중국 조선사들이 자국 내 공급망 역량을 글로벌 선사들의 일감을 확보하는 데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머스크는 연료용 친환경 메탄올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데보에너지, CIMC, 그린테크놀로지 등과 제휴하고 있다.
중국 조선산업의 성장 궤적은 자국 내 수요, 정부의 지원, 저가 경쟁력을 무기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왔다는 점에서 중국 내 여타 산업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0년대에는 한국 조선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중국 조선사들에 대개 뒤처지고 있다.
아직까지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는 한국 조선사들이 우위를 차지하며 중국 조선사들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다만 최근 메탄올 선박 분야에서 보여주고 있는 중국 조선소들의 가파른 추격세를 보면 국내 조선사들이 안심하고 있을 형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사들의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어나며 최근 발주량이 급증하고 있는 메탄올 선박을 둘러싼 수주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메탄올은 기존 벙커C유 등 선박 연료와 비교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감축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특히 황산화물(SOx) 배출량이 사실상 없고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은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런 점 때문에 선사들은 해양환경규제가 날로 강화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메탄올추진선 도입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HD한국조선해양이 메탄올 선박 시장에서 객관적 전력이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HD한국조선해양은 메탄올 추진선을 최초로 건조한 데다 세계적으로 발주된 물량 가운데 가장 많은 43척을 수주하는 등 높은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다만 정기선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으로서도 치열한 경쟁환경을 맞게 된 만큼 메탄올 선박을 비롯한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더 기민한 대응에 나설 필요성이 커졌다.
정 사장은 글로벌 선사들을 만나 HD한국조선해양의 메탄올 추진선을 비롯한 친환경 선박 기술력을 홍보하는 일에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정 사장은 올해 6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조선해양박람회 '노르시핑(Nor-shipping)2023'에 참석한 데 이어 이달 초 열린 세계 최대 가스에너지 산업전시회인 가스텍(Gastech)에도 참석했다. 이런 글로벌 행사들을 통해 선사, 선급 등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친환경 선박 기술을 소개했다.
▲ HD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 현대미포조선이 건조한 세계 최초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로라 머스크호’. < HD현대 >
정 사장은 14일(현지시각)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2100TEU(티이유)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 운반선 '로라 머스크(Laura Maersk)호'의 명명식에도 참석해 친환경 선박 선점을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자리에는 로버트 머스크 우글라(Robert Maersk Uggla) 머스크(로라 머스크 선주사) 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유럽연합)집행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정 사장은 명명식 전날인 13일 머스크 본사에서 머스크 의장을 만나 미래 협력 증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정 사장은 이 자리에서 "로라 머스크호가 탄소중립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기술개발로 그린오션의 실현을 앞당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메탄올 선박 기술력을 고도화하며 초격차 유지에도 힘쓰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6월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3세대 메탄올 저인화점 연료공급 시스템(LFSS)에 대한 기본설계 인증을 획득했다. 메탄올 LFSS는 메탄올 추진선에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시스템으로 메탄올 연료공급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정 사장은 메탄올 선박 경쟁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엔진 기술력을 강화하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엔진은 전체 선가의 10%에 해당하는 만큼 단일 기자재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친환경 선박 발주 증가와 함께 친환경 엔진 수요도 꾸준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엔진 사업을 하는 STX중공업 인수를 결정했다. 앞으로 HD현대중공업(HD한국조선해양 자회사)의 엔진사업부가 보유한 엔진 기술과 STX중공업 인수를 통해 확보하게 될 엔진 기술을 접목해 친환경 엔진 수요에 부응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이 보유한 엔진 기술력은 메탄올을 비롯한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중국과 격차를 유지할 핵심 경쟁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HD한국조선해양의 엔진 기술력은 현재도 중국기업들과 격차가 크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메탄올 추진선의 핵심이 되는 엔진 기술력은 HD한국조선해양이 월등히 앞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실제로 중국 조선사들이 국내 선박용엔진생산업체에서 제작한 메탄올 추진 엔진을 납품받아 선박을 건조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