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발머(사진 왼쪽)와 빌 게이츠가 2012년 11월 28일 마이크로소프트 주주총회에서 함께 있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조직의 리더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많은 답이 있겠지만 사실 이 질문은 안에 이미 답을 내포하고 있는 우문이다.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조직 안에 있는 사람을 전제하고 역할도 딱 ‘리더’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 안에 뻔히 숨어 있는 답을 찾으면 이렇다. 조직은 우선 사람들로 구성돼 있는 체계화된 집단을 말한다. 때문에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실패와 성공이란 결국 사람 때문이다.
리더는 누구인가?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그들과 함께 성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리더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결정적 지점은 리더가 사람들과 성과적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는데 성공했느냐 여부일 수밖에 없다.
리더가 조직과 성과적 관계를 얼마나 잘 맺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가 이른바 '분신'의 존재 여부다. 분신이란 자신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어쩌면 나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해 주는 사람, 그러면서도 나를 뛰어 넘지는 않는 최고의 조력자를 말한다.
리더가 전후좌우를 커버하는 시야와 동시에 모든 일을 처리하는 다족류 괴물이 아니라면 리더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분신의 존재는 그가 얼마나 인재를 알아보고, 곁에 두고, 그들과 성과를 만들어 가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빌 게이츠가 스티브 발머를 만났을 때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에게는 스티브 발머라는 친구가 있었다. 세계 최고 갑부 중 한 사람으로 현재 미국 프로농구 NBA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주인, 구단주가 된 사람이 바로 그다.
1980년 마이크로소프트 30호 사원으로 입사한 발머는 20여 년 동안 게이츠를 최근 거리에서 보좌하면서 직원 수 30여 명, 연 매출 1천만 달러 소기업에 불과했던 마이크로소프트를 직원 5만여 명, 매출 2백억 달러의 거대 기업으로 키워 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2000년에서 2014년까지 15년간 사장으로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끈 명예와 마이크로소프트 지분 4%, 자산 1천억 달러의 부를 동시에 거머쥐면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샐러리맨'으로 기록됐다.
게이츠와 발머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같이 하던 친구였는데 사업 기회를 포착했다고 생각한 게이츠가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의 길로 들어섰고 스티브는 그 이후로도 스탠퍼드대학교 MBA에 입학하는 등 코스를 밟다가 게이츠와 합류했다.
둘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게이츠가 불가사의한 직관력을 자랑하는 천재적인 사람이었다면 발머는 196cm 키, 근육질 체격과 술빛 얼굴빛에서 느껴지듯 매우 다혈질적인 행동주의자였다. 당연히 둘은 격렬하게 싸웠다.
발단은 인재영입이었다. 입사하자마자 발머는 누구든지 인재라고 느껴지면 즉시 예산 따위는 상관하지 말고 공격적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여 명에 불과했던 시절, 요구 수준이 1~2명이 아니었고 15~20명이었다.
게이츠가 폭발했다. "누구 망하는 꼴 보고 싶어?" 발머는 물러서지 않았다. 친구로서 게이츠와 한 집에 살았던 그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면 나는 회사를 나가겠다"고 소리소리 고함을 쳐 놓고 짐 싸 들고 나와 버렸다. 다행히 게이츠는 큰 사람이었다.
친구로 만나기는 했지만 더 이상 친구는 아닌 부하직원 발머의 서슬 퍼런 협박에 가까운 항명을 결국 받아 주었다. 결과론적으로는 발머의 말이 맞았다.
'황금 수갑' 스톡옵션을 무기로 공격적으로 채용하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재가 속속 모여 들었고 이들의 힘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 크고 작은 위기를 넘어서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헝가리 출신의 천재적인 프로그래머 찰스 시모나이, 시모나이의 친구 리처드 브로디 등이 이 때 영입된 사람들이다.
발머는 게이츠의 해결사이기도 했다. 게이츠는 비전을 제시하고 전략을 짜기는 했지만 신경질과 고집을 앞세울 뿐 흙탕물 뒤집어쓰며 앞에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게이츠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발머였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북한식 표어처럼 게이츠가 결정하면 발머가 나서 해치웠다.
독하기로 따지면 게이츠도 대단했지만 그걸 해결하는 발머는 경쟁자에게 저승사자 격이었다. 경쟁사 노벨의 CEO였던 레이 누르다가 남긴 평이 인상적이다. "한 사람이 천국을 약속하는 사이에 다른 한 사람은 무덤에 파묻을 준비를 한다'. 좋은 얘기는 게이츠가, 나쁜 행동은 발머가, 두 사람의 2인3각 호흡은 환상적이었다.
전략가 하우, 장수형 팔리가 만든 위대한 대통령
1932년부터 1945년까지 4선을 거치며 12년 이상 미국의 대통령으로 재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1882-1945)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1932년 11월 제32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루즈벨트가 공식 석상에서 선거 승리의 최대 공신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다. 루이 하우(Louis Howe, 1871-1936)와 제임스 팔리(James Farley, 1888-1976). 하우는 루즈벨트가 영입한 사람이었고 팔리는 하우가 발탁한 사람이었다.
루즈벨트는 하우를 1911년 민주당 뉴욕주 상원의원 시절 알았다. 당시 루즈벨트는 잘 나가는 귀족 출신 청년 정치인이었고 하우는 그런 정치인들을 취재하는 뉴욕헤럴드지의 민완 기자였다.
하우의 눈에 루즈벨트는 17세기 후반 뉴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지주 집안 태생으로 철도회사 부사장을 아버지로 둔 금수저 출신이면서도 민주당 보수 태머니파 세력에 반대하는 '어린 말썽꾸러기' 20인 중의 하나였고 '사향뒤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뉴스 냄새 맡는 데는 귀재 소리 듣던 하우를 루즈벨트도 눈여겨보고 있었다.
인연은 1912년 루즈벨트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장티푸스에 걸려 쓰러졌을 때 이어졌다. 선거를 포기해야 하나를 고민하던 루즈벨트의 머릿속에 알고 지내던 하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디애나 시골 출신, 키 작고 얼굴에 깊은 상처까지 있어 결코 인상이 좋다고 할 수 없었고 심한 천식증을 앓고 있는 주제에 담배를 물고 살아 늘 콜록거렸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하던 사람이었다.
병상에 누운 루즈벨트가 하우에게 선거를 부탁했다. 결과는 황당하게 나왔다. 아파서 얼굴도 보여 주지 못하는 후보에게 표가 쏟아져 직전 선거보다 더 큰 표차로 이겼다. 루즈벨트 나이 30세, 하우 나이 41세 때의 일이다. 하우가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보냈다. '존경하는 미래의 대통령께'
성향으로 보면 두 사람은 너무 달랐다. 루즈벨트는 쾌활하고 낙천적이었다. 작은 문제보다는 큰 문제에 집중했으며 대중연설 방법 개발에 집중했다. 하우는 정반대였다. 목소리는 낮고 허스키했으며 매사 냉소적이고 뒤집어 생각하는 것이 주특기였다.
낙천적인 보스가 나이브하게 행동부터 하려고 하면 'No'를 외치며 막아섰다. 별명이 '미스터 노맨'이었다. 예리한 통찰력으로 정세를 분석한 후 지금 해야 할 행동은 이것이고, 가야 할 곳은 저 곳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주장했다.
루즈벨트를 설득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극언도 서슴치 않았다. "멍청이! 그건 안 돼. 분명히 말하는데, 절대로 안 돼. 그래도 고집을 부리겠다면 당신은 정말 지독한 바보야. 평생 후회하면서 살 거야. 그렇게 해 봐, 이 돼지머리야...."
하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루즈벨트는 하우를 내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치기는커녕 언제나 곁에 두고 그의 얘기를 들었다. 그의 집요한 No를 극복하다 보면 더 좋은 정책과 방법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우의 많은 No를 통과한 정책은 자신 있게 추진해도 좋다는 보증수표 같은 것이었다.
둘은 함께 최대의 고비도 넘었다. 1921년 루즈벨트는 수영을 하다가 고열과 함께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일어 이후 두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장애인이 되었다. (당시 의사가 진단한 병명은 소아마비였는데, 후에 급성감염성다발신경염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알려졌다.)
루즈벨트의 나이 39세의 일이고, 하우의 나이 50세의 일이다. 정치 참모 나이 50세에 '존경하는 미래의 대통령'이 장애인이 되었다면 미래는 보나마나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우는 루즈벨트를 떠나지 않았다.
루즈벨트도 대단했다. "세상의 따뜻한 시선을 받을 수 있고 복잡한 정치행사에 안 나가도 되므로 장애인이 된 것은 대통령이 될 운명의 계시"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하우에게 루즈벨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좋아, 어디부터 시작할까?"
제임스 팔리는 하우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회심의 한 수로 뽑은 사람이었다. 팔리는 현장지휘 장수형 인물, 전략은 자기가 짠다고 하지만 현장은 다른 문제였다. 팔리는 사람 얼굴과 사람에 대한 정보라면 뭐든지 기억하는 특출한 재주가 있는 사람, '10만 명을 알고 있다'고 자칭하는 마당발, 수퍼 세일즈맨이었다.
골방에 틀어박혀 전국 모든 신문을 훑고 현황판에 핀을 꼽는 전략가 하우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미국을 바꿔 내고 싶은 꿈을 가진 정치인 루즈벨트, 그 길을 안내하는 노련한 전략가 하우, 이를 실행해 내는 팔리.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3인팀이 완성됐다.
분신을 만들어 내는 리더가 승리한다
결국 성과를 만들어 냈다. 1932년 루즈벨트 후보는 선거인단 531명 중 472명, 득표율 57.4%로 공화당 후버 후보에 706만여 표 차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제32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루즈벨트는 내리 4선을 하면서 미국을 대공황의 늪으로부터 구해내고 국민을 빈곤에서 구해냈으며 파시즘에 대항하는 국제연대를 이끌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우는 루즈벨트 당선 후 건강이 악화돼 1936년 숨을 거뒀고 루즈벨트는 1945년 심장마비로 재임 중 순직했다.
사람들은 루즈벨트를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하나로, 그를 이끌어 대통령으로 만든 하우를 '지상의 정령'으로 기억했다.
때로 뛰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탁월함을 무기로 성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의 성과는 그 만의 성과일 뿐 그가 이끄는 사람들의 성과는 아니다.
오히려 이때의 성과는 '도대체 왜 조직은 필요했을까'라는 질문을 만들어 낸다. 혼자 만들어 내도 될 만한 성과라면 애초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야 할 몫도 없었을 것인데, 그렇다면 조직은 왜 필요했을까?
성과를 원하는 리더가 이해해야 하는 단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가 리더인 단 하나의 이유는 그가 큰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며 큰 꿈이란 본질적으로 혼자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혼자서 이뤄낼 수 있다면 그 것은 큰 꿈이 아니며 큰 꿈이 아니라면 자신이 리더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 자신의 큰 꿈을 이해하고 돕는 분신 같은 조력자, 또 그들이 함께 이끄는 조직의 존재는 리더에게 필수적 필요조건이다. 조력자 없이 리더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반대로 지금 분신 같은 조력자를 얻는다면 리더는 이미 성공의 길로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 리더는 그릇이고 조력자는 그 안에 담긴 물이다. 물은 그릇만큼 담긴다.
사후 팬덤까지 있는 신과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지만 한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 광야를 헤맬 때가 있었다. 넥스트를 만들고 픽사에 참여하며 권토중래를 꿈꾸다 다시 애플의 CEO로 복귀하던 무렵, 그의 눈에 너무 부럽게 비치던 회사와 리더가 있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게이츠가 너무 부럽다. 게이츠는 자신의 분신들을 만들어 냈고, 그들이 계속 우리를 공격해 오고 있다." 진국영 커리어케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