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기업들이 '물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 보도가 나왔다. 사진은 지난 2021년 3월25일 대만 타이중시에 위치한 TSMC의 'Advanced Backend Fab 5' 생산설비에 급수차가 드나드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TSMC 등 세계 주요 반도체기업이 ‘물 부족’ 리스크에 직면했다. 반도체 생산설비가 위치한 지역에 기후변화로 가뭄이 빈번해져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수자원을 확보하는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증권사 모건스탠리는 투자자들도 반도체기업 주식을 매수할 때 안정적인 물 공급망을 확보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워터리스크가 주주들에게도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떠오른 셈이다.
5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세계 각 지역에서 가뭄 발생 사례가 늘어나며 물 부족 문제 해결이 글로벌 반도체기업의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첨단 반도체는 나노미터(㎚, 10억분의 1미터) 단위 미세공정을 활용하는 만큼 미세한 이물질에 민감하다. 따라서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이물질을 씻어내기 위해 일반 산업용수를 수 차례 거른 초순수(UPW)가 사용된다.
초순수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물이 필요하다. 가뭄으로 수자원 공급이 어려줘지면 반도체 생산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의 사례를 들어 반도체 기업의 물 부족 문제를 조명했다.
TSMC는 현재 대만에만 10여 곳의 반도체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차세대 기술인 2나노 미세공정 파운드리 공장도 다수 신설하고 있다.
대만은 2021년부터 장기간 가뭄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TSMC 공장이 위치한 지역에서 공업용수를 끌어다 쓰는 주요 수원지에 저장된 물이 부족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타이난과 가오슝 등 TSMC 반도체 생산설비가 밀집한 지역에 용수를 공급하는 난화저수지의 3월 수위는 유효 저수량의 41%에 불과했다.
TSMC는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 및 물 부족 등 문제를 고려해 전 세계로 반도체 생산 거점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설하는 400억 달러(약 52조9918억 원) 규모 반도체 생산단지가 대표적이다.
▲ TSMC와 인텔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생산설비가 집결한 애리조나주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거대 가뭄'을 겪고 있어 반도체 기업들은 물 부족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사진은 TSMC의 공식 링크드인 계정에 올라온 미국 애리조나주 반도체 생산설비의 8월19일 건설 현황. < TSMC > |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는 애리조나도 십수년 동안 가뭄이 이어지는 ‘거대 가뭄(Mega Drought)’을 겪으면서 일부 농민들이 농업용수로 사용할 물조차 부족한 상태라고 전했다.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반도체기업들이 충분한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투자 후보지를 찾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 날씨가 반도체 제조기업에 물 공급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투자자들이 반도체기업에 투자할 때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로 생산설비에 물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주요 증권사의 의견도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를 내고 “대만과 같은 물 부족 지역에 생산 설비가 집중한 반도체 기업에 투자할 때는 물 공급망을 장기적인 시각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전했다.
모건스탠리의 보고서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해 물 부족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는 전망도 포함됐다.
반도체 기업들은 한 번 사용한 초순수를 정화해 재사용하는 등 방식으로 물 부족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급증하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만큼의 물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 전기컴퓨터공학 부교수인 샤오리 렌은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애리조나의 반도체 기업들이 물을 재사용하고 있지만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반도체기업들이 충분한 양의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물 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지구 온난화와 같은 관점에서 인식하고 대비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렌 부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탄소 배출량과 비교하면 기업의 물 소비량과 관련한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며 “지속가능한 물 공급을 위해서는 기업들이 탄소 발자국을 줄였던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근호 기자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폭우와 가뭄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한반도에 몰아친 115년 이래 최악의 폭우로 포항제철소 고로는 사상 처음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운영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물이 너무 많아도, 부족해도 문제다.
인구 증가와 산업 활성화, 기후변화로 ‘워터리스크(water risk)’, 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산업 안보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워터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도체, 철강, 화학, 발전 등 주요 산업은 물론 국가와 지역경제도 위험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워터리스크 최신 동향과 함께 국내외 주요 기업과 물 관리 선진국의 리스크 관리 및 해법을 발굴해 보도한다. <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