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홈쇼핑(롯데홈쇼핑 운영사)이 안팎으로 혼란스럽다. 안에서는 2대주주와 갈등이, 밖에서는 송출수수료를 둘러싼 갈등이 우리홈쇼핑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김재겸 우리홈쇼핑 대표이사(사진)의 고민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우리홈쇼핑> |
[비즈니스포스트] 롯데홈쇼핑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안으로는 2대주주와 갈등을 겪고 밖으로는 유료방송사업자와 송출수수료 갈등에 치이고 있다.
얼마 전 새벽방송 금지 처분이라는 족쇄가 풀리면서 하반기 실적 회복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롯데홈쇼핑을 둘러싼 상황이 여전히 어지러워 보이는 이유다.
실적 반등의 임무를 안고 있는 김재겸 우리홈쇼핑(롯데홈쇼핑 운영사) 대표이사의 근심도 클 수밖에 없어 보인다.
◆ 우리홈쇼핑, 양평사옥 매입 놓고 2대주주 태광산업과 17년 해묵은 갈등 떠올라
28일 홈쇼핑업계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이 최근 안팎으로 시끄러운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롯데웰푸드의 서울 영등포구 양평사옥 매입을 놓고 17년이 넘은 해묵은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우리홈쇼핑 2대주주인 태광산업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우리홈쇼핑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본사 건물 및 토지 매입 계획과 관련한 이사회 결의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태광산업은 우리홈쇼핑 지분 27.99%를 보유한 2대주주다. 최대주주는 롯데쇼핑으로 지분 53.49%를 들고 있다. 대한화섬과 티시스 등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보유한 우리홈쇼핑 지분은 약 45%다.
태광산업은 “과도하게 비싼 금액으로 사옥을 매입하면 배임 행위에 해당할 수 있어 이사회 재개최를 요구하고 매입 계획 중단을 요청했지만 기존 방침을 철회하지 않아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태광산업이 제동을 건 우리홈쇼핑의 이사회 결의는 7월27일 열린 이사회에서 처리된 안건을 말한다.
우리홈쇼핑은 당시 이사회를 열고 롯데지주와 롯데웰푸드가 함께 보유하고 있던 양평사옥을 모두 2039억 원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에는 이 건물을 임차해 쓰고 있었는데 아예 건물을 사들여 임차 비용을 절감하기로 했다는 것이 우리홈쇼핑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이사회 결의가 롯데측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우리홈쇼핑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 기타비상무이사 3명, 사외이사 3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내이사 3명은 김재겸 대표이사와 강재준 우리홈쇼핑 TV본부장, 박재홍 우리홈쇼핑 마케팅본부장 등 롯데그룹 측 인물이다. 하지만 기타비상무이사 3명은 태광산업의 장근배 인사실장, 이명철 재무실장, 김종국 석유화학사업부 경영기획실장 등 태광산업 측 인물들이다.
사외이사 3명 가운데서도 2명은 롯데그룹 측 인물로, 1명은 태광산업 측 인물로 분류된다. 사실상 이사회 구성원 9명의 구도가 롯데그룹 5명 대 태광산업 4명인 셈이다.
그러나 7월27일 열렸던 이사회 결의는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당시 태광산업 인사뿐 아니라 태광산업 추천으로 우리홈쇼핑 이사회에 들어와 있는 사외이사 모두 우리홈쇼핑이 진행하는 양평사옥 안건에 찬성했다.
우리홈쇼핑이 양평사옥을 매입하면 임대료를 절감할 수 있을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부동산 자산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 태광산업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태광산업이 약 한 달 만에 입장을 정반대로 뒤집으면서 상황이 꼬이는 모양새다. 우리홈쇼핑도 태광산업의 180도 입장 변화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홈쇼핑 관계자는 “내부 직원들은 이사회가 열리기 한참 전부터 직접 자료를 가지고 이사들과 만나 안건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며 “이런 절차를 거쳐 통과된 안건을 갑자기 왜 없던 일로 하려는 것인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홈쇼핑업계에서는 이번 양평사옥 결의 건을 놓고 우리홈쇼핑을 둘러싼 롯데와 태광산업의 오랜 갈등이 재점화하는 모양새라고 보기도 한다.
롯데쇼핑은 2006년 7월 당시 매물로 나와있던 우리홈쇼핑을 인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존 2대주주인 태광산업이 롯데쇼핑의 우리홈쇼핑 인수를 반대하면서 갈등이 터져나왔다. 태광산업은 우리홈쇼핑이 롯데쇼핑에 인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홈쇼핑 방송 송출을 중단하는 등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쇼핑이 2006년 8월 우리홈쇼핑을 약 4400억 원에 인수하면서 태광산업의 반발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태광산업은 서울행정법원에 롯데쇼핑의 우리홈쇼핑 인수를 취소해달라고 소송도 냈지만 약 5년에 걸친 소송전 끝에 패소했다.
태광산업은 소송에서 진 뒤에도 우리홈쇼핑 이사회에 태광산업 측 인사를 선임하며 우리홈쇼핑 경영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롯데쇼핑이 우리홈쇼핑을 인수한 지 17년이나 됐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이름을 롯데홈쇼핑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도 태광산업의 존재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법인명을 바꾸려다가 태광산업이 반대하면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홈쇼핑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롯데홈쇼핑이 지난해 말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를 지원하려 사내유보금을 활용해 5천억 원의 자금을 지원하려고 했지만 1천억 원만 빌려주게 된 것도 태광산업의 반대 때문이었다.
우리홈쇼핑 관계자는 “태광산업의 입장과 별개로 양평사옥 매입 건은 예정대로 진행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우리홈쇼핑의 판매수수료 매출에서 송출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은 것으로 파악된다. 김재겸 대표이사는 결국 한 유료방송사업자를 대상으로 롯데홈쇼핑의 방송 송출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 롯데홈쇼핑 사옥. <우리홈쇼핑> |
◆ 송출수수료 갈등에는 ‘방송 중단’ 초강수 띄워, 김재겸 고민 너무 많다
안으로 2대주주와 갈등이 있다면 밖으로는 송출수수료 갈등이 급부상하고 있다.
사실 홈쇼핑업계가 유료방송사업자들과 송출수수료를 놓고 부딪힌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송출수수료는 홈쇼핑법인들이 IPTV나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등에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방송을 송출한 대가로 내는 돈이다. 각 채널을 사용하는 것을 놓고 일종의 자릿세를 지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료방송사업자들은 2012년부터 홈쇼핑기업에게 해마다 송출수수료를 올려 받고 있다. 2012년만 하더라도 8670억 원이던 TV홈쇼핑 송출수수료는 2022년 1조9065억 원까지 증가했다.
한국TV홈쇼핑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홈쇼핑기업들이 송출수수료로 내는 비용은 방송을 통해 내는 판매수수료 매출의 65%를 넘었다. 상품 판매를 통해 매출의 3분의 2를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내는 셈이다.
우리홈쇼핑도 판매수수료 매출의 60% 이상을 유료방송사업자에게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홈쇼핑업계는 이런 구조를 불합리하다고 보고 정부를 상대로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줄 것을 줄곧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각 개별사업자의 협상을 강제할 수 없다는 점 등 한계가 뚜렷해 여태껏 홈쇼핑업계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홈쇼핑은 최근 서울 강남권 유료방송사업자인 딜라이브강남케이블티브이를 대상으로 10월1일부터 방송 송출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최근 수개월 동안 지속적 협상을 통해 송출수수료를 낮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딜라이브강남케이블티브이의 입장에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홈쇼핑은 채널 번호가 낮아 단가가 높은 앞채널을 포기하고 수수료가 낮은 뒷채널로 옮기는 방안도 제시했지만 딜라이브강남케이블티브이에서는 이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홈쇼핑 관계자는 “송출수수료를 지급함에 따라 서울 강남권에서 보는 적자가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당장 매출에 타격은 있겠지만 오히려 수익성은 나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송출수수료를 놓고 유료방송사업자에게 더 이상 끌려다닐 수 없다는 판단이 방송 송출 중단이라는 강수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외형에는 타격을 받겠지만 상품을 팔아도 남는 게 없는 구조는 이번 기회에 끝내겠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홈쇼핑의 결정이 확정된 것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딜라이브강남케이블티비가 우리홈쇼핑을 상대로 송출수수료 협상을 다시 하자고 제안한다면 우리홈쇼핑의 방송 송출이 중단되지 않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우리홈쇼핑 안팎의 혼란은 김재겸 대표이사에게도 적지 않은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김재겸 대표는 2022년 12월 실시된 롯데그룹의 정기 임원인사에서 우리홈쇼핑의 새 수장에 선임됐다. 전체 홈쇼핑업계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홈쇼핑 역시 실적이 정체되거나 하락하고 있어 실적 반등의 쉽지 않은 과제를 받은 인사로 평가됐다.
우리홈쇼핑은 2022년 별도기준으로 매출 1조778억 원, 영업이익 784억 원을 냈다. 2021년보다 매출은 2.3%, 영업이익은 23.5% 줄어든 것이며 2013년 이후 9년 만에 최저 영업이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상반기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과거 홈쇼핑방송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임직원 금품 수수를 누락한 사건으로 지난해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새벽 시간대 방송 송출 금지 처분을 받아 2월부터 7월까지 오전 2시~8시 방송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홈쇼핑은 상반기에 매출 4620억 원, 영업이익 60억 원을 냈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매출은 15.6%, 영업이익은 90.1% 감소한 것이다.
8월부터 방송을 재개함에 따라 실적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받았지만 안팎의 갈등이 우리홈쇼핑에게 부담을 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김 대표는 1995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2002년 롯데호텔 정책본부 운영실을 거쳐 2009년 우리홈쇼핑 감사팀장을 맡으며 우리홈쇼핑에 합류했다.
경영기획팀장과 전략기획부문장, 마케팅부문장, 경영지원부문장, 지원본부장 등 우리홈쇼핑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홈쇼핑업계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