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철근누락’ 아파트 사태로 다시 한 번 고강도 혁신을 추진한다.
토지주택공사 스스로 외부의 힘을 빌린 조직권한과 규모의 축소 등 대대적 개혁안을 제시하면서 ‘배수의 진’을 친 가운데 일각에서는 조직 해체론까지 언급되고 있다.
▲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철근누락’ 아파트 사태로 다시 한 번 고강도 혁신을 추진한다.
2년 전 땅 투기 사태 때처럼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만 '땜방'하는 개혁이 되풀이될지, 아니면 토지주택공사가 정말 환골탈태의 토대를 마련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14일 정치권 안팎에서는 철근누락 아파트 사태와 관련해 드러난 토지주택공사 조직 내부의 전관예우 문제부터 허술한 보고까지 총체적 부실을 두고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전날 논평을 통해 “토지주택공사는 불과 2년 전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사태로 ‘해체 수준의 혁신’을 다짐했지만 어떤 자성과 변화도 없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기관이 됐다”며 “단지 자리에서 물러나 마무리될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13일 보도자료에서 “신도시 땅 투기 사건에 이어 최근 철근누락 ‘순살아파트’까지 토지주택공사 임직원의 공직기강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토지주택공사는 지금이라도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혁 의원실은 최근 6년 토지주택공사 임직원의 내부 징계건수가 299건이라는 자료도 발표했다.
정부도 토지주택공사의 부정부패와 부실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토지주택공사가 ‘철근누락’ 아파트 단지 5곳이 누락됐었다는 사실을 발표한 11일 밤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이한준 토지주택공사 사장에게 “토지주택공사 혁신과 건설 카르텔 혁파를 차질 없이 이행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 장관은 앞서 9일 “자정기능이 빠진 토지주택공사를 누가 신뢰하겠느냐”며 “이러고도 토지주택공사가 존립의 근거가 있느냐”고 질타했다.
상위기관인 국토부 수장이 직접 ‘존립 근거’까지 언급하면서 토지주택공사 쇄신의 강도가 예상보다 높아질 수도 있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2년 전 토지주택공사 땅 투기 사태 때 나왔던 주택청 설립방안 등을 거론하며 이번에야말로 조직 해체 수준의 고강도 개혁이 진행될 가능성도 점친다.
다만 여론과 업계의 반응을 살펴보면 토지주택공사의 ‘혁신’에 회의적 시선이 만만찮다.
3기 신도시 사업이 이제 본격화되고 있고 주택 250만 호 공급 등 정부 주택분야 정책사업이 한창인 시점에서 토지주택공사 조직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 축소마저도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토지주택공사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토지주택공사는 2009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통합돼 출범한 뒤 신규택지 공급, 신도시 등 토지개발, 공공주택 건설과 공급, 주거복지사업 등 각종 정책사업을 도맡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토지주택공사를 주택청으로 개편한다면 개발업무 등을 상당부분 민영화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에서도 만연한 부정부패 문제가 민간의 손에선 안심할 수 있을지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 2년 전 토지주택공사 임직원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사태 때도 주택청 설립방안부터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이원화 방안, 지주사를 설립하고 자회사를 두는 방안 등이 모두 강력하게 언급됐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토지주택공사를 향한 국민적 공분과 강력한 개혁 요구에 조직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2천여 명 규모의 인원감축과 문제가 된 신도시 택지개발 조사업무의 국토부 이관이라는 ‘땜질처방’이었다.
그나마 내놓은 정부의 혁신방안도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정부 혁신안에 따르면 토지주택공사는 2단계에 걸쳐 정원을 20% 감축하기로 했다. 토지주택공사는 2021년 6월7일 정부의 ‘LH혁신방안’ 발표 뒤 1년 동안 정원의 약 10%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관리소홀 책임 등을 물어 1·2급 고위직 106명을 포함 1064명이 토지주택공사를 떠났다.
다만 주택공급 확대 정책 등이 추진되면서 2단계 감축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토지주택공사 임직원 수는 2020년 9683명에서 2021년 8979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2022년과 2023년 2분기 말 기준으로는 각각 8951명, 8885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토지주택공사의 혁신이 시작도 전에 또 ‘공염불’이 되는 건 아닌지 불신의 시선부터 받는 이유다.
이한준 토지주택공사 사장이 이번 ‘철근누락’ 아파트 사태 원인으로 꼽은 조직의 비대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내부 통합 갈등, 전관예우 등 부정부패 등은 새롭게 드러난 문제가 아니다.
2009년 토지주택공사가 통합공사로 출범했을 때부터 14년을 되풀이해온 경영과제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공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도 마찬가지다.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초대 사장이 2009년 사장직에 내정된 뒤 “LH는 ‘집장사’, ‘땅장사’ 등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는 공기업으로 재탄생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토지주택공사는 당시 출발부터 ‘혁신안’을 내걸고 조직통합과 개혁을 위한 대규모 인사 및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토지주택공사는 공기업에서 처음으로 7단계 인사검증시스템을 도입해 1·2급 임원 75%를 물갈이하면서 혁신 의지를 보였다.
2대 이재영 사장도 2013년 6월 토지주택공사 사장에 취임하면서 기존 임원진 전원에게 사표를 받고 조직인력을 대거 교체하는 등 내부 쇄신을 추진했다.
이 사장은 토지주택공사 내부통합을 위해 이사 7명을 외부 임명 인사 1명과 주택공사 출신 3명, 토지공사 출신 3명으로 채워 비율을 맞췄다. 기존에는 이사 9명 가운데 5명이 주택공사 출신이었다.
기존 9개 본부를 5개 본부로 줄여 거대한 본사 조직도 손봤다.
변창흠 사장 시절인 2019년에는 사장 직속으로 건설안전을 위한 안전기획실을 만들고 각 지역본부에 안전관리센터를 신설하기도 했다.
다만 토지주택공사는 계속해서 시도해온 강도 높은 조직개편, 혁신안에도 각 정부 출범마다 정책사업을 위한 새로운 조직 신설과 확대 등으로 오히려 조직이 더 비대해졌다. 출범 당시 6천여 명이던 직원 수는 한 때 1만여 명 수준까지 불었다.
▲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11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전수조사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관예우 근절 등 부정부패 방지도 혁신안에서 항상 빠지지 않았지만 이번 ‘철근누락’ 아파트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토지주택공사는 이번에도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감리업체 선정 권한을 외부로 넘기는 방안을 비롯해 주요 기능 이관, 인력조정 진행 등 계획을 밝혔다. 임원 전원으로부터 사직서를 받아 쇄신을 위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한준 토지주택공사 사장은 11일 “이번 사태의 원인은 토지주택공사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로부터 비롯됐다”며 “내부적 힘으로만 정화하기엔 한계가 있어 경찰, 공정위, 감사원 조사결과 등을 반영해 인사조치를 할 것이고 구조조정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못된 관습과 안일한 업무태도 등을 반드시 개혁해 국민에 봉사하는 토지주택공사로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토지주택공사 안팎에 따르면 무량판구조 지하주차장 전단보강근(철근) 누락 아파트 일부가 내부 보고와 대외 발표에서 제외된 것과 관련 박철흥 부사장, 하승호 국민주거복지본부장, 신경철 국토도시개발본부장, 오영오 공정경영혁신본부장 등 임원 4명의 사직서가 수리돼 14일자로 의원면직됐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