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이 올해 들어 글로벌 주요 전기차 시장에서 판매에 고전하면서 목표 달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사진은 기아 EV9. <기아>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들어 글로벌 주요 전기차 시장에서 목표치에 못미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하이브리드차 판매에 밀려 전기차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는데다 미국과 유럽에선 전기차 판매 경쟁이 더욱 심화하고 있어 현대차그룹은 하반기 전기차 판매를 확대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현대차·기아 판매실적 IR자료를 종합하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전기차를 가장 많이 판매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애초 판매량 목표를 한참 밑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기아의 올해 전기차 합산 판매목표는 한국에서 18만5천 대, 미국에서 12만5천 대(기아는 캐나다 포함), 유럽에서 19만 3천 대 등이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실제 전기차 판매량은 한국에서 6만4690대, 미국에서 3만8457대, 유럽에서 7만1240대로 연간 판매 목표 대비 달성률은 각각 35.0%, 30.8%, 36.9%에 그쳤다.
올해 연간 글로벌 전기차 판매목표는 현대차 33만 대, 기아 25만8천 대다. 하지만 전기차 주요시장에서 판매실적이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면서 올 상반기 목표 달성률은 현대차 36%, 기아 38% 수준에 머물렀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를 놓고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연간 전기차 판매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며 "전기차 판매 부진은 보조금 축소에 따른 경쟁심화가 주요 배경으로 이는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주요시장별로 하반기 전기차 판매량을 크게 늘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 현대차 중장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 계획. <현대차> |
국내에선 하이브리드차가 올해 들어 큰 인기를 끌면서 전기차 증가율이 크게 꺾였다.
올해 1~7월 국내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전년동기와 비교해 39.6% 급증한 반면 전기차 판매량은 같은 기간 10% 증가하는데 그쳤다. 지난해에 2021년과 비교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판매 성장률은 각각 63.8%, 14.3%였다.
올 상반기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각각 17.4%, 18.6% 증가하는데 그쳤다.
올해 들어 국내 전기차 판매 기세가 주춤하는 것은 정부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축소,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충전비용 부담 증가, 충전 인프라 부족, 비싼 전기차 가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올해 연말까지 국내 출시가 예고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기아 레이 EV 단 한 차종 뿐이다. 레이 EV는 현재 국내에는 없는 경형 전기차로 상당한 수요를 끌어모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홀로 국내 전체 전기차 판매를 견인하기에는 힘이 부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가장 최근 국내에 출시된 기아 플래그십 전기차 EV9은 7월 1251대가 판매되며 출시 두 달 만에 전월(1334대)보다 판매량이 뒷걸음쳤다. 2021년 등장해 출시 첫 3개월 동안 판매량을 바짝 끌어올렸던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와는 정반대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선 최대 경쟁자 GM이 최근 출시한 블레이저 EV를 시작으로 이쿼녹스 EV, 콜로라도 EV 등 미국 정통 인기 내연기관차의 전기차 버전 신차 3종을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올 상반기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전기차 3만8457대를 판매해 판매량 2위에 올랐는데 GM(3만6322대)은 2135대의 차이로 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가운데 전기차가 차지한 비중은 5.8%로 아직 현지 전기차 시장이 개화기를 지나고 있다. 이에 미국에서는 전기차 신차를 내놓은 브랜드가 전기차 점유율을 크게 높이며 전체 전기차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쿼녹스 EV가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점유율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쿼녹스 EV의 시작가격은 약 3만 달러로 전기차 보조금을 고려하지 않아도 현대차 코나 EV, 기아 니로 EV보다도 낮은 가격을 형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또 실버라도 EV의 모티브가 된 내연기관 픽업트럭 실버라도는 지난해 미국 전체 연간 자동차 판매에서 2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많은 모델이다.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미국에서 반기기준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전년동기 대비 판매 증가율은 11.4%에 머물렀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전기차 판매 증가율인 59.2%의 5분의1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유럽도 첩첩산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유럽에서 전기차를 7만1240대 판매해 지난해 상반기보다 판매량이 8.6% 뒷걸음쳤다.
유럽에선 글로벌 1위 전기차업체 미국 테슬라와 유럽 정통의 강호인 폭스바겐그룹, 스텔란티스가 전기차 판매에서 선도적 위치를 놓치지 않고 있다. 더욱이 무역 갈등으로 미국 전기차시장 진출을 본격화하지 못한 중국 전기차업체들이 무서운 기세로 판매를 늘리고 있어 현지 전기차시장 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자동차시장 조사업체 자토다이내믹스에 따르면 자동차 지난해 볼보와 폴스타를 보유한 지리그룹과 중국 전기차업체들은 2021년보다 판매량을 각각 122%, 129% 늘리며 유럽 전기차 시장 성장률(29%)의 4배가 넘는 빠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또 올해 들어 글로벌 2위 전기차업체 중국 BYD도 유럽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어 유럽에서 중국 전기차의 기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전기차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경쟁이 격화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 부사장은 최근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몇 개 브랜드로 시작된 가격 경쟁이 워낙 치열하고 전기차 시장 자체가 도입기를 지나 대중화 시대에 들어가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유럽과 미국에 출시하는 전기차 신차는 EV9만 남았는데 각각 10월, 11월 출시할 계획을 세워 올해 전기차 판매 기여도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기아 중장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 계획. <기아> |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2020년 12월, 2021년 2월 실시한 각사의 2번째 인베스터데이에서부터 중장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목표를 공개해왔다.
2021년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시장에서 24만5174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그해 합산 목표치인 26만4천 대를 소폭 밑돌았지만 지난해에는 37만4963대로 목표치 30만 대를 25%나 초과달성한 바 있다.
올해 인베스터데이에서 현대차는 2030년 200만 대, 기아는 160만 대의 전기차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해 발표한 2030년 전기차 판매 목표치보다 현대차는 6.95%, 기아는 33% 상향한 수치다.
물론 현대차그룹이 2030년까지 장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 올해 판매 목표 달성 여부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긴 힘들다.
다만 해마다 2030년 전기차 판매 목표를 공격적으로 수정해 온 현대차그룹이 당장 올해 목표치부터 달성하지 못하면 전기차 전략과 관련한 시장 신뢰가 훼손돼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신윤철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이 앞으로 적정주가 재평가(멀티플 리레이팅)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일단 단기적 전기차(BEV) 판매목표 달성부터 전제돼야 한다"며 "그렇지 못하면 매년 CEO 인베스터데이를 통해 상향 제시하고 있는 중장기 전동화 전략에 대한 신뢰도가 갈수록 희석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