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송현동 48-9 일대 경복궁 바로 옆 축구장 5개, 서울공원 3배 규모인 3만6642㎡ 열린송현 녹지광장(송현동 부지)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빈 땅이었네?”
13일 종로구 송현동 48-9 일대 낮은 돌담이 둘러싸고 있는 3만6642㎡ 규모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보행로로 만들어진 길 양 옆에는 올망졸망한 색색의 꽃, 나무들과 함께 ‘나무 식재 중’이라는 안내판이 걸려있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가 서울 시민을 위한 정원이자 문화공원으로 변신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 서울 종로구 한복판 도로 하나 사이로 빌딩숲을 마주하고 있는 열린송현 녹지광장에는 넓은 보행로 양옆으로 꽃과 나무가 심어진 잔디광장이 조성돼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송현동 부지는 서울 도심 한복판 ‘금싸라기’ 입지에 있으면서도 높은 빌딩의 방해 없이 인왕산, 북악산 자락과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개발되지 않은 땅이다.
일반인들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송현동 부지 안쪽을 구경하기도 어려웠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은행이 송현동 부지에 사택을 건설하면서 4m에 이르는 높은 담을 쌓았고 광복 뒤에도 40여 년 동안 미국대사관 직원숙소 부지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송현동 부지는 이후 삼성생명, 대한항공 등으로 주인이 바뀌었지만 매번 규제 문턱에 가로막혀 20여 년을 더 개발되지 못하고 공터로 방치됐다.
그러다 2020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송현동 부지 공원화 계획을 발표했고 2021년 서울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대한항공이 3자 협의로 부지교환 계약을 맺으면서 공공부지로 돌아왔다.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과 안국역 사이 열린송현 녹지광장 곳곳에는 쉴 수 있는 벤치가 설치돼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를 확보한 뒤 대규모 녹지공간과
이건희기증관, 보행로, 휴게시설을 갖춘 시민의 공간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송현동 부지 개발사업은 2025년 본격화해 2028년
이건희기증관을 포함한 문화공원으로 개관한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서울시는 그 전에 우선 송현동 부지를 둘러싸고 있던 장벽 같은 높은 담을 철거하고 1만㎡ 규모 잔디광장과 코스모스와 백일홍 등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해 2022년 10월 일반 시민에 임시 개방했다.
서울시는 임시 개방기간에도 올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송현동 부지에서 진행하며 110년 만에 열린 송현동 부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요 전시장인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 설치된 12m 높이 '하늘소' 조형물. <비즈니스포스트> |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대표적이다.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2023년 9월부터 10월29일부터 열리는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요 전시장이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서울을 중심으로 세계 도시의 현안을 살피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행사다.
2017년 처음 시작해 2년마다 열리고 있다.
올해 비엔날레 주제는 ‘땅의 도시, 땅의 건축’으로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100년 후 미래를 그린다.
100여 년 동안 현대도시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자연환경이 훼손돼 온 서울의 모습과 친환경 고밀도시로 미래를 꿈꾸는 서울의 비전을 담는다.
송현동 부지는 도심 한복판 문화정원으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비엔날레 주제를 반영한 장소다.
▲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2022년 10월 임시개방하면서 기존 4m 높이 담장을 철거하고 낮은 돌담을 조성했다. <비즈니스포스트> |
100년 동안 닫혀진 땅이었던 송현동 부지는 서울의 앞으로 100년을 위한 열린 녹지공간이 되는 셈이다.
2028년
이건희기증관(가칭)까지 완공돼 문을 열면 인근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 등과 함께 문화예술공간으로 역할도 톡톡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건희기증관 건립사업은 7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잇다.
이건희기증관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기증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를 비롯해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김환기, 박수근 등 국내외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 2만3천여 점을 소장하게 된다.
이건희 선대회장 사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고향인 경남 의령부터 전국의 지자체가
이건희기증관을 두고 치열한 유치경쟁이 벌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년 11월 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비롯한 박물관, 미술관 등이 인근에 있고 경복궁, 북촌, 인사동 등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송현동 부지를 낙점했다.
송현동 부지는 조선시대 왕궁인 경복궁 왼쪽에 자리한 ‘소나무가 우거진 땅’으로 경복궁을 지키던 언덕이다. 솔고개, 솔재라고도 불렸다.
경복궁과 가까웠던 만큼 선조와 광해군 시절 왕실의 부마나 외척이 거주하는 공간이 됐고 그 뒤 고위관료들이 집을 짓고 살기도 했다.
1900년대에는 구한 말 형조판서를 지냈던 우국지사 김석진의 집도 이 송현동 부지에 있었다. 김석진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오적신의 처형을 주장했고 2010년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송현동 부지는 그 뒤 일제강점기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 일가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1920년대에는 조선식산은행 사택이 건설됐다.
▲ 높은 담장과 철문으로 외부와 단절됐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모습. <연합뉴스> |
송현동 부지가 품고 있는 이런 역사 때문에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송현동 부지를 공원이나 문화역사공간 등 공적용도로 활용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삼성그룹이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 송현동 부지를 매입해 현대미술관과 다목적 공연장 등 문화시설을 건립하려고 했지만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한 이유다.
삼성그룹은 1997년 삼성문화재단을 내세워 송현동 부지를 1400억 원에 매입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계약을 중도해지하고 그 뒤 2002년 삼성생명이 다시 송현동 부지를 매입하면서 의지를 보였지만 벽이 높았다.
삼성그룹에 이어 한진그룹도 2008년 삼성생명으로부터 송현동 부지를 매입해 7성급 한옥호텔을 지으려고 했지만 규제에 막혀 사업이 무산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올해 5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관 ‘하늘소’ 개장식에서도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비어있는 곳은 정말 찾기가 어렵다”며 “많은 시민이 즐길 수 있는
이건희기증관 외 어떤 시설도 송현동 부지에 들어올 수 없다는 원칙을 정해 끝까지 비워놓겠다는 다짐을 밝힌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앞서 2022년 4월 송현동 부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110년 동안 시민들이 들어올 수 없었던 금단의 땅이 이제는 시민이 마음놓고 이용하는 녹지공간으로 개방된다”며 “서울을 빌딩숲과 나무숲이 어우러진 녹지생태도심으로 만드는 꿈이 송현동에서 실현될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