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쿠팡의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어김없이 "성장하는 여정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쿠팡이 아직 장악하지 못한 분야가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
[비즈니스포스트] “우리는 성장하는 여정의 지극히 초기 단계에 있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쿠팡의 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늘 강조하는 말이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개척하지 못한 분야가 여전히 많다는 것을 상기하는 발언으로 여겨진다.
김 의장은 쿠팡의 성장을 견인할 다음 주자로 패션과 화장품, 그리고 대만 사업을 꼽고 있다.
김범석 의장은 한국 시각으로 9일 6시30분 열린 쿠팡의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쿠팡은 앞으로 3년 안에 5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대규모 소매 시장에서 한 자릿수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가 성장하는 여정의 얼마나 초기 단계에 있는지를 과장해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유통 시장의 규모는 약 602조 원이다. 이 가운데 쿠팡의 점유율은 약 4.4%에 불과한데 이는 신세계그룹(5.1%)와 비교해 여전히 뒤지는 것이다.
김 의장이 ‘여정의 초기 단계’라고 말한 것은 이런 전체 시장의 흐름을 염두에 놓고 한 말로 해석된다. 쿠팡의 영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쿠팡을 유통 시장의 강자로 보는 증권가와 시장의 평가를 놓고 ‘과장된 표현’일 수밖에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김 의장의 발언이 더 의미 있는 이유는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향후 쿠팡의 성장을 이끌어갈 새 성장동력을 구체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우리는 신사업에서 강력한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우리가 패션과 뷰티 등 새 카테고리에 진출한지는 몇 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카테고리의 성장 속도는 기존 주력사업인 로켓배송의 성장 속도와 비교해 한참 빠르다”고 말했다.
쿠팡이 오래 전부터 공을 들였던 패션 전문관 ‘C.에비뉴’나 뷰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선보인 뷰티 전문 플랫폼 ‘로켓럭셔리’와 같은 새 사업에서 점차 가시적 성과 거두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쿠팡이 패션에 의욕을 보였던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과거 삼성물산과 LF,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국내 패션기업에서 인력을 영입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였고 실제로 많은 인력이 쿠팡으로 이직해 자리를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쿠팡은 2020년 4월 패션 전문관 C.에비뉴를 선보였다. 당시 쿠팡은 “쿠팡이 직접 엄선한 프리미엄 브랜드만을 보아 다양한 스타일의 인기 패션 아이템을 고객들이 믿고 구매할 수 있도록 새 플랫폼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쿠팡이 패션사업에서 힘을 쓰고 있다고 보는 시각은 드물었다. 무엇보다도 무신사와 지그재그, 에이블리, W컨셉 등 주요 패션 버티컬커머스(한 분야만 집중해 판매하는 커머스)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사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지 않았다.
2022년 4월 아마존에서 패션사업을 담당했던 인물을 쿠팡의 패션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으며 지난해 11월경에는 ‘로켓그로스 패션팀’을 만들어 패션 분야의 경쟁력을 전문몰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이 노력의 성과는 실제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쿠팡은 분기 실적을 크게 제품커머스부문과 신사업부문으로 나눠 공개할 뿐 세세한 카테고리별 실적은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의장의 발언으로 미뤄보면 쿠팡이 수 년 동안 힘을 쏟았던 패션사업에서 점차 눈에 띄는 결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뷰티도 쿠팡이 장악하지 못한 대표적 분야로 꼽혀왔는데 김 의장의 발언은 최근 이 부분에서 쿠팡이 반전에 성공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쿠팡은 7월 초 명품 화장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뷰티 전용관 로켓럭셔리를 선보였다. 로켓배송의 장점을 살리면서 화장품만을 대상으로 한 전용 포장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차별화에 힘쓴 것으로 평가받았는데 이 성과가 내부에서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이 기대를 걸고 있는 쿠팡 성장의 또다른 한 축은 대만사업이다.
김 의장은 대만사업과 관련해 “새 사업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높다”며 “우리는 내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투자를 종료했는데 지금까지 대만은 그 기준을 뛰어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진전을 고려해 쿠팡은 올해 대만에 더 높은 수준으로 투자할 것이다”라며 대만사업과 쿠팡플레이(OTT), 쿠팡이츠(배달) 등 다른 사업을 통틀어 올해 신사업에만 4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덧붙였다.
▲ 쿠팡은 대만사업을 포함한 신사업에 올해에만 4억 달러가량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버는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새 성장동력에 재투자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쿠팡 대만 홈페이지> |
쿠팡이 상반기에 거둔 영업이익이 2억5442만 달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연간 벌어들이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신사업에 쏟아 붓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의장에 따르면 쿠팡이 주력하고 있는 대만사업은 한국에서 로켓배송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업을 펼치며 쌓은 노하우를 대만사업에 빠르게 접목한 것이 초창기 두드러진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김 의장은 컨퍼런스콜에서 대만사업과 관련한 쿠팡의 현 주소와 미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이제 막 시장에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한국에서 구축하고 배운 많은 것들을 대만에서 활용하고 있다”며 “쿠팡은 규율있고 지능적 방식으로 계속 투자하고 실행할 것이며 시장에서 고객 경험과 운영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해서 빠르게 시험하고 배우고 반복할 것이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현지 업체가 쿠팡과 비슷한 ‘1일 배송’ 서비스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것에 대해 쿠팡의 전략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으며 적절한 시기에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대답을 아꼈다.
쿠팡의 성장성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은 우호적이다.
쿠팡 주가는 미국 동부시각 8일 기준으로 전일보다 0.58% 내린 17.89달러에 장을 마감했지만 실적이 발표된 직후 시간외 거래에서 종가보다 6.2% 상승한 19달러까지 주가가 올랐다.
쿠팡 주가가 19달러대까지 상승한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