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이사 사장과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이 올해 하반기 정반대의 상황에서 두 외투기업을 각각 이끌게 됐다. 사진은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르노코리아> |
[비즈니스포스트]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이사 사장과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이 올해 하반기 정반대의 상황에서 회사를 이끌게 됐다.
한국GM은 2개의 글로벌 전략차종으로 최대 생산, 최다 판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반면 르노코리아는 신차가 없어 극심한 판매부진에 빠져있다.
다만 르노코리아는 전기차 전환 등 미래전략과 관련해서는 한국GM과 비교해 훨씬 명확한 계획을 갖고 있다. 르노코리아로서는 이런 점이 한국사업장의 지속가능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일 완성차업체 판매실적자료를 종합하면 국내에서 자동차를 만들어 세계 곳곳에 판매하고 있는 외국계 완성차업체 한국GM과 르노코리아는 올해 글로벌 판매에서 확연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GM은 올해 1~7월 누적 25만5011대를 글로벌시장에 판매했다. 지난해 한국GM의 연간 글로벌 판매량은 26만4875대다. 한국GM은 올해의 절반가량이 지난 시점에서 2022년 연간 판매량에 육박하는 판매실적을 올린 셈이다.
한국GM이 이렇게 판매 기세를 올릴 수 있는것은 신차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인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올 2월 말과 4월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판매를 시작한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올해 1~7월 10만7682대가 팔려나가며 같은 기간 한국GM 전체 판매실적의 42.2%를 책임졌다.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한국GM 창원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부평공장에서 생산되는 트레일블레이저 역시 올해 1~7월 수출을 중심으로 14만2232대가 판매되며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함께 한국GM의 판매실적을 쌍끌이하고 있다.
미국 GM 본사는 2020년 초 트레일블레이저에 이어 올해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출시함으로써 2018년 KDB산업은행으로부터 8100억 원의 자금을 지원받으며 2종의 글로벌 신차를 한국GM에 배정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했다.
8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비자레알 사장은 회사가 '꽃길'을 걸을 때 지휘봉을 잡게 됐다.
한국GM은 지난해 영업이익 2766억 원을 내며 9년 만에 흑자전환을 달성했는데 두 글로벌 전략 모델의 판매호조는 흑자기조를 이어가야 할 비자레알 사장의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GM은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 생산에 집중해 부평 및 창원공장에서 연간 50만 대 수준으로 생산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올해 가장 중요한 목표로 내세웠다.
한국GM이 최근 트레일블레이저의 첫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한 데다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올해 3월 이후에야 본격 판매를 시작했던 점을 고려하면 50만 대 생산은 물론이고 50만 대 판매 고지도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올해 새로 내놓는 신차가 없는 르노코리아는 판매에서 최악의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르노코리아의 국내 판매량은 1만2270대로 전년 동기(2만6230대)와 비교해 반토막이 났지만 해외로는 4만9926대를 수출하며 5.3% 증가한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7월에는 수출마저 1년 전보다 74.8%나 꺾인 3130대에 그치며 1~7월 누적 수출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감소했다.
르노코리아는 "7월 아르카나(XM3 수출명) 신규 모델 출시 준비와 유럽지역 여름 휴가 시즌에 따른 선적 일정 조정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수출물량이 줄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XM3는 지난해 기준 르노코리아 연간 수출 실적의 84.7%를 책임진 대표 볼륨 모델이다.
드블레즈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한 뒤 그해 1848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2019년 이후 3년 만의 흑자전환을 이끌었다.
올 여름과 하반기 유럽과 국내에 각각 출시하는 XM3 부분변경 모델이 올해 판매 하락세를 뒤집을 만한 신차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드블레즈 사장은 지난해 어렵게 일군 르노코리아의 흑자기조를 이어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르노코리아는 전기차 전환과 관련해서는 한국GM과 비교해 명확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드블레즈 사장은 올 6월 프랑스 르노그룹 본사에서 귀도 학 르노그룹 부회장, 박형준 부산시장 등과 함께 미래차 산업 생태계 구축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르노그룹은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귀도 학 부회장은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은 그룹 내 중요한 생산거점"이라며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에 대규모 투자로 연간 2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 설비를 갖춰 미래차 생산기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드블레즈 사장이 올해의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면 내년부터 르노코리아의 신차개발 프로젝트인 '오로라(로마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를 바탕으로 꽉 막힌 판매 활로를 찾을 기회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드블레즈 사장은 현재 르노그룹 및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회사 길리(지리)그룹과 함께 내년에 선보일 중형SUV 친환경차(하이브리드차)를 개발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신차는 국내시장뿐 아니라 수출 확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문한 루카 데 메오 르노그룹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을 새로운 중대형 차량 수출 허브로 삼으려고 한다"며 친환경 신차를 글로벌 수출 모델로 활용할 뜻을 시사했다.
르노코리아는 2대의 하이브리드 신차와 2026년 출시를 목표로 하는 전기차를 포함한 오로라 프로젝트를 통해 앞으로 10년 동안의 성장동력을 마련할 계획을 갖고 있다.
▲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이사 사장. < 한국GM > |
반면 한국GM은 2대의 글로벌 전략차종을 확보하고 50만 대 생산체제 구축에 전사적 역량을 투입하고 있는 만큼 2025년까지 전기차를 포함한 추가 신차 생산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2021년 11월 방한한 스티브 키퍼 당시 GM 해외사업부문(GMI) 사장은 "2025년까지 한국에서 출시되는 전기차 10종은 전량 GM에서 수입돼 판매될 것"이라며 "차세대 글로벌 차종인 CUV(트랙스 크로스오버) 이외에 한국GM에서 새 신차를 생산할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다만 최근 미국 GM본사 최고경영진이 최근 한국GM의 전기차 신차 생산과 관련해 여지를 열어두는 태도로 선회하고 있어 2026년 이후에는 한국GM이 전기차 일감을 배정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로베르토 렘펠 전임 한국GM 대표이사 사장도 올해 초 "올해 최우선 목표는 50만 대를 생산하는 것"이라면서도 "2~3년 국내 공장을 풀가동하면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적기가 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GM은 제조 능력 및 품질 우수성과 관련해서는 이미 미국 GM 본사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자레알 사장이 50만 대 생산체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한국 사업장의 GM의 핵심 수출 거점으로 키워낸다면 앞으로 전기차 일감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해외에 본사를 둔 외투기업이 한국사업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일감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꽃길을 걷고 있는 한국GM과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르노코리아가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며 국내 자동차산업의 단단한 한 축이 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드블레즈 사장은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신차개발 프로젝트인 오로라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지난 2년은 어두운 시기였지만 2026년이 되면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