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을 추진하거나 영업을 하는데 있어서 예기치 못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상대방이 보직을 받은 시점부터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픽사베이> |
A벤처기업은 B대기업의 구매담당 과장을 대상으로 6개월 정도 온라인 교육용 콘텐츠 영업을 했다. 구체적인 사양과 품질을 논의하고 언제까지 준비해서 언제부터 납품한다는 이야기까지 진행되었다.
B대기업의 담당 임원도 동의한 상태였다. A벤처기업은 상당한 기대를 하며 이제부터 첫 판매가 시작되면 돈이 들어오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B대기업 담당 과장이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후임 과장에게 A벤처기업 건이 인수인계됐다. 하지만 후임 과장은 전임 과장과 생각이나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랐다.
A벤처기업은 후임 구매담당 과장에게 전임자와 협의된 내용을 다 설명했지만 후임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교육은 그냥 틀어두고 안 듣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후임자는 집합 교육이 좋지 온라인 교육은 별 효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온라인 교육 콘텐츠의 품질에 대해 협의하지도 못했고 시간이 한 달, 두 달 흘러갔다. 벤처기업은 두어 달이면 운영 자금 확보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다. 첫 거래를 잘 터야 향후 영업을 잘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막히니 다른 영업도 진척이 잘 안되었다.
A벤처기업은 운영자금이 없어서 직원들이 퇴사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고 결국 이 회사는 거의 폐업 직전까지 가게 됐다.
C중소기업은 디지털게이트 분야의 혁신기술을 응용한 제품을 D대기업에 공급하기로 했다. 월 10대 규모의 공급 협의를 했다. D대기업은 자기 그룹 계열사에도 납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량으로 납품을 준비하면서 1차로 5대를 준비하여 D대기업에 샘플을 설치했다.
그러던 중 D대기업의 담당 부장이 바뀌었다. 신임 부장은 직접 개발하면 되는데 왜 외주를 주느냐면서 사업을 중단시켰다. 설치된 샘플도 철거하라고 했다. 철거비도 만만치 않았다. D대기업의 IT시스템과 연동되어 있어 철수 작업도 수월치 않았다.
C중소기업은 D대기업 신임 부장을 면담하여 상품과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해도 신임 부장은 자기들이 그 사업을 직접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사실 해당 사업의 규모와 시장성이 컸기 때문에 C중소기업은 큰 투자를 해 왔다. 연구개발(R&D)과 디자인 개선에 큰 자금이 들어갔다.
만약 D대기업이 이 사업에 뛰어 든다면 C중소기업과 협의 과정에서 디자인과 기술을 습득했기에 얼마든지 추월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C중소기업은 속이 타 들어갔다. 회사가 끝장날 수도 있어 D대기업이 속한 그룹의 회장실에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계열사에서 직접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C중소기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에게 상담을 왔다. 최소한 샘플비라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하도급법 위반이 되는지를 문의했다. 하지만 하도급법은 대기업이 스펙을 지정해주고 그대로 납품해 달라고 할 때 적용된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문을 두드릴 수도 없었다.
결국 D기업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철수한 제품을 어디에 팔수도 없고 회사의 자금 부담만 커져갔다. 그러던 차에 다른 기업에서 중고품이라도 납품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급하게 판매하여 위기를 넘겼다. C중소기업은 그나마 동시 다발적으로 영업을 해 두었기 때문에 살아남았지 안 그랬으면 부도가 났을 수도 있었다.
필자가 부산시 정보기획 업무를 담당하던 시절에 IT 분야 관련 5300억 원 규모의 거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리고 E벤처기업에게 사업의 주도권을 쥐면서 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제가 여기에 있을 동안 사업 제안서를 가져 오세요. 그러면 시장에게 결재받아 진행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면 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후임자가 오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와 추진력이 부족하여 더 이상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E벤처기업 사장은 제안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외국 출장 등의 이유로 계속 미뤘고 필자는 결국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후임자에게 그 프로젝트를 인계했지만 이해도가 떨어져 결국 사업 규모가 수억 원 규모로 축소되고 말았다.
특히 선출직의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면 큰 사업은 대체로 중단될 우려가 크다. 같은 정당 출신이라도 지속성이 담보 안 되는데 정당이 바뀌면 중단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과 프로젝트를 하는 곳이라면 이런 문제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이렇듯 사업추진이나 영업에 있어서 계약 상대방 담당자가 해당 보직을 언제 받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필자 역시 조만간 한 지자체 공무원을 만나러 간다. 그 공무원은 마침 지난주에 발령을 받았기에 새로운 사업을 검토하려고 할 것이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담당자가 새로 발령을 받은 경우에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민간기업도 그렇고 정부기관도 마찬가지다.
만약에 사업을 추진하다가 담당자가 변경되어 사업이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매몰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의 확약으로 인해서 이 사업이 추진되었음을 입증해서 손해를 보상 받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확약이란 계약서는 없지만 각종 회의록, 이메일, 카카오톡 등에서 해당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가 명확하였음을 입증하는 간접적 증거를 말한다. 확약을 확보해둬야 어디 가서 하소연이라도 하거나 후임자에게 내밀고 설득을 할수 있다.
유니콘 기업은 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간접적 증거서류까지 꼼꼼히 챙기는 실력까지 있어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이전에 영업 첫 단계에서 상대방이 언제 그 자리에 부임했느냐를 점검해봐야 한다. 지역유니콘기업연합 회장 이경만
이경만 회장은 행정고시 38회에 합격후 공정거래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 과장, 국장, OECD 한국센터 경쟁정책본부장,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했다. 현재는 혁신기업 지원, 지역균형발전에 집중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