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재벌들은 각종 꼼수를 통해 제재를 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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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10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53개 대기업집단의 지난해 내부거래 금액은 162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로 당국의 제재를 받은 곳은 현대그룹 한 곳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들이 엉성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갔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가 대표적이다.
현행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인 경우에 적용되는데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은 법 시행 직전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을 30%에서 0.1% 부족한 29.9%로 낮췄다.
물류회사인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국내 매출액 5조 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2조6천억 원을 현대차와 기아차 등 계열사와 거래에서 올렸다.
얼마 전 운전기사 갑횡포로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정일선 현대 BNG스틸 사장도 현대차그룹과 현대산업개발 등 범현대가 그룹들의 ‘도움’으로 회사를 키웠다.
LG그룹 물류회사인 범한핀토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일감몰아주기방지법을 피해갔다.
신세계그룹 온라인 쇼핑몰 결제대행업체인 신세계페이먼츠의 경우 매출의 100%가 계열사 일감이지만 제재를 받은 적이 없다. 총수 일가가 직접 소유하지 않아 제재 대상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벌닷컴이 10일 자산순위 20대 그룹의 2015회계연도 매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내부거래 비율이 50% 이상인 계열사 수는 전체(926곳)의 28.2%인 261개사로 집계됐다.
재벌 계열사 3곳 가운데 하나 가까이가 회사 일감의 절반 이상을 모기업이나 계열사에 의존하는 이른바 ‘캥거루기업’이라는 얘기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특히 오너 일가가 많은 지분을 보유한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이 여전히 일감 몰아주기의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의 삼성SDS의 경우 내부거래 매출이 3조 원을 넘어 내부거래 비중이 73.2%에 이르렀고 롯데그룹의 롯데정보통신(86.2%), 한진그룹의 한진정보통신(75.6%), 한화그룹의 한화S&C(52.3%)도 내부거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최근 일감몰아주기 규제 지분율 기준을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20%로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당 김동철 의원도 6월 지분율 기준을 10%로 강화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또 이 개정안은 예외 사유들도 대폭 줄였다.
일감 몰아주기는 장기적으로 ‘부의 대물림’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총수 일가가 지분 규제를 피해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자회사의 자산이 늘어나게 되고 이를 통해 부의 상속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선섭 대표는 “내부거래의 비율이 일정 비율 이상일 경우에 모두 규제할 수 있는 더 강화된 통제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